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성경적 작심

주싱·2026년 1월 31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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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이렇게 시작해 본다.

복의 그릇, 복의 통로가 될 사명

팀장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답변을 주기로 했다. 하나님께 엎드린다. 그것 말고 답이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팀장 하거라’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조용히 움직이시고 내게 들으시고 성경을 통해, 온 세계의 모든 것을 통해 말씀하시며 나를 인도하신다. 아래는 토요일 아침 묵상한 말씀이다. 퍼스펙티브스 교육에서 새겨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복의 그릇이 되라고 하셨다. 빈 그릇을 흔들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우리는 부어진 것을 주변에 흘려 보내는 일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그 강의에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다시금 나를 복을 부어줄 그릇으로 그리고 주변에 복이 흘러가게 할 통로의 사명을 주시며 부르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2:1-3)

다음 날 주일 아침 설교 말씀이다. 이번에도 흘러가는 은혜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해는 물이 들어오기만 해서 썩었다고. 흘러갈 때 은혜는 배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틀 연속 주시는 하나님의 같은 결의 말씀에 엎드리게 된다.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 복의 그릇이 되고 하나님이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흘러가게 할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주께서 내가 튼튼한 그릇과 통로가 되게 하시기를 구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태어나 한 번도 맡아보지 않은 어떤 것을 맡아 하는 일은 두렵다. 과거에도 내게 두려운 일들은 많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자주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쩌면 매년 내게 주시는 말씀이 아닌지 돌아본다. 하나님께서 내 앞과 뒤에 계심으로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신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7-9)

종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

신년 부흥회에 힘겹게 참석했다. 퇴근 후 듣는 설교 말씀은 집중이 어렵다. 피곤하고 졸리다. 그 중에 내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말씀이 있다. 종이 되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의 나라를 경험하라. 그 보다 앞서지 말고, 또 멈춰 서지도 말며 그를 뒤 쫓아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가 너를 배불리 먹이고 푸른 불밭에 눕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강사 목사님께서 맹수들은 배가 부를 때만 풀밭에 눕는다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기쁜 소식. 우리가 죽지 않게 되었다는 전쟁에서의 승리의 소식. 강사 목사님의 비유가 실감난다. 그가 강단에 한 청년을 불러 속죄 제사를 드리는 장면을 연기해 주셨는데 그 장면이 왠지모르게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죽음 뒤에 다시 눈 뜰때 천국을 맞이하게 될거라는 그의 설교는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한다.

주께 하듯 하라

1월 22일 창세기 16장 아침 묵상. 학대하던 사래를 피해 도망하는 여종 하갈에게 하나님은 학대하던 여주인에게 돌아가 그에게 복종하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내 위에 두신 권세자에게 복종하며 그를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 섬기라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의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세기 16:8-9)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기나긴 약속의 터널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 할 위치에 있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근본이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1)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창세기 17:9)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들은 후에 사라를 누이라 속임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깨질 뻔한 위기를 자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깨어짐을 스스로 바로잡으신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창세기 20:0)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을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의 약속의 진전은 내가 깨닫지 못한 채 이루어 지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아신다. 그의 일들을 이 아침 마음으로 사모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주님의 길에서 만나는 기근, 하나님께는 다 뜻이 있다

창세기를 계속해서 묵상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고향을 떠나 여정을 시작하는 아브람에게 곧 기근이 주어진다. 먹을 것이 없는 기근. 요즘으로 치면 어떤 것들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내가 몇 년 전 생활비가 다 떨어졌는데 취직이 되지 못한 그런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어그러지는 그런 경험일까? 어쨋든 하나님께서 가자 하신 길을 가는데 기근을 만난다.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하나님께는 다 뜻이 있음을 안다. 내가 성경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듯 내 인생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분명 그렇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2:10)

어려울 때 나타내는 믿음

하나님께서 작년에 내 마음에 심겨두신 말씀이 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네 믿음이 나타날 기회라고 그러셨다. 어려운 상황은 나의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때이다. 이걸 기억하려고 애쓴다.

긍휼한 마음

올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도 일들도 완벽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결과는 어딘지 모르게 완벽함에 의아해 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 가운데 완벽한 것이 피어난 것 같다. 독감에 걸려 골골되던 아침 성경 책을 읽으며 ‘긍휼’ 이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내 본성과 거리가 조금 있다. 거슬리는 어떤 사람을 뒤에서 비난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너무 끔찍해서 마음에서 때어내 버려버리기도 했다. 새해에는 내 마음의 그릇이 좀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비난 하는 대신 기도하라는 지침을 내게 주신적이 있다. 비난 대신 기도할 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상대하기 힘들고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한다.

용수철 같이 말고, 스펀지처럼 잠시 품고

나는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온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좋은 상황에서 온화한 건 사실 온화한게 아니다. 정말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차분할 수 있는 사람이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용수철 같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때가 있었다. 젊을 때 더 그랬고, 지금은 조금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럴 때가 있다. 용수철처럼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화를 내거나 하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상처가 남아 씻기가 힘들어진다. 돌이키기 힘든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누군가와 트러블을 겪은 후에 용수철 같이 일단 반응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막 입으로 뭔가 쏟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냥 일단 말하지 말고 내일 얘기하자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래도 잘 안되더라. 올 해도 돌아보면 그냥 말하지 말았어야 할 순간에 용수철처럼 말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후회했던 것 같다. 2026년에는 용수철 대신 스펀지처럼 잠시 품었다가 차분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브라함은 전쟁의 승리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것들을 취하기를 지체 없이 포기하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들은 신속히 드린다. 나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기도 하고, 버리기도 해야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14:22-23)

단순한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길은 단순하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 다만 그 때와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약속을 잊고 샛길을 선택한다면 우리에게 괴로움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가려는 길이 주 안에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걸어가는 동안 어려움을 만난다면 잠시 하나님께서 내 눈을 가려두셨음을 알아야 한다. 내 눈을 열어 주실 때 나는 샘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창세기 21:1-2, 19)

주 안에서 주도적인 삶, 그러나 하나님을 기념하는 삶

1월 31일 말씀 묵상. 아브라함은 주도적으로 그랄 왕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다. 성경에 그가 이를 하나님께 물었거나 어떤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의 삶은 주 안에서 주도적이다. 그리고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그의 삶이 특별해 보인다. 주 안에서 주도적인 삶을 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삶이 내가 살아야 할 삶의 표본 중 하나인 것 같다.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세기 21:31,33)

2026년 2월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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