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뉴포트, 『디지털 미니멀리즘』, 세종서적
시대의 흐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간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는건 '디지털의 영향을 누구도 제대로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이유로 신기술을 우리 주변에 추가했다가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신기술이 우리 삶의 핵심을 식민지화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中》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다보니, 혹은 은밀하게 우리 삶에 파고들다 보니 우리가 기술의 발전에서 원했고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무엇인지 따져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SNS 기술들의 밝은 면에 익숙해지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폐해들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접했고 내 삶 속으로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에 대해 언제부턴가 피로함을 느꼈는데, 이 책을 통해 내 삶을 정돈할 기회가 생긴 것 같다.
작가는 기술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인정과 동시에 그 폐해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디지털 기술들이 우리 삶 속에 침투하여 우리의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있음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기술 옹호자들은 와츠앱이 파병 군인들을 고국에 있는 가족과 연결해준다는 사례를 든다. 뒤이어 신기술을 배척하는 것은 부정확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기술 옹호자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우리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것은 온라인 도구들의 효용이 아니다. 문제는 유용성이 아니라 자율성이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中》
실리콘벨리의 흔한 엔지니어에서 비영리단체 타임 웰 스펜트(Time Well Spent)를 설립하게 된 앤더슨 쿠퍼는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일종의 슬롯머신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에서 중독은 어머니의 패물을 훔치는 마약중독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여러 기술 기업들은 우리의 정신을 납치하고 중독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중독을 '해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반복에 대한 강렬한 동기를 제공하는 약물이나 행동에 빠진 상태'라고 정의했다. 2010년에 <미국 약물 및 알코올 남용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행동 중독과 약물 중독의 양상이 비슷하다는 증거들을 사례로 제시한 것 처럼 '행동 중독'에서 벗어나있는 현대인들을 찾기는 꽤 어려울 것 같다. 나 또한 기술 기업들에 의해 정신이 납치된 경험들을 했고, 끊임없이 Instagram 릴스를 내리거나 원래 하려던 것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유도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디지털 기술들로 유도된 행동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심리학자 애덤 알터는 일도 하고 잠도 자려고 했던 비행기에서 6시간동안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날 우리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로 '화면'을 꼽았다. 화면을 매개로 발생하는 신기술의 중독적 속성은 설계단계에서 신중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려할때 순진무구한 우리는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술 기업들이 행동 중독을 발생시키는 요인 두가지는 '간헐적 정적 강화(Intermittent positive reinforcement)'와 '사회적 인정 욕구(Drive for social approval)' 두가지라고 한다. 간헐적 정적 강화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공되는 보상이 우리 뇌에 도파민으로 작용하고, 뇌가 이런 도파민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에서 경쾌한 알람소리를 계속해서 듣거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흥미로운 링크를 누르면서 점차 중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유도된 중독은 우리의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우리 삶을 식민지화한다는 점에서 악(惡)하다.
우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기술들은 우리 뇌 깊은 곳에 있는 약점을 갈수록 정확하게 공략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순진하게 그저 너드들이 하사한 재미있는 선물을 갖고 놀 뿐이라고 믿었다.《디지털 미니멀리즘 中》
행동 중독을 초래하는 두번째 힘든 '사회적 인정 욕구'다. 소셜 미디어의 피드백 버튼은 이러한 욕구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과거 인류로부터 진화해오며 사회적 입지를 관리하는 일이 곧 생존과 직결됐고 이러한 유전자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진화적 거래의 다른 측면은 긍정적 피드백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린다는 부분도 있다.
내가 놀랐던 점은 디지털 기술, 소셜 미디어 등에 우리가 중독되는 것이 결코 우연한 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중독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디지털의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시간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연히 방문한 식당의 주방장이 음식에 마약을 섞고 있다는걸 모른다면 우리는 우리의 식사시간을 그곳에 바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력에 강하게 휘둘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양상 뿐 아니라 감정과 행동까지 통제당하고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中》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대다수 사람이 기본적으로 따르는 맥시멀리즘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맥시멀리스트가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내용을 놓친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때, 미니멀리스트는 사소한 일을 놓치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시간과 주의를 흩뜨리고 결국 도움을 주기보다 피해를 주는 저급한 활동들을 경계한다. 언제나 신중하게 암묵적 비용 편익 분석을 지속적으로 실행한다.
디지털 기술을 보는 관점이 저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폐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감히 필요악(必要惡)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자, 이제 이 필요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확실히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맥시멀리스트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또한 책에서 제시하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 전략 몇가지를 내 삶으로 가져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