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빙 둘러싼 주위의 세계가 녹아 없어져 자신으로부터 떠나가 버리고,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이 순간으로부터, 냉기와 절망의 이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예전보다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 채, 싯다르타는 불쑥 일어났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마지막 전율, 탄생의 마지막 경련이었다.'고 느꼈다.
🙋♂️🙋♀️싯다르타가 익숙한 세계로부터 떠나려는 순간을 묘사한 내용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을 떠받치고 있으며 발로 딛고 있는 환경을 뒤로하면서 외롭고,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굳은 결심을 통해 더 단단한 자신을 만들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이 절절히 느껴졌다.
소년 시절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내면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떠나거라! 떠나! 너는 소명을 받은 몸 이니라!" 정든 고향을 떠나 사문 생활을 선택하였을 때에, 그리고 그 후 다시 사문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완성을 이룬 자인 고타마에게 갔을 때, 그리고 또 그 완성자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불확실함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때에도, 자기는 바로 그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기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보다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여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자기가 걸어온 길은 얼마나 단조롭고 황량하였던가! 자기가 높은 목표도 없이, 갈증도 없이, 향상도 없이, 자그마한 쾌락들에 만족하면서도 결코 흡족해하지 못한 채 헛되이 보낸 세월이 그 얼마나 길었던가!
'이제.' 그는 생각하였다. '이 모든 덧없는 것들이 다시 나한테서 떨어져 나가 버렸으니, 이제 나는 다시금 옛날 내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백지 상태로 태양 아래 서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의 것이라고는 없으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런 힘도 없으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내가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지금, 머리카락이 벌써 반백이 다 된 지금, 그 온갖 힘들이 다 약해져 버린 지금,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어린아이 상태에서 다시 새로 시작을 해야 하다니!' 또다시 그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자기의 운명은 얼마나 기구한가! 자기의 운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이제 자기는 다시 빈 손에 벌거숭이에다 어리석은 상태로 이세상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일 그렇다고 하여 비통한 느낌이 든 것은 아니었으며, 아니, 오히려 심지어는 비웃고 싶은 커다란 충동을, 자신에 대하여 비웃고 싶은, 이 이상야릇하고 우매한 세상에 대하여 비웃고 싶은 커다란 충동을 느꼈다.
"당신도 그 비밀, 그러니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비밀을 강물로부터 배웠습니까?"
바주데바의 얼굴이 밝은 미소로 가득 찼다.
"그래요, 싯다르타." 그는 말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 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도처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이보게, 고빈나, 내가 얻을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따금씩 예감했으며, 이 때문에 내가 그 스승들 곁을 떠났던 거야.
헤세가 싯다르타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했던 말이지 않을까.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듯이 우리의 인생에서는 스승이라는 존재가 필요하고, 스승을 통해 지식을 배우며 지혜를 체험하지만 그 스승을 통해서 지혜 자체를 전달 받을 수는 없다. 지혜라는 것은 결국엔 스스로 깨달아서 체화해야 하는, 자신이 남이 준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든 지혜를 믿고 자신만의 믿음과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으로 발현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