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jingjinge·2025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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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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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저는 다시는 챗GPT를 사용하지 않겠다 라는 글을 작성했습니다.

요즘IT에 발행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생각보다 놀랐고, 이만큼 사람들이 AI에 관심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s://yozm.wishket.com/magazine/detail/3076/

이러한 글을 작성하면서도, 필자는 FE개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LLM에 대한 공부나 개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번 글의 내용중 한 문장을 발췌해보겠습니다.

한참동안 내가 패닉에 빠져 있을 때, 내 삶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만약 위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다면 이 책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

제가 어떻게 개발을 시작했고, LLM을 접했고, 어떤 과정을 겪었고,어쩌다 FE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오늘은 그저 저의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개발의 시작

저는 첫 개발을 어떤 언어로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10년전인 16살 ~ 17살 부터 개발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로 하던 작업들을 왜 내가 반복해서 해야 하는지 너무 답답했고

화면 imageSearch를 통해 마우스 이벤트와 키보드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겪던 많은 문제들중 대부분은 프로세스가 구동되는 도중 생기는 변수들이었습니다.

mouse를 이동시키고 보니, 해당 자리에 원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있어서 다시 못 찾는 상황

mouse를 클릭하고 보니, 다른 프로세스를 클릭해 창이 아예 없어지던 상황

X버튼이 가려진 모습

저는 그러한 상황들을 접하고, 타개하면서 꼭 필요한 input과 정갈한 로직, 에러에 대한 처리, 기대하는 결과값에 대한 개념들을 차근차근 체득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인적 노력들을 줄이면서도 마우스가 직접 움직이고, 키보드 타이핑을 시켜놓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과정들이 재미있었습니다.


LLM의 출현

LLM이 등장한건 사실 꽤 오래전에 나왔습니다.

2015년, 샘 알트만과 일론 머스크 등이 openAI를 설립했고, 첫 번째 openAI의 LLM인 chatGPT-1이 등장하게 됩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chatGPT는 처음 나올 당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이 정도로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알게된건 chatGPT3.0이 나오고 나서였습니다.

2022년 대학 컴퓨터공학부 재학중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chatGPT 3.0을 접했습니다.

과가 컴퓨터공학부이다보니, 코딩을 시켜봤는데 저보다 잘하는 모습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샘 알트만, 일론 머스크, 일리야 수츠케버, 제프리 힌튼, 유발 하라리, 하사비스, 얀 르쿤 등 해외 AI 관련 유명인들의 행보를 뒤쫓았습니다.

그에 관련된 칼럼들과 뉴스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한국 뉴스 매체로는 AI타임스를 주로 봤고, 트위터의 AI셀럽들만 follow 해놓고 매일매일 보았습니다.

특이점에, AI의 발전, AI의 지수 발전, 재귀 개선등의 소식들은 저에게 하여금 일자리 감소, 개발자의 몰락 등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야기시켰습니다.


패닉

AI로 인한 장점도 물론 크지만, 개발자가 되기 위해 컴퓨터공학부에 재학중이던 한 학생은 패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대로면 내가 졸업했을 때, 나보다 훨씬 나은 AI들이 있을거고 난 주니어 개발자로서 시작했을 때 시장에 어떤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도 내가 개발하는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을 chatGPT에 의탁하여 생산하고 있는데, 내가 과연 경쟁력이 있는 사람일까

한 동안 많이 방황했습니다. 2년 정도를 그렇게 개발과 멀어진 상태로 다양한 것들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빠른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소식에 산업안전기사를 취득하기도 했고, AI가 대체하지 못할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식물 키우는 유튜버(...)가 되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던 도중

그러다가 접하게 된 책이 유발 하라리 저자의 호모데우스였습니다.


호모데우스

이건 제 독후감입니다.

사실 호모데우스에 직접적인 AI언급은 적습니다.

2015년 발매 당시 미래에 관한 예언 정도를 남겨놨는데, 2024년에 읽던 저는 현재 얘기를 그대로 하고 있는 유발 하라리가 너무 신기했습니다.

저번 글에서 인본주의에 관련된 언급을 잠깐 드렸는데, 간단하게나마 다시 설명드리자면 신권정치의 사회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게 인간 그 자체입니다.

인본주의

이 중요하다에서 인간이 중요하다로 넘어오게 되면서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들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인식의 출발점을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에 두었습니다.

칸트는 계몽주의의 모토로 "감히 알려고 하라"를 제시하며 인간의 이성적 자율성을 강조했습니다.

홉스, 로크, 루소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사회계약론을 통해 도덕과 정치적 권위의 근원을 신이 아닌 인간의 합의에서 찾았습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19세기)는 전통적인 도덕과 가치체계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된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위의 모든 사람들은 당시의 도덕적 규범에서는 맞지 않는 생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노력으로 결국 인본주의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위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또 다시 이끌어 내는게 AI가 될 것이다 라고 잠정 결론내렸습니다.


인본주의의 탈피

제가 주장하는 인본주의에서 다른 것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재정적인 이유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노동 소득의 비율은 대략 55-60% 정도입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함으로써, 인간보다 가격이 낮아지는 분기점에 도달했을때 인간에 대한 재정적인 가치가 저하됩니다.

군사적인 이유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간의 전쟁에서 무인 드론, 무인 정찰기 등 AI를 활용한 군사 작전이 수없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람이 중요해서도 있지만, 사람 1명보다 AI 하나가 더 효율적이게 되는 순간 인간의 군사적인 효용 가치가 저하됩니다.

기술적 자율성의 증가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이 점점 더 자율적으로 결정을 내리면서 인간의 판단과 개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알고리즘 기반 금융 거래, 의료 진단 AI 등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지식 생산 및 접근 방식의 변화

전통적으로 인간은 지식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였으나, 이제는 AI가 방대한 양의 지식을 생성하고 처리합니다.

학술 연구, 예술 창작, 정보 분석 등 인간 지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에서도 AI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 체계의 변화

효율성, 최적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인간적 가치(공감, 직관, 윤리적 판단)보다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에서 인간 전문가의 판단보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더 신뢰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와의 관계

위 사진은 '보이지 않는 눈'입니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각자 본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게 된다면, 나도 잘하고 저 사람도 잘 하는 부분들이 모여 인간 사회 전반적인 기능을 끌어올리는 이타주의로 이어지게 됩니다.

극한의 이기주의가 이타주의가 되는 모습인데,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지던 이러한 도덕적 규범들이 AI와 자동화로 인해 붕괴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적 선으로 이어진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현재는 AI로 인한 과도기적 상황

역사적으로 볼 때, 인류는 여러 번의 기술적 혁명을 겪으며 과도기적 혼란을 경험해왔습니다. 현재 AI로 인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고 반대했지만, 결국 산업혁명은 더 많은 일자리와 새로운 직업군을 창출했습니다.

당시 마차 제조업자들은 자동차의 등장으로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했지만,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며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비슷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컴퓨터가 사무실에 도입되면서 많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고 IT 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출했습니다.

과거 타자수, 버스 안내양과 같은 직업은 사라졌지만, 프로그래머, 시스템 관리자, 데이터 분석가와 같은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습니다.

현재 AI로 인한 불안감과 혼란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기술 혁명은 초기에 두려움과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사회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면서 예상치 못한 기회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과거 산업혁명, 컴퓨터 혁명, 인터넷 혁명을 견뎌낸 것처럼, 현재의 AI 혁명도 견뎌내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인 혼란과 어려움은 있겠지만, 인류는 항상 기술 변화에 적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AI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AI와 경쟁하거나, AI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AI와의 공존

AI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성과 공감 능력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인간 고유의 가치 탐색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특성을 발굴하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창의성, 공감, 윤리적 판단, 사회적 상호작용 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AI 이해력 향상

AI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를 올바르게 활용하기 위한 지식과 판단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위에서 AI 이해력 향상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필자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

AI는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생산적인 영역에서 당연히 사용해야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AI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100%의 정답과, 100%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너가 하는 그 로직 추상화하고 output 뽑아내는거 그냥 LLM에 물어보면 해주잖아

이에 대한 반증입니다.

Prompting을 통해 대답을 원하는 것으로 하게끔 유도할 수 있지만 언젠가 다른 대답을 뱉을 수도 있습니다.

AI의 환각은 인간의 언어를 추론하기 위해 열어둔 가능성이자 족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저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const sum=(a,b)=>a+b;

위 로직은 제가 만들었고, 기대하지 않은 효과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가 만들었고 누가 검증했을까요? 제가 만들고 제가 검증했습니다.

저 함수 자체가 더하기라는 로직 내에서는 잘못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저거 LLM도 잘 짜잖아요

AI를 활용함에 있어 가장 합리적인 질문인 것 같습니다.

LLM은 코딩을 잘합니다.

이것을 검증하고 사용하고자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입니다.

AI가 ASI(Artificial Super Inteligence)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도구로 사용함이 맞습니다.

100%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니까요, 사용하고자 결정하는 것은 개발자인 입니다.

이것이 제가 LLM 개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확률론적 앵무새

현재 LLM은 확률론적 앵무새에 가깝습니다.

작성자의 언어를 인식하고 그에 가장 가까운 대답을 생성합니다.

LLM은 학습 데이터에서 본 패턴을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합니다.

따라서 학습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거나 희박한 정보에 대해서는 부정확하거나 '환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도 매번 다른 답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델이 확률적 샘플링을 통해 답변을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LLM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해'가 아닌, 통계적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생성합니다. 모델은 단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지만, 그 개념이 실제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모델은 언어의 표면적 구조와 패턴은 잘 포착하지만, 심층적인 의미나 의도, 문맥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LLM은 자신이 생성한 내용에 대한 책임이나 의도가 없습니다. 마치 앵무새가 욕설을 따라 할 때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LLM도 생성한 텍스트의 윤리적, 사회적 함의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또 다른 것

AI의 생산성 증대로 인해 인간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저가치해지는 상황은 맞습니다.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보자면 AI의 발전은 산업에 전체적인 생산성을 끌어올림으로써 범지구적인 생활 수준을 끌어 올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특이점이 도래해 ASI로 발전하는 순간이 오게되고, AI의 생산성이 어떠한 것에게도 비교 되지 못하게끔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특이점이 우리 삶에서 꿈처럼 불리우는 양자 역학 상용화, 핵융합 발전 상용화, 상온 상압 초전도체 개발, 다이슨 스피어,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 초전도체 등을 개발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위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다를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입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행복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됩니다.

초지능 AI가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세상에서는 인간 간의 상호의존성이 감소할 수 있으며, 이는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과도기에 있어서 제가 겪은 경험, 짧은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고적 안전망을 구축하여 충격을 줄여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이 저는 좋습니다. 잃고 싶지 않은 저의 작은 꿈입니다.
서로 많이 사랑하고 격려하고 공감하는 시간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결론

저는 복잡한 과정을 추상화하여 단순한 입력만으로 원하는 출력을 나오게끔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 결과가 눈으로 직접 보일 때 더욱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UI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AI 시대가 도래했지만, 코드를 검증하고 실제로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개발자인 의 역할입니다.

LLM은 "확률론적 앵무새"에 가까워 100%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AI를 도구로 잘 활용하되, 인간만이 가진 창의성과 판단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저는 FE 개발을 하는 이유가 단순합니다.

제가 원하는 로직을 직접 짜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국 인간으로서 느끼는 저의 사고로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야한다는 본질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저처럼 방황하는 삶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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