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연금술, 이분법과 취향의 관계에 대하여

dante Yoon·2022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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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리의 법칙 읽으며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을 메모한 것입니다. 주관적인 글이고 엄격한 규칙을 따라 다듬어지지 않았음으로 표현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들어가며

좀 불편하네요.
불편하다.
불편함
UI / UX의 개선을 요청하는 단어가 아니다. 싫은 감정의 커다란 알맹이를 불편함이라는 작은 사탕 껍질에 담아 표현하는 단어다. 몇 년 전부터 이 불편함이라는 단어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으나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타인에게 주기 싫을 때, 싫은 것은 이야기 해야겠으나 개인의 이미지 또한 포장하기에 매우 용이한 도구가 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TMI지만 개인적으로 좀 불편한(?) 표현이다. )

우리는 지금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회에 살고 있다. 기존의 관습에 반항하는 아방가르드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취향을 과감하게 남들에게 드러내고, 개인의 감정을 꽁꽁 숨기기보다 처음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격려 받는 상황을 이제 어느 조직에서든지 꽤나 공공연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감정은 커다란 물통에 물감 한 방울이 번져나가듯이 변화가 무쌍하고 자유롭다. 영화나 책을 보고 느낀점을 공유할 때, 우리는 각자의 취향이라는 거울 속에 반사되는 각자의 감정을 이야기하곤 한다.

즉 어떤 사람이 감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취향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감정이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회란, 개인의 취향 또한 중요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2015년 군생활 당시 생활관의 연등 시간을 책임졌던 언프리티 랩스타2의 첫화의 인터뷰에서 나왔던 말이다.

제작진: '네가 하는건 힙합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 거에요?
헤이즈: ** 네가 하는건 뭔데? 

버라이어티 쇼나 특정 예술 분야에서나 나올 수 있는 표현들이 이제는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대중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이 좀 더 힘을 얻고 정당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분법

이성감성, 논리감정은 십자가의 양 끝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이 서로 이어져 있고 겹치는 부분이 있으나 그 명백한 추상적 거리감을 인지할 수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렇게 분명한 거리감을 나누는 방식에 대하여 이분법이라는 소분 규칙 이름을 명명하였다.

이런 이분법의 양 끝단에 어떤 일상 속의 상황과 단어를 대치시키지는 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흑백 논리라고 하는 아무 잘못 없는 깔끔한 흰색과 검은색을 빌려 우리는 이러한 이분법을 약간 부정적인 경향으로 묘사하고 평가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연금술

마스터리의 법칙에 따르면 대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수면에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떠한 생각을 끌어 내고 기존 사회가 정의하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예시로, 공공 시설을 이용해 예술 작업을 하는 뉴욕의 비쥬얼 미술가인 테레시타 페르난데스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녀는
최소한의 재료를 이용한 간결한 방식보는 이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주의적인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양립되고 상반되는 접근법을 통합 해보고 싶어했고, 이러한 그녀의 자기 내면을 이용해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애틀 클라우드 커버를 만들어 냈다.

https://www.realityandretrospect.com/blog/tag/seattle+cloud+cover

이 책은 이러한 작가의 천재적인 감각을 연금술에 비유하여 양립할 수 없을 것 만 같던 두개의 상반된 개념을 합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성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기준과 관습, 그 안정감

앞서 말한 예시의 효과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현 시대에서 정의하는 표준적인 기준과 관습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

책에 따르면 이분법적인 사고가 존재하는 것은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것을 꺼리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모종의 결속성과 안정감을 위해 우리는 여러 개념을 양 끝단에 배치하여 분리하는 경향을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와 경험은 이분법적 범주와 일치할 수 없으며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기존의 분리 기준을 변형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분법적인 접근법을 유지하는 데에 우리가 평소에 관찰할 수 있는 많은 진실을 억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가

기존에 특정 현상이나 물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틀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일어남을 목도할 수 있다. 평평한 지대를 만들기 위해 선조들이 다져놓았던 기준의 일부 영역을 밑에서 피자 도우의 일부분을 손으로 쭉 늘어뜨리듯 힘을 주게 되면 분명 경사진 두 부분이 발생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취향이 힘을 얻게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가끔 요청과 취향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취향

당신이 아이스크림에 파핑 캔디 대신 피클을 올려먹던 초코시럽대신 타바스코를 뿌려먹던, 당신이 직접 먹방을 찍은 영상으로 내 시야를 차단하기 전까지 나는 전혀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해당 영상이 올라간 유튜브 채널을 찾아가 영상의 주인공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에게 반박 댓글을 쓰는데 더 힘을 쓰곤 한다.

이것은 명백하게 개인의 취향이고 당신이 콜라를 먹던 다이어트 콜라를 먹던 나한테 뿌리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요청

하지만 이렇게 나의 비루한 글에 예시로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의 굉장히 개인적이고 추관적인 취향이 어떤 공동 작업의 안건으로 올라온다면 어떨까.

나는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 크림 콘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전달한다. 대개 고객들은 나에게 아이스크림 값 그 이상의 가치를 요구하지 않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취향이 각광받는 모습을 나의 조그마한 트럭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뜻한 아이스크림 콘을 만들어주세요.

애초에 아이스크림을 요청하는 클라이언트의 뇌에는 아이스크림 = 영하의 온도에서 액체의 응고로 인한 점밀도의 보장이 이뤄진 간식거리라는 개념은 최소한 존재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아이스크림 트럭 운전수가 아니라 호그와트 출신의 해리포터의 동생이라고 할지라도 내 마법 지팡이는 당신의 요청을 이해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개인의 취향을 창의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술과 연금술

추상적인 두가지 상반된 개념의 힘을 빌어 하나의 뛰어난 생산물이 창조되는 것을 목도할 때 우리는 마치 연금술을 보는 것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에서 연금술이 발현되길 요청하는 것은 떄로는 매우 지나친 요구가 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제작에 있어서 클라이언트의 요청과 구현까지 엔지니어의 일은 요청을 듣고 문제를 정의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정의할 수 없는 문제는 애초에 풀 수가 없다.

부디 이런 요청을 받게 된다면 당신의 취향과 고객의 취향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당신의 프로그램이 세상에 튀어나왔을 때 고객의 만족도의 바운더리를 넘기를 바란다.

마치며

결국 요청취향은 명백하게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글이 이렇게 길어졌다.

책의 일부분에서 시작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적게 되었지만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글로나마 생각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게 내 취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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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향한 작은 몸부림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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