에피쿠로스(Epikuros) 실천철학과 쾌락

Ryan Jeong·2020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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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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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는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영혼의 평정, 스토아 학파는 필연적인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조절하는 데 힘씀.

에피쿠로스 (Epikuros BC 341~270)
1) 의학이 신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사상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
2) 철학을 영혼의 의학이라고 믿음
3) “세계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보다 세계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행동에 대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
4) 인생의 주된 목적은 쾌(快)
5) 쾌락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 가지 공식에만 있다는 생각은 잘못
6) 여러 종류의 쾌락으로 구별함 (예를 들어 강렬하긴 하지만 짧은 쾌락, 은밀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쾌락, 고통을 주는 쾌락, 안정과 휴식의 감정을 주는 쾌락 등)
7) 쾌락설을 행동의 근거로 체계화하는 데 힘씀

  1. 물리학과 윤리학
    1) 에피쿠로스가 쾌락설을 택하게 된 것은 데모크리토스[원자론]에게서 물려 받은 물리학 때문
    2) 에피쿠로스는 존재하는 사물은 단단한 물질로 작고 부서지지 않는 조각, 즉 영원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결론
    3) 유일신 혹은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면 그들도 역시 물질적인 존재이어야 한다고 생각
    4) 신이 모든 사물의 원천이거나 창조주도 아니며, 그 스스로는 목적도 의지도 없는 임의적인 사건의 결과라고 함
    5) 원자에게는 여하한의 시초도 없다는 개념에 의해 만물의 기원을 설명
    6) 원자는 항상 공간 안에서 존재하면서 사물이 됨 (빗방울처럼 원자들은 한꺼번에 제각기 공간 속에 떨어지며, 그것들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으므로 항상 서로 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수직으로 낙하할 동안에 한 원자는 완전히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한쪽으로 약간 벗어나, 즉 측면으로 기울게 된다. 그래서 이 원자가 가까이 있는 원자의 경로로 움직여 충돌을 일으키면 이들 양원자는 서로 힘을 받아 또 다른 원자들에게 충격을 줌으로써 연쇄적인 충돌이 일어나며 결국 모든 원자들이 여러 덩어리로 뭉칠 때까지 이 충돌은 계속된다. 이러한 원자들의 덩어리 혹은 배열이 우리가 지금 보는 바위, 꽃, 동물, 인간, 강, 바다, 다시 말해 세계 내의 모든 사물들이라고 설명)
    7) 인간은 신에게 지배를 받거나 신에 의해 비롯된 목적성이 있는 질서의 일부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원자들의 충돌에 의한 우연적인 산물이라고 결론을 내림
  2. 신(神)과 죽음
    1) 1-7)번에 의해 에피쿠로스 자신이 인간을 신에 대한 공포와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고 생각함
    2) 신은 자연 혹은 인간의 운명을 조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신은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함
    3)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으므로 죽음이 어느 누구도 괴롭힌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함
    4) 죽음 이후 분명한 것은 원자들만 남아서 새로운 배열에 필요한 순환 과정을 지속하기 위하여 원래의 물질 창고로 되돌아간다고 함
    5) 물질만이 존재하며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 육체와 경험하는 현재의 순간뿐이라고 함
    6) 좀 더 큰 원자는 우리의 육체로 만들며, 더 작고 부드러우며 빠른 원자들에 의해 감각과 사유가 만들어진다고 함
    7) 이 원자들에 의해 인간의 정신활동이 설명 가능한 것으로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신도, 사후의 세계도, 그 밖의 어떠한 원리도 필요치 않게 됨
    8) 단지 인간은 자신의 통제하에서 삶의 방식을 전개하기 위한 무대를 마련할 수 있고 이 무대에서는 오직 실천적인 면만이 강조 (신의 명령에 따르는 추상적인 행동 원리 대신에 육체와 정신의 쾌락을 위한 개인의 직접적인 욕망에 초점을 둠)
    9) 개개의 원자를 모든 존재 근원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도덕 체계에 대한 활동 무대로 삼음 3. 쾌락주의(hedonism)
    1)쾌락 추구를 본질로 하는 인간을 또 하나의 작은 근원으로 세상 속에 위치시켰지만 인간에게 자신의 욕망을 규제하는 힘과 의무를 부과함
    2) 쾌락을 선(善)의 척도라고 확신 (누구나 고통보다는 쾌락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쉽게 느낀다)
    3) 감각이 진리에 대한 기초가 되듯이 감정은 선악에 대해 직접적인 척도가 된다
    4) 쾌락이라고 하여 모두가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5)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을 구별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임 (음식의 경우처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 성의 쾌락에서처럼 자연적이지만 필연적이 아닌 욕망, 사치나 인기처럼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망) 에피쿠로스의 결론
    “우리는 쾌락이 곧 목적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방탕한 자의 쾌락도 아니며 무지하거나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상되는 성의 쾌락도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연일 음주와 연희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또 정욕의 충족, 평안한 생활을 하는, 즉 생선을 즐기고 호화로운 식탁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사치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동기를 탐구하거나, 정신이 매우 혼란할 때 생기는 잘못된 의견을 떨쳐 버리는 건전한 사유이다.” 6) 에피쿠로스는 육체의 쾌락을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러한 괘락에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불행과 고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밝히고자 함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더욱 많은 돈이나 대중의 인기, 혹은 외국산 음식이나 고관직을 원하게 된다면 그는 항상 현재의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늘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그의 본성을 최소로 억제할 수 있고, 쉽고 빠르게 필요한 만큼 만족시킬 수 있다. 적절한 욕구가 만족될 때 인간의 본성은 균형을 이룬다. 식도락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과식할 때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적절한 빵과 물을 먹을 때 행복을 더 쉽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은 음식을 조금만 먹도록 익혔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먹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7)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 -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육체적인 고통이 없고 정신의 평온한 안정 상태라고 말함
    8) 평정의 느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을 점차 줄여 가며 불필요한 근심을 극복하고 가장 온전하게 지속되는 정신의 쾌락에 의지해야 한다고 함 4. 개인의 쾌락과 사회적인 의무
    1) 결국 자기 중심적인 도덕 철학을 확립 - 인간 사회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에 관심을 둠 (철학자의 삶마저도 고통을 피하는 수단으로 파악하였지, 선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여기지 않음)
    2) 에피쿠로스는 선한 삶이란 자기의 동료를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매력을 지닌 친구들과 즐겁고 유쾌하게 교제하는 가운데 발견할 수 있다고 함 (고급 음식을 멀리했을 뿐 아니라, 남들의 도움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멀리함)
    3) 에피쿠로스가 인정하는 시민 사회의 유일한 기능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을 막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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