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위코드에 대한 회고보단 위코드를 수료 하기까지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회고에 포커스가 맞춰 진 글입니다.
전문학사를 다니던 때, 이제 졸업을 앞두고 모두가 취업이라는 큰 벽을 앞에 두고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모두가 취업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과 염려만 가득 했던 그 때,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목표가 있었다. 편입이였다. 이 전문학사로 내가 사회로 나갔을 때, 당장 취업은 할 수 있겠지만 취업 하고 나서는? 취업을 하고 나서 10년 그리고 20년이 지났을 때 나의 모습은? 솔직히 자신 없었다. 이대로 단순히 '공부가 재미 없어요!' 라는 이유에서 내 미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큰 리스크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교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 "저 취업안하고 편입하겠습니다." 생각보다 교수님은 내가 가진 이런 생각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주셨고, 그렇게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다. "편입을 준비하는건 좋은데, SK 하이닉스라는 회사에서 이번에 7년만에 공채를 뽑는다더라. 나쁜 기회는 아닌 것 같으니 한번 넣어라도 보자."
그래. 나쁜 기회는 아닌 것 같아 보였고, 그래서 큰 부담 없이 이력서를 적고 지원을 했다. 그리고 그냥 붙었다. 그게 다였다. 합격을 했지만 과연 내가 이 회사를 가고 싶을까? 라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교대근무? 하루 8시간만 일하는건데 뭐가 힘들어?' '돈 많이 준다니까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는 야간 대학을 운영하는 회사 복지가 존재했고, 그럼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편입의 목표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내 자신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첫 번째.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이 회사에 들어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길을 반드시 걷겠다.
두 번째. 회사 다니면서 꼭 학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 왜?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학력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하이닉스에 입사를 했고, 23살의 12월부터 27살의 2월까지 약 3년 2개월의 시간을 방진복을 입고 교대근무를 하며 기계를 다루며 보냈다. 입사 하고 얼마 뒤 부터 바로 사내 대학을 찾아봤다. 그런데 조건이 입사 1년 이상만 지원할 수 있더라. 😡
그렇게 1년간은 그저 일만했고, 1년이 지나 새 학기 모집을 할 때 나는 지원을 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하루 8시간을 일을 하고 퇴근하면 학교 가고, 공부하는 일상이 반복 될 무렵 다시금 미래에 대한 생각이 나를 찾아왔다.
사실 일이 그렇게 엄청 힘들었던 것도 아니였고, 급여도 꼬박꼬박 잘 나왔으며, 내가 원한다면 나의 여가시간을 가질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10~2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든 순간부터 찾아왔다. 매일 방진복을 입어야했고, 교대 근무를 해야했으며, 기계를 다루다 보면 다치기도 하고, 가스 작업을 하는 날에는 방독면을 끼기도 하고, 현장을 잘 모르는 윗분들은 책임을 물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만 늘려갔다. 평생 그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 위해서 먼저 나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식의 삶을 살고 싶을지부터 생각해봤다.
1. 회사는 대기업이였다. 하지만 회사를 빼면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의 네임밸류가 아닌 내 자신이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2. 평생 공부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고 싶었다.
3. 무언가에 빠지면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런 집중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4. 이왕 한번 사는거 멋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 멋있게는 세상에 없는 어떤 무언가를 내가 만들어내고 싶었다.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당장 생각이 잘 안난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위와 같았다.
이렇게 몇가지 나열을 하고 나니 이런 성격을 가진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내 눈에 '개발자'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개발자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 온 순간 문득 떠올랐다. 대학을 다니 던 시절 임베디드 실습을 하면서 아주 조금은 해봤 던 코딩의 경험이. Hello World를 띄우고, Atmega128 Kit을 통해서 여러가지 실습을 했던 기억이. 이 때의 생각이 문득 들면서 조그마한 열정이란 불씨가 타올라 큰 불꽃이 되어 마음 속의 모든 열정의 자리를 잡아갔다. 그 당시 코딩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근데 왜 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계속 생각이 났다. 코딩이 하고싶었고,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나에게 위코드는 첫 번째 부트캠프가 아니였다. 위코드를 다니기 전 스파르타 식의 교육을 하고 기간도 2년정도로 긴 부트캠프를 다녔다. 그 곳에서 약 두 달간의 학습을 진행했다. 그 곳의 교육 방식은 위코드와는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두 달 중 첫 한달은 java를 배웠고, java를 통해 CLI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두번째 달에는 안드로이드로 어플을 만들었다. 어플을 다 만들지 못했고 중간에 그만 두었다. 그만 둔 이유는 그 부트캠프에서의 나 자신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만 두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 있고, 그 수업에 내가 일주일 동안 해 온 결과물을 발표하고, 거기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는다. 피드백의 내용은 물론 필요한 내용이다. 분명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캐치를 해 준다. 그 피드백을 해 주시는 시간의 분위기가 다소 무겁다. 무겁다는 표현 안에는 많은것이 내포되어 있지만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서 모두가 학원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내가 있었던 반의 인원에 한해서), 본인의 발표 차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처음에는 그냥 분위기가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두달이 된 시점에선 '이게 과연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다. 웬만해선 멘탈이 잘 부서지지 않을 뿐더러 부서지더라도 금방 회복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두 달 동안 나는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공부하는건 어떤 환경에서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공부 외적인 부분이라도 즐겁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공부하는게 맞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던 중 눈에 들어온게 위코드다.
위코드를 알게 된 그 날, 여러 위코드 후기를 읽느라 밤을 샜다.
나는 어떤 한가지에 꽂히면 그 한가지만 죽어라고 파는 성격이 있다. 그런 내가 위코드에 꽂혔다. 밤새 후기를 읽고 참을 수 없어서 바로 상담을 신청했다. 하필 주말이라 답변을 기다리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했고, 월요일이 되서도 참지 못 했던 나는 바로 인스타 DM으로 상담 요청을 드렸고 바로 날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DM으로 보내시면 답변 빨라요!)
아직도 상담을 간 그 날을 기억한다. 가장 처음 마주한게 소헌님이다. 처음 뵌 그 순간부터 굉장히 밝으셨고 계속 웃고 계셨다. 이때부터 위코드는 이런곳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준식님과 상담을 했고, 나는 한번의 실패 아닌 실패 아닌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무엇보다 신중했다. 그랬기에 핸드폰 메모장에 궁금한 모든 것들을 적어서 상담을 갔고 하나하나 여쭤보았고,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상담 시간이 거의 한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그 모든 질문에 대해서 친절히 상담을 받아주셨고, 무언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일주일간을 고민했고,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길 바라고 바라며,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기존의 부트캠프를 그만두고 위코드에 등록을 했다.
이 글은 위코드를 홍보하고자 하는 목적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위코드의 세 달간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세한 후기는 많은 회고록들이 이미 존재하며 위코드 한 달 회고, 1차 프로젝트 회고, 2차 프로젝트 회고, 브랜디 인턴십 회고는 각각의 글을 모두 작성했으며, 지금 작성하는 것보단 그 때 작성한 글들이 더 정확한 심정이지 않을까 싶어 따로 적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내가 위코드에서 얻은 것. 그 하나만큼은 남겨놓고 싶다.
나는 위코드에서 사람을 얻었다. 그것도 귀한 사람. 내가 느낀 모든 것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이 난다.
함께 고민 해 주는 사람
함께 웃어 주는 사람
함께 밥을 먹어 줄 사람
개발이 아닌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
지식으로 나를 후드려 패 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결과물을 함께 기뻐 해 주는 사람
위코드 수료 후에도 교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사람
동기가 아니더라도 교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아 너무 많다. 그만 적어도 다들 아실 듯.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 처럼 즐거운 분위기에서 모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위코드를 시작하면 오리엔테이션에서 은우님이 세달 간 굉장히 힘든 과정이 될 거라고 말씀 하신다. 하지만 음.. 내가 노력을 덜 해서 그럴까?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할 만 했다. 그냥 내 마인드가 그런 것 같다. 주어진 환경을 그렇게 탓하진 않는다. 거기다가 제 발로 위코드에 가서 힘들기를 원했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이 사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빡빡한 일정을 그저 즐겼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더 잘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서만 가혹했을 뿐이었다. 위코드에 등록하기 전, 내가 바랬 던 즐거운 분위기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거면 됐다.
위코드는 나에게 이런 곳이었다.
개발자가 되고 싶다. 라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는 지금까지도 동일하다.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게 아닌, 남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위와 같은 목표를 가진 이유는 첫 번째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개발자는 개발을 잘 하더라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소통에 대해서도 강점을 가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개발자이기 때문에 개발을 잘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차 프로젝트가 끝나고 은우님께서 어떤 개발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다. 함께 일 하고 싶은 개발자가 되자.
내가 생각했던 목표와 나름 비슷하지 않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남들이 필요로 하는, 함께 일 하고 싶은 개발자가 되고 싶다. 이제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