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나가달라고 해줘.
나의 소중한 친구는 '맛없어'를 정말 완곡히 표현한 내 평가를 듣고는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그녀가 정말 민망해할 때만 볼 수 있는 목젖이다. 심지어 홍당무가 된 얼굴로 '그 정도야?' 라고 현실 부정을 하며 열심히 수저로 퍼먹는 걸 보니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 말은 해야지.
나는 수요를 잃어버린 '무언가'가 담긴 냄비를 들고 부엌으로 걸어가며 김치찌개는 김치의 신맛에 따라 레시피가 천차만별로 바뀐다는 걸 알려줬다. 그리고 설탕을 문자 그대로 퍼붓고 졸여주니 어느 정도 먹을만한 간으로 돌아와 다시 식탁 위로 대령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양파랑 감자만 손질해 달라길래(생각해보니 일은 내가 더 많이 한 거 아닌가?) 분부대로 양파를 썰며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의문이 들었는데, 역시나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었다.
'무언가'에 의해 혀가 유린 당할 당시에는 내가 오늘 뭘 잘못했나 싶어 빠르게 하루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셔츠 사러 갔을 때 피치색과 소라색 중에 어느 게 더 잘 어울리냐고 묻길래 진짜 둘 다 잘 어울려서 둘 다
를 답해서였을까?
수변 공원을 거닐 때 날벌레 때문에 고통받길래 진정한 상여자라면 날벌레도 단백질원
이라 여기라고 윽박을 질러서였을까?
그저 죽더라도 왜 죽는지나 알고 싶었다.
나는 7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를 하며 가벼운 문제가 결국 큰 문제로 발전하는, 아니 큰 문제는 결국 가벼운 문제로 시작하는 걸 지겹도록 봐왔다.
특히 문제 해결 접근 방식에 따라 가벼운 문제도 한없이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큰 문제도 가볍게 끝낼 수 있음을 배웠다.
또한, 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루에도 수 억에서 수 십억의 손해가 난다는 것, 그 전혀 현실감 없는 숫자로부터 오는 압박감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깨어있는 순간 중 대부분은 '대체 이건(또는 점마는) 왜 이럴까?' 하는 의문 속에 살고 있다. 무형적, 유형적인 것 가릴 것 없이 그러고 있으니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야겠다.
사실 이런 습관은 사람들로부터 '남
한테 관심 좀 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좋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연관 없는, 없을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으니 남
한테 관심을 갖는다는 오해를 받는다는 건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는 게 내 오랜 지론이었다.
이번 주차는 나와 동갑인 교육생과 같은 조가 되었는데, 그 친구는 이번 주차 커리큘럼인 네트워크
를 공부하다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나와 다른 동생에게 인생은 입출력이다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줬다.
처음에는 보드마커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친구를 보며 아무래도 팀원을 잘못 만났나 싶었는데, 강연이 끝날 때쯤에는 나도 모르게 감동의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내게 감수성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도 눈물을 두어 방울 흘렸으리라.
인생은 입출력이라니,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던 내게 이보다 더 공감되는 Computer Science
적인 사상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인생은 입출력이다
사상은 문제에 대한 사고 흐름을 단순화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보자.
아마도 A는 포근한 크림색 이불을 덮고 릴스를 넘기다 우연히 보글보글 끓는 참치김치찌개를 발견했을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추측해 보건대, 평소보다 기온이 낮아지면 대사가 활발해지며 식욕이 증가하니 그날은 비가 왔을 것이다. 그때 A는 뇌 속 버퍼
에 참치김치찌개를 입력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머지않은 토요일, A는 그녀의 착하고 어여쁜 친구 B로부터 '일요일에 내려갈 수 있다'는 말을 입력
받자마자 버퍼
에서 참치김치찌개를 꺼내 B에게 연결
을 출력
했을 것이다.
사준다고 해도 먹지만, 해준다고 해도 먹는 순수하고 어진 친구 B는 입력
된 연결을 덥석 수락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레시피 배열에 입력
된 참치김치찌개 레시피를 현재 그녀의 냉장고 속 신 김치에 출력
하니 Segmentation Fault
가 발생했다.
그 결과, A의 어딜 가나 타의 모범이 되고 덕망이 높은 친구 B는 A의 면전에 이 포스트의 첫 문장
을 출력
해버렸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날 죽이려는 걸까, 내가 오늘 뭘 잘못했을까 같은 불필요한 파생적 사고를 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얼마나 멋진 사고 흐름인가?
아마도 난 그 교육생 친구의 이름을 언젠가는 잊더라도 그 친구가 침을 튀기며 설파한 인생은 입출력이다
사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는 모든 것에서 이유를 찾는 나의 습관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것이고, 어쩌면 습관 그 이상으로 확장시킬 것이다. 지면을 빌려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물론 정말 불행히도, 그녀답지 않게, 참치김치찌개 실패 따위에 시무룩해 하고 있는 친구를 위로해 줄 방법을 찾는 건 위 사례처럼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재롱을 입력
해야 return 0
을 출력
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밤이 길다.
이건 요즘 아침에 하고 있는 폼롤러 모임
등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