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

Hyunsoo Lim·2022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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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20년 이야기를 하려면 2019년부터의 맥락이 필요해서 짧게 정리해본다.

연을 끊다

가족 사업은 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희망을 마지막 순간에 뒤엎어버린 어머니의 결정으로, 큰 꿈을 가지고 10년 넘게 투신했던 농식품업계를 2019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TMI지만 어머니랑 인연도 완전히 끊어버렸다.

데이터 분석 공부 시작

다른 길을 찾으려고 의도했다기보단, 2019년 중반에 무료 세미나를 들었던 게 재밌어서 파이썬으로 하는 데이터 분석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유일하게 매달릴 만한 꺼리라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무료 세미나 이후 유료 등록하고 석 달 정도 매주 오프라인 강의를 듣다가, 이후엔 마지막 클래스에서 만난 분과 스터디를 조직 & 모집해 더 공부를 했다. 데이터 분석 쪽으로의 공부는 커리큘럼을 조직하기가 애매해 의논 끝에 <핸즈 온 머신러닝> 1판을 독파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달렸다. (책이 참 좋았는데 거의 끝내고 나니 2판이 나왔...)

2020년


스터디 1기

매주 지정 범위를 각자 공부한 뒤 담당 인원이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나름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스터디원 대부분 딥러닝에 뜻을 뒀던 게 아니라 텐서플로우를 다루는 2부 이전, 그러니까 머신러닝 이론까지만 공부를 했다.

딥러닝은 마침 그 시기에 <데이터 홀릭>이란 팟캐스트를 통해 udemy란 온라인 강의를 알게 되어 독학했다.

비전공자이기도 하고, 어떤 걸 공부해야할지 몰라 가장 막막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엔 부트캠프나 국비교육 같은 게 있는지도 몰라서 무식하게 독학과 스터디 그룹을 병행했다.

스터디 2기

문제는 책을 끝낸 이후. 집중적으로 파고들만한 새로운 주제를 잡지 못해 이것저것 조금씩 맛만 보는 수준으로 꾸려갔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팀원 변동도 당연히 있었다.

스터디 2기는 1) 상의를 통해 주제를 잡고 (이번엔 시계열이란 걸 공부해볼까?) 2) 데이콘이나 캐글 같은 곳에서 레퍼런스를 찾아 풀어보는 식으로 꾸려갔는데 가끔 1), 2) 순서가 뒤바뀌기도 했다.

스터디 자체는 그닥 효율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나 말고는 대부분 분석 쪽 현업자였는데 구직자와 현업자의 텐션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구직 활동 시 팀원들로부터 심적으로 많이 도움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

취업기

스터디 1기가 끝난 시점인 2월부터 조금씩 서류를 넣기 시작했다. 관련 공부를 야매로 한 지 6개월도 채 되질 않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절박함 한 사발도 있었고.

포트폴리오는 스터디를 통해 풀거나 정리한 캐글 케이스와 udemy 강의 듣다가 실습 예제 정리한 것들로 채워나갔다. 사실 포트폴리오라 하기엔 부끄럽지만 그렇게라도 채워야했다. 원서는 사람인 포맷으로 하나만 작성해 데이터 분석 혹은 모델링에 관련된 곳이라면 마구잡이로 넣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가끔 운 좋게 서류 통과하면 과제 풀어볼 기회 혹은 면접 기회가 생기는데, (잦은) 탈락에서 오는 실망감 따윈 감내하고도 남을 효용이라 생각했다.

그 중 데이터 분석 관련한 A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과제 통과 후 2차 임원 면접까지 봤는데 과제를 굉장히 재밌게 그리고 잘 풀었다. 1차 면접에선 팀장과 팀원이 어떻게 이렇게 풀었냐며 순전히 감탄하며 되물을 정도로. 그런데 2차 임원 면접에서 사장이 내 나이 가지고 태클을 걸기 시작하더니, 그런 줄 알았으면 더 빨리 관두고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내 과거의 선택을 비아냥 대길래 여긴 붙어도 안 간다고 마음 먹었다. 근데 떨어트려서 더 기분이 상했...

바로 후에 주식 데이터 분석하는 곳에 지원하며 관련 공부도 급하게 하고 과제도 풀었는데 코딩+알파였다. 코딩이나 알고리즘 공부가 따로 있는 줄도 모르던 시점이라(백준이 뭐죠?) 별도로 공부를 한 게 아니지만 문제를 재밌게 풀었는데 덕분에 2차 실습까지 볼 기회를 얻었고, 결과는... 오프라인 3차 실습 + 면접.

원래 3차 실습은 없는데 내가 푼 내용을 보니 잘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한 번 더 살펴보고 싶다더라. 온 김에 면접도 보는 거고. 더 어려워진 난이도에 당황도 했고, 급하게 쌓아올린 지식들을 연결하지 못 해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6월 즈음엔 데이터 분석 관련 업체 한 곳(B사)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아주 암울했고 마지막엔 사소한 걸로 트집 잡아 연봉을 후려치기도 했지만, 사정 상 앞서 언급한 A사 같은 똥이라도 집어 먹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자격요건 상 안 될 것 같지만 딥러닝 관련 업체에도 원서를 넣었었는데, B사 합격 후에 연락이 와서 면접을 봤다. 기술 면접은 당연히 부족했지만 그냥 맘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덜렁 붙어버렸다. 규모도 어느 정도 있고, 애초부터 직원을 후려치는 곳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서 B사에 죄송하단 메일을 보냈다. (전혀 죄송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대 후반 of 후반에 신입이 되었다.

다시 돌아봐도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운은 입사 후에도 어느정도 이어졌다.

신입 데이터 분석가...가 아니라 개발자?

7월에 입사하고 보니, 날 뽑은 부서는 딥러닝이 아니라 어플리케이션 개발 부서였다. 모델링 팀과 협업하며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해당 팀과의 가교 역할을 하길 바라며 날 뽑았던 것.

그러다보니 위치가 매우 애매했다. 소속팀이 아니라 모델링 팀에서 일을 받아야했는데, 그 쪽 팀장(ㅊ님)도 타 팀 사람에게 지시내리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타고난 슈퍼 내향인 성향을(트위터에서 rt만 해대는 이유가 딴 게 아님) 10년 이상의 사회 생활로 두꺼워진 낯짝으로 눌러가며 ㅊ님에게 엉겨 붙으며 일을 받았다.

결국 대용량 텍스트 데이터 전처리 파트를 맡았는데, 개발 뿐 아니라 이중화 아닌 이중화 같은 설계도 내가 알아서 해야했다.

문제는...입사 전까지 데이터 분석용 파이썬 코딩 외엔 개발에 대해선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는 것. json이 뭔지, api가 뭔지, 더 나아가 프론트가 뭐고 백엔드가 뭔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회사 차원에서 환경 세팅 매뉴얼이나 교육도 없었고, 가상환경이 뭔지도 모르는데 이놈의 텍스트 전처리용 라이브러리는 윈도우에서 잘 깔리지도 않았다.

초반에 헤맬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결국 독학 밖에 답이 없었다.

도커를 시작으로 크롤러, tfrecord 생성, 리눅스 커맨드, 멀티프로세스, 장고 등 주워들은 키워드를 마구잡이로 학습하는 와중에 국립국어원에 문의해 받은 대량의 데이터를 추석 연휴 내내 파싱하기도 했다.

압축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쌩초보에서 주니어 수준으로 성장한 정도지만.

제대로 된 사수나 교육 시스템이 있었다면 고생은 덜했겠지만,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분야 막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에 이런 마인드 덕을 본다) 초기부터 전처리용 서버를 따로 받은 것도 이것저것 익히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2월 쯤엔 담당 업무에 약간 익숙해져서,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백엔드를 설계한 팀원 외엔 Elasticsearch 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이 없었는데, 뒤늦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손쉽게?) 더 잘 할 수 있을만한 분야라 생각했다. 이후 1~2주 동안 잠 줄여가며 공부를 빡세게 한 뒤 나름 복잡한 쿼리도 짜 통계 파트 개발도 하고, 타 팀 담당이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TF-IDF 를 ES로 빠르게 구하는 기능을 내가 대신 구현한 게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여러 이익 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프로젝트 자체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2021년에 계속)

회고의 회고

정말이지 운빨의 2020년이었던 것 같다. 입사 자체가 천운이었고, 생각도 못 했던 개발자 트랙을 타게 된 것, 프로젝트에선 어정쩡한 위치라 오히려 앞뒤로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것 모두.

가내수공업 수준의 가족 기업에서의 10년 경험이 도움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닌지, 코 앞에 닥친 코딩 뿐 아니라 각 판의 큰 그림을, 그 속에서의 각자의 역할과 한계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무의식 중에 했고 그런 자세가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데 꽤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법을 고민하고 그걸 코딩으로 구현하는, 개발이라는 행위가 (아직까지는) 재밌다. 퇴근 후에도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가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아도 괜찮았던 건 재밌었기 때문이리라. (그걸 받쳐주는 체력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2020년 겨울에 알게 된 이승윤이란 아티스트의 모든 노래와 서사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이승윤 알라리깡숑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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