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반짇고리·2025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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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차는 정말 최악의, 아니 최악보다 더한 표현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에 원통한 기분이 들 정도의 컨디션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응급실이(혹은 유치장) 아닌 집에서 무사히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이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원인이 아주 명확하다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만 되면 집으로 내려와서 쉰다. 물론 그렇다고 일요일에 많이 자는 건 아니긴 하지만.

아, 1주차 때 딱 한 번 집에 내려가지 않은 적이 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난 아직도 1주차 팀원들에게 속죄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만큼 집에서 휴식은 내게 필수적인 루틴 중 하나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와닿지 않으니 데이터를 보자.

위 이미지는 내가 이곳에 온 이래 가장 많이 잔 날의 수면 데이터다.

참고로 이날은 입소 후 첫날밤이었는데, 딱 2시간 자고 입소했던 터라 매우 피곤했다.

심지어 무릎 수술을 받고서 입소 이틀 전인 토요일에 퇴원했으니 컨디션이 정상일래야 정상일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이미지는 저번 일요일에 집에서 5시간 남짓 잤을 때의 수면 데이터다.

보라. 비슷한 수면 점수를 얻기 위해 숙소에서는 7시간 가까이 자야 하지만 집에서는 5시간 남짓만 자면 된다.

누군가는 1시간 30분을 그깟 1시간 30분이라며 코웃음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이면 상암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무려 롯데월드까지 달려갈 수 있는(직선 거리 기준), 또는 담배를 반 갑이나 태울 수 있는(비록 난 흡연자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물론 이렇게 수면의 양과 질도 중요하지만 집에서는 그곳과는 달리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는, 아니 더 정확히는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괜히 내가 일요일 딱 하루의 휴식으로 일주일을 버틴다며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저번 일요일은, 월요일 연차를 내버린 친구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숙면을 도통 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요통과 고관절 소켓 통증까지 얻어버려 숙소에서 잘 때도 자는 게 아니었다.

금요일쯤에는 스탠딩 데스크에서 공부하는데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4월 23일부터 도전 중인 새벽 4시 30분 퇴근 챌린지를 중단할 뻔했다. 하지만 때마침 몰입 소모임을 같이 하는 동생이 와서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다.


오후 3시의 XX역은 오랜만이었다.

에어컨이나 얼어 죽을 정도로 빵빵하게 틀어놓으라는 짜증 가득 섞인 나의 주문을 완벽히 수행한 이 모든 것의 원흉은 본인에겐 약간 추웠는지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한 하야디 하얀 피부에 잘 어울리는 워싱 데님 자켓.

죽일 듯 째려보며 차에 올라타는 내게 '오셨슴까 오라버니!' 라며 애교를 부리길래, 만나자마자 정수리에 꿀밤을 박아버리겠다는 계획은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들을 이렇게 테스토스테론 가득 낳아주신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피자 주문을 위해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내 하소연은 쉬지 않았고, 원흉은 그저 '오늘은 쉬게 해줄게.' 라고 답할 뿐이었다.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혹시 우리 관계가 친구가 아닌 주종 관계인지 진지하게 물었다. 오늘은 쉬게 해준다니 나를 대체 무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곱씹을수록 어이가 없다.

장면은 원흉의 거실로 옮겨진다. TV에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이름 모를 넷플릭스 드라마 소리가 나지막이 배경을 채우고 있다.

원흉은 내게 혹시 굶고 다니냐며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혼자서 피자 3/4판을 먹어치우고 젓가락을 막 내려놓은 참이었다.

문득 젓가락을 아무 말 없이 꺼내온 친구의 행동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처음 함께 피자를 먹은 날, 젓가락을 찾는 나를 가뜩이나 날카로운 눈으로 매섭게 흘겨봤던 그녀다. 당연히 나 또한 그녀를 음식을 손으로 먹는 야만인으로 취급했지만.

그렇게 '너 손에 뭐 묻히는 거 싫어하니까 젓가락으로 먹어.'라는 뜻이 담긴 젓가락을 보며 비언어적 표현을 능수 능란히 구사하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이번 주 일요일, 이 글을 쓰고 있는 당일은 정보처리기사 필기 날이었다. 정말 많은 동생들이 응원을 해줬고, 이 늙은 아저씨가 뭐라고 응원해 주는지 도저히 이유를 끝끝내 찾지 못했으나 어쨌든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

특히 개중에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날 감동시킨 동생들이 있다.

일단 이 에너지 드링크다.

펠릭스 펠릭시스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행운의 물약인데, 물론 진짜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이걸 마셨다고 착각한 론 위즐리는 플라시보 효과로 엄청난 자신감을 얻어 퀴디치 챔피언이 되는 내용도 있다.

누가 줬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옆자리 동생에게 물어봐도 글씨체만 봐도 모르겠냐며 역으로 질문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말 그대로 아직도 도저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운을 빌 뿐만 아니라 용기까지 북돋아 준 너무나도 든든한 비언어적 표현이었다.


두 번째는 이 후라보노 껌과 트롤리 젤리다.

누군가는 이 조합을 보고 이 보노보노 닮은 벌레 같은 후레자식아 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조합은 그 동생과 약 10주 동안 나눈 대화의 집약체다.

아마 그 모든 대화들을 단 두 개의 물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의미 있는 껌을 씹어본 사람 또한 지구상에 몇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동생들 이야기, 공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깔려 우리는 산책을 하러 여느 때와 같이 수변 공원으로 갔다.

어둑한 수풀 속에서 듬성듬성 핀 장미꽃은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듯했다.

공원을 거닐며 하나 깨달은 것은, 내가 그녀의 몇몇 직장 동료들의 이름을 외웠듯이 그녀 또한 몇몇 교육생 동생들의 이름을 외웠다는 것이다.

하긴,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주를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1주차에 진즉 무너졌을 것이다.

몇몇 동생들은 평균 3시간대를 자면서 어떻게 버티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당신들 덕분이라고 하면 너무 오글거릴 것 같아 난 온갖 센척을 다 하곤 한다.

언젠가는 내가 받은 애정의 10배로 갚아주겠다는 마음은 너무나도 남사스러워 죽어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아, 할 수 있다면 비언어적 표현으로 갚아주는 것이 좋겠다. 아직은 무릎이 아픈 나를 위해 경사가 있는 쪽을 본인이 걸어주는 저 원흉처럼 말이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그런 일요일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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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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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1일

잠을 조금만 더 늘려주세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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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2일

눈물나게 멋있어 ㅠㅠ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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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9일

좀 치네 ㅋ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