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환율과 금리로 보는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_오건영

Jihwan Jung·2022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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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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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환율과 금리로 보는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 지식노마드


#1 일본 버블 형성(처음~45p)

이 책을 읽으며 환율과 금리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영향력이 세삼 두렵기도 했다. 주된 내용은 일본의 경제 위기와 IMF, 유럽의 재정위기, 중국의 부채위기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나라의 경제 위기들을 담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여러 문제들을 현명하게 대처하려고 했던 행동들이 더 큰 위기를 낳기도 하고, 이론과 다르게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환율과 금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경제 흐름이 어디를 지나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큰 줄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블로그에 작성할 독서 노트는 책이 담고있는 내용들을 간단하게 요약함과 동시에 내 생각을 같이 적어볼까 한다. 1장은 일본 버블을 중심으로 담고 있고, 그 시작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쌍둥이 적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1970년대는 오일쇼크와 함께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국 경제 또한 어려웠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 고물가는 경제학자들을 꾸준히 괴롭혔다. 이때 임명된 미국 연방준비은행(Fed)의 의장 폴 볼커(Paul Volcker)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폴 의장은 기준 금리를 인상했다. 통화정책에서 기준금리는 매우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거시경제에서 이 기준금리의 영향력은 입이 마르도록 얘기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줄어들어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하지만 수요가 감소하는 만큼 물가가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 즉, 경기 둔화를 감수하고 물과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때 미국 Fed 기준금리는 20% 가까이까지 인상됐다. 당연하게도 이정도의 대출금리를 감수하며 마진을 낼 수 있는 회사가 없었기에 많은 기업들이 도산을 하게 된다. 실업문제도 함께 대두됐다. 물론 기대했던대로 상품에 대한 기업과 가계 수요가 줄어들고, 가격 또한 하락되으며 물가는 안정된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경기 둔화를 감수하고 금리를 인상했기에, 물가가 안정되었지만 경기는 여전히 침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 또한 이 문제를 고심했다. 물가 안정 이후 Fed에서도 과도하게 높았던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여러 경기부양책 또한 효과를 보였는데, 그 결과 1980년대 중반의 미국 경기는 어느정도 개선됐다.

하지만 경기 부양책의 후유증도 있었는데, 경기 부양책중 하나였던 감세는 재정 지출에 부담을 주었고 미국의 재정은 적자 상태에 빠졌다. 저유가, 저금리, 저엔(¥) 덕택으로 일본이 수출 성장을 꾀할 수 있었기에 미국의 수출도 쉽게 살아나지 못했다.

기준 금리를 20%가까이 인상했던 후유증은 또다시 문제가 됐다. 달러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즉, 달러 표시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 미국은 타국으로 수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수또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일본의 서독의 제품이 경쟁력이 있었기에 미국의 소비자들도 일본의 자동차를 구매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경기 부양책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수출이 어려움을 겪으며 생기는 '무역 적자'가 동시에 원인이 되었다. 금리 인상의 후유증과 타국(일본, 서독 등)의 수출 경쟁력 상승도 촉매제로 작용했다.


플라자 합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미국은 그 원인을 일본과 서독의 대미 무역흑자에서 찾았다. 즉, '일본이 미국에 수출을 너무 많이 해서(물건을 너무 많이 팔아먹어서)' 미국의 내수성장이 안되고 경기 또한 침체된다는 것이다.'

이는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로 이어졌는데 플라자 합의는 엔화 가치를 상승시켜 달러의 가치를 낮추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의 의도는 엔화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수출 경쟁력 하락을 유도할 수 있고, 반대급부로써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싶었다.

예상됐던 플라자 합의의 결과로 달러-엔 환율이 하락했다. 1983년 달러당 250엔 수준이었던 달러-엔 환율이 1988년 초에는 달러당 120엔이 되었다. 더 적은 엔(¥)으로 달러와 맞바꿀 수 있다는 말은 달러의 가치가 줄어들고 엔(¥)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말이다.

엔화 가치가 낮을때에 비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줄어들었고, 일본의 무역 흑자 증가폭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플라자 합의를 통한 엔화 절상이 미국의 무역 적자 증가를 제어하는 효과는 없었다. 미국이 일본 물건을 적게 산다고 해서 그동안의 적자가 줄어들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루브르 합의

미국은 무역 적자를 줄이고 싶었지만, 플라자 합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엔화 가치를 높혀 일본 물건의 가격 경쟁력이 감소한건 사실이지만, 일본 물건이 과거보다 적게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는 미국 무역 적자를 줄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루브르 합의가 진행됐다.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일려면, 일본의 내수를 키워 미국의 물건을 많이 사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루브르 합의는 일본의 기준금리를 낮춰 내수를 확장하고, 미국의 물건을 많이 수입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내제되어 있었다. 즉, 루브르 합의 이후 일본은 당시 기준금리였던 재할인율을 0.5% 인하했고, 내수 부양을 위한 각종 대책을 도입하게 된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한 태도가 완화되어 집 사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또한 금리가 낮아지고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수입되는 물건의 가격도 저렴해졌다. 당시 일본의 주택담보대출 비율(LTV)가 120%에 달할 정도로 돈이 많이 풀렸다.


일본의 버블

미국보다 더 비싼 땅, 치솟는 주가는 일본의 경제 성장을 암시하는 듯 했지만 사실 이는 일본의 아픈 과거가 되었다. 즉, 내수 활성을 유도하고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가 투기 과열로 이끌었고 일본 경제는 버블 상태가 되었다. 실물 경제의 성장 없이 시가 자산의 가격(부동산, 주식 등)이 투기에 의해 계속 치솟았던 것이다.
이 버블 시기에는 부동산 투기에만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소비 시장 역시 과열되었는데, 당시 생활상을 보면 해외로 나가 명품을 쓸어담는 일본인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루브르 합의를 통해 미국이 예상했던 것 처럼, 일본의 내수가 확장(내수 버블)됨과 함께 미국 물건의 수출이 용이해졌고 미국 물건을 많이 사들였던 일본에 의해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즉, 플라자 합의를 통한 환율 조정, 루브르 합의로 인한 금리 인하 및 내수 부양정책의 확대는 미국 입장에서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해결했다. 즉, 저유가, 저금리, 저엔(¥) 덕택으로 일본이 수출 성장을 이끌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그 결과로 일본은 거대한 버블이 터져버리며 한참 고생하게 되었다.


블랙 먼데이

경기가 어려웠기에 대다수의 국가들은 수입보다 수출을 선호했다. 다른 나라에 수출하면서 재정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 부족의 시장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데, 공급이 넘치게 되어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 회사의 마진은 축소된다. 또한 고용이 축소되고, 개인의 소득이 축소되고, 이는 또 수요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를 거치며 미국은 일본에게 자신들의 물건을 사주길 요구했고, 만성적 수요 부족이라는 큰 문제는 서독과 일본이 어느정도 떠앉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글로벌 금융 시장은 강세를 보일 수 있었다.
당연히 자산 시장의 과열 양상에 두려움을 느겼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서독 중앙은행은 먼저 자산 버블 우려와 내수 과열을 차단하기 위한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었다. 즉, 글로벌 수요로서 역할을 축소할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일본 역시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금리를 인상하므로써 자국의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어느정도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글로벌 수요 위축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고, 강세를 보였던 시장이 다시 고꾸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결국 월요일이었던 1987년 10월 19일, 미국 다우스 존스 지수가 하루만에 22% 이상 하락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미국 주식 시장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나 서독에서 금리를 인상하거나 부동산 버블을 견제하는 긴축 통화 정책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끝으로

일본 경제학자들의 무능을 탓하며 책을 읽어나갔지만, 여러 부담으로 인해 금리를 올려 버블에 대응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당시 현실도 알게 됐다. 또한 일본의 내수를 키우자고 주장하며 체결했떤 루브르 합의 당시 미국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또한 국제사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배제하고서라도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걸 또다시 느끼게 됐다. 환율와 금리는 여러 국가 사이에 걸쳐있는 다리 같은 것이라서 국가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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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月~24.07月 공군 암호병 복무중/ 사회 과학과 딥 러닝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CS&E)입니다. 기술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감각과 기술적 역량을 함께 갖춘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데이터 과학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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