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이 벌어진 한 해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이직, 코로나를 겪었고 국가적으로는 후...어떻게 6개월 남짓만에 한 나라가 이렇게나 망가지냐.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하인 상황이 앞으로도 한참 남았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윤석열 ㅆㅂ
할 줄 몰랐다.
효자 코스프레하던 어린 시절엔 정말 아무 생각없이 결혼하면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야지 했었는데, 가장 큰 장벽인 걸 너무나도 늦게야 깨달았다.
덕분에 연애도 쉽지 않았는데, 결혼은 무슨 이라고 생각하며 결혼에 연연하지 않은지 오래되다 보니 오히려 결혼이란 제도를 피하게 되었는데, 연을 끊으니 모든 게 해결되었다.
결혼식 초대조차 하지 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해 코로나 백신 맞으면 초대할 거라 조건을 걸었는데 처음엔 알았다고 하더니 결국 그 조건을 거부해서 무산.
상주석에 대신 모시고자 부탁한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도 처음엔 알았다고 하더니 어머니가 언젠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까봐 겁(?)이 났던건지 후에 거절 의사를 밝혀 무산.
(그 분들이 결국엔 식도 안 와서 조금 섭섭하긴 하더라..)
결국 상주석은 비워놓고 치뤘다.
별일 없더라.
항공사가 멋대로 비행편을 취소시키거나(필리핀 경로의 에어아시아가 종종 그런다고), (당시) 예비신부님께서 결혼식 1주일 앞두고 회사에서 야근하다가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혼식은 재밌게 치뤘다.
주례 없이, 사회는 여성 분으로, 양측 친구들의 축사, 밴드 활동을 하는 동료분의 축가로 최대한 우리만의 축제라는 색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나름 성공한 것 같았다. 식장 밥도 맛있었고.
여담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법 이란 노래, 결혼식 축가로 참 좋더라.
신혼여행지는 필리핀 세부 근처의 보홀이란 섬.
보홀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팡라오 쪽의 숙소와 팡라오에서 2시간 더 들어가야 하는 안다 지역의 숙소에서 묵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자도 좋긴 좋았지만,
숙소 전체를 전세낸 느낌의 후자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10년 쯤 후에 기념으로 한 번 더 오고 싶을 정도로. 체크 아웃할 때, 친구한테 우리 숙소 소개시켜주고 안 친한 사람들에겐 팡라오 쪽에 소개시켜주고 라고 주인이 농을 던지기도 했는데 공감했다.
고요하고 넓고 깊고 어두우면서도 밝아 여러모로 두려움을 자아내면서도 짜릿한 난생 첫 스쿠버 다이빙의 경험도 좋았지만, 낙원 같던 숙소와 근처 현지인의 삶의 공간의 차이가 너무나 극명해 한 번씩 숙소 밖을 나갈 때마다 들었던 묘한 죄책감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6월에 회사에서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놔 (에어컨 바람을 정통으로 받는 자리) 종일 추워서 감기인가 했는데, 퇴근 후 전기장판 위에 눕고도 밤새 벌벌 떨어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다음날 병원을 가니 대번에 코로나 확진 판정. 걸린지 모르고 넘어갔거나 슈퍼 면역자라 생각했었는데, 이건 걸리고 모를 수 없는 감기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전에 걸려서 다행이고, 백신 접종을 다해서 그런지 이틀 빡세게 아프고는 버틸만하게 넘어갔다.
2020년 회고에도 정리했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 개발자로 전직했고, 개발 문화랄 것이 전혀 없었지만 좋은 팀장(디자이너 출신의 기획자)님과 동료들을 만나 야생에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직한 첫 회사에는 고마운 마음만 가득..하지만 헤드급에 모 인사가 새로 들어온 이후 회사 분위기가 안 좋아지더니, 바쁘고 힘든 시점에 일 잘하고 능력 좋다고 생각하는 순으로 회사를 탈출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개발자로서 좀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신기했던 건,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저 친구는 끝까지 가겠구나 했는데 나간다니 의외다..라는 반응을 꽤 여러 사람이 보였단 거. 결혼을 했으니 더 좋은 곳으로 갈 필요성이 더 커진 거 아닌가 싶은데 아닌가?
무튼 운 좋게 스타트업 같은, 하지만 이미 캐쉬카우가 있고 시니어가 많고, 사람들도 문화도 좋은 이상하리만치 좋은 곳에 이직을 성공해 11월부터 근무하게 되었다.
이제 만 2개월 채워가는데, 시니어들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 늘 감탄하고 배울 게 많다고 느끼고 있다. BE/FE 구분없이 다 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것만큼 생산성이 나오질 않아 스스로 안타깝지만, 보고 배울 게 많은 환경이라 마음을 편하게 먹고 발전하려고 한다.
퇴직 기념 회식하고 돌아오는데 잘 쓰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 한 쪽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음질을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찾아보는데 마침 블루투스 헤드폰에선 음질로는 끝판왕이라는 제품이 출시 이벤트를 하는 시점이라 큰 맘 먹고 질렀다.
물질적인 건 보통 기쁨이 일주일 정도 가면 오래 간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2개월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쓸 때마다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공간감 넘치는 사운드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니! 여태 좋아했던 아티스트들의 음반도 다시 찾아 듣고 있는 요즘이다.
참고로 블루투스 헤드폰 제대로 쓰려면 꼭 BTD-600 같은 블루투스 동글 물려야 한다.
세대주 분께서 고생 끝에 획득한 돈으로 PT를 끊어주셨다. 사실 신혼여행지에서 숙소에 딸린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는데, 내가 운동기구를 너무 못 다뤄서 답답해서 끊어준 거(...)
평생 홈트만 하다가, 특정 근육에 집중해 기구로 운동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우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PT 끝나고 이제는 혼자 운동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해서,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해야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일해요 아자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