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9일차][끝]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tiago de Compostela)까지

이재호·202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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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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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06.29(토) 내용 정리

오늘의 지출

  • 순례 증명서+케이스: 5유로
  • 팔찌: 3유로
  • 점심: 1.7유로
  • 알베르게: 10유로
  • 저녁 장: 13.6유로
  • 총 지출: 33.3유로

오늘도 평상 시와 마찬가지로 07:00 쯤에 숙소에서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대충 19km 정도 떨어져 있다. 성수기가 시작돼서 그런지 아니면 목적지에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전보다 많이 보였다. 오늘은 걸으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어제 많은 감정을 느꼈던 탓인지 생각보다 덤덤하였다. 오히려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좀 답답했다. (난 사람들이 많은 걸 싫어한다. 듬성듬성 있는 걸 좋아한다.) 어쨌든 그렇게 걸었다.
걸으면서 10km, 9km, ... 로 점점 남은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감정이 딱히 올라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점점 도시가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뒤면 약 한 달간의 여행이 끝이 나는구나.)
그리고 어느 새 산티아고 대성당이 눈에 나타났다. 성당 앞은 인산인해였다. 버스킹 공연도 있었고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러 사람들도 있었다. 대성당을 보는데 크게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당 자체보다는 최종 목적지라는 것이 더 와닿았을 뿐이었다. 어쨌든 성당을 지나서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이 곳에서 순례자 증명서 발급과 케이스 구매를 하였다. 그리고 내 크레덴시알의 마지막 빈 칸에 세요를 찍었다. (일부러 마지막 칸을 남겨놨다.) 증명서 발급을 마치고 다시 성당 앞으로 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온 것 같아서 좋았다.) 이제 더 이상 할 건 없었다. 그래서 일단 Dia로 가서 도넛 두 개와 환타 하나를 사서 대충 점심을 먹었다. 그리곤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다른 알베르게는 너무 비싸서 그냥 공립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길거리 공연이 있어서 잠시 구경을 했다.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흥겹게 춤을 추면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나서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모자와 보호대를 세탁했다. 이제 모든 걸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정비를 마치고 근처 대형 마트로 가서 저녁에 먹을 고기와 파스타, 와인을 구매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맛있게 저녁을 해먹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와인도 6유로 정도인데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평소와 같이 마지막 날을 마무리했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걷는 걸 좋아하고 취업 전에 여행을 하고 싶어서 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생쟝에서 출발하여 이 곳까지 걸어서 오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목표에 도전하여 성공하면 마냥 기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보다는 이제 뭘 해야하지와 같은 공허한 마음이 더 크다. 목표를 이루니 목표가 사라졌다. 이젠 정처없이 여행을 더 즐기기만 하면 될까. 아님 한국에 돌아가서 또 목표를 향해서 걸어야할까. 내가 걷는 거 말고 어떤 걸 좋아했나.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산티아고라는 사람이 나에게 이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난 그저 이 길을 따라서 걸었다. 하지만 길의 끝에 다다르니 이제 더이상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이젠 내가 길을 만들어 가야한다. 이 감정을 20살때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이후로도 여행을 더 이어갈 생각이다. 먼저 포르투갈을 가서 여행을 해보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거쳐 튀니지로 향할 것이다. 이제는 뭘 해야한다가 사라졌다. 정말 여행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짧은 기간동안 788km의 거리를 걸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온전히 걸음으로, 내 짐을 항상 짊어지고 완료했다는 게 뿌듯하다. 이제는 걸을 필요가 없다. 그저 즐길 일만 남았다.

나중에 늙었을 때 이 곳을 다시 와보고 싶을 것 같다. 그때는 나의 자녀 혹은 손주와 함께 와서 젊었을 때의 나를 다시 만나봤으면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총 지출

  • 처음 금액: 1300유로
  • 남은 금액: 579.84유로
  • 쓴 금액(유로): 720.16유로
  • 항공료(인천to파리): 438,700원
  • 기차(파리to바욘): 201,359원
  • 생쟝 숙소: 32,075원
  • 쓴 금액(원): 672,134원
  • 총 액: 579.84유로 + 672,134원

도전을 하였다. 그리고 도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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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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