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8]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OROSY·2021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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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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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말 그대로였다. 최근 시간이 나를 둘러싸고 마구 흠집을 내기 시작했고, 여러 곳에 생채기가 났다. 사실 계기나 발단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며 아직까지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이 기간 동안 나에게 주어졌던 감정과 기분을 기억하기 위해 글로써 적어내려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 한번 나의 가슴이 고르게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란다.

6월 10일 오전 10시 00분

나는 30대 이상의 예비역, 민방위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였던 얀센 백신을 접종하게 되었다. 티켓팅에 성공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백신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야외 노마스크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설렜다.

백신을 접종하고 약 1~2일은 누구나 겪는 경미한 부작용을 겪었다. 발열, 오한, 몸살, 근육통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증세는 차츰 완화되었고 약 3~4일 후에는 이전의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상황 속에서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 당시까지만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술 때문에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가며 몸이 말을 듣기 시작하지 않았다. 어지러움은 계속 이어졌고, 두통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답답하기까지 하였다.

6월 19일 오후 22시 30분

혼자 살고 있는 원룸에서 이러한 아픔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이 원인이었을까. 숨이 미친듯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엄습하여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첫 번째로 찾아간 응급실은 코로나로 인해 바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바로 그 다음으로 찾아간 응급실에서 다행히 약 10~20분의 대기 이후 들어갈 수 있었다. 혈전이 의심되는 증상이었기에 흉부 엑스레이, 뇌 CT, 피 검사 등 가능한 검사를 모두 진행하였다.

다행히 이상 소견은 없었지만, 긴장 때문이었는지 혈압이 190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혈압을 낮추는 치료를 진행하고 응급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몸의 상태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어지러움과 두통은 지속되었다.

원인을 모르는 아픔으로 인해 집 주변의 내과를 찾아가 또 다른 피 검사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도저히 이 상황을 무조건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의 집, 고향인 충주로 향하게 되었다.

엄마를 만나고 맛있는 점심을 먹는 상황에서도 어지러움은 이어졌고, 숨도 가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날수록 증세가 확연하게 없어졌다.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이 어느새 천천히 사그라들며 긴장과 불안감으로 감싸며 날카로웠던 나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약 5일 정도의 따스한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 일정이 있어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엄습하는 불안감이 다시 나를 감싸왔지만, 애써 무시하고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이 틀리는 법이 없었다.

두통과 어지러움은 다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원인을 찾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다가왔다.

6월 30일 오후 16시 30분

이 날은 대망의 사직서를 내는 날이었다. 여행업에 남아 MD라는 직무를 계속 한다하더라도 바라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개발자로서의 새로운 발을 제대로 내딛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노트북을 반납하고, 인사팀에 서류를 제출하는 시간은 고작 5분. 나의 약 3년 간의 회사 생활이 겨우 5분이라는 시간으로 허탈하고 공허한 끝맺음을 맺고야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친한 동기들과 여러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두통은 심해져갔고, 식은땀은 나의 몸과 머리를 적시며 등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조촐하게 만난 친한 동기들과의 저녁 시간에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두통과 식은땀에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증세는 차츰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날을 통해 깨달았다. 여행사의 휴직이 시작되었던 작년 5월부터의 1년이 넘는 긴 기간동안 짓누르던 스트레스는 나의 무관심 속에서 거대해져 있었다.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던 아버지의 죽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배움이 바라는 미래를 가져다줄지에 대한 불확실함,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야한다는 불안정함, 주변의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남아 한 발자국 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는 서글픔은 신체적인 고통을 줄만큼 커져 있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를 버텨내기엔 고작 서른셋의 나는 강하지 못했다.

그리고 백신 이후의 부작용과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낮아진 면역력이 이러한 고통에 쉽게 노출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었다. 결국 아픔과 고통의 원인은 외부의 어느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숨가쁘게 달려나간다

현재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스트레스와 불안을 조절하는 치료를 시작했다. 사실 이번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입원을 한 적도 없었으며, 내 삶이 가끔은 우울할지라도 나를 사랑하며 내가 만족하고 싶은 수명까지 살고 싶은 목표만을 갖고 있던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더더욱 현재 목표를 하고 있는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목표에서 더 나아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겠다는 다짐이 굳게 생겨났다. 아픈 기간 동안 공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시작된 사전 스터디에 온전히 힘을 쏟지 못하는 나 자신으로 인해 혹시 팀원들에게 피해가 갈까 노심초사했다.

약 1년이 넘은 휴직 기간 동안 나는 굉장히 많은 일을 겪었다. 그 일들이 모두 부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고, 나에 대해 확신을 갖고 믿어줄 사람도 곧 나라는 것이다.

나에게 또 어떤 다른 기회와 시련이 주어질 지 전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므로 이제부터 또 천천히 알아가봐야 할 터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구보다 심적으로 강하다고 믿은 나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만든 이번 도전은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란 것이다.

그리고 그 빛나는 도전을 위해 잠깐 숨을 골랐으니, 다시 한번 숨가쁘게 달려나갈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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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matter of a direction not a sp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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