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발자가 될 상인가 (네이버 FE 1년차 후기)

lazyCoder·2021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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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싸러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란 말이 있다. 취업이야말로 이 말에 100% 부합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취준 때의 "붙여만주시면 몸과 영혼을 갈아넣겠습니다" 하던 간절했던 마음과 달리 꽤나 나태해진 몸과 '나한테 (FE)개발자가 진짜 맞는걸까' 하는 배부른 영혼을 갖게 됐다. 비전공 네이버 개발자의 "진작 그럴걸" 이 개발자 준비과정에 대한 회고록이었다면, 이번에는 개발자의 삶에 대한 감상을 써본다.

'일 잘하는 방법' 에 대한 글이 아니다. 해보니 내가 일을 x나 못하기 때문에 쓸 수도 없다.😞 굳이 주제를 고르자면 '개발자, 상상과 현실' 정도며 언제나 그렇듯 회사by회사, 사람by사람 이니 걸러 듣자.

간단 요약

  1. 개발자는 생각보다 단순노동자에 가깝다.
  2. 최고의 미덕은 성실함이며, 코딩테스트는 성실성 테스트였다.
  3. 업무 외 공부/프로젝트 를 하는 사람은 신이며 그걸 못하는 나는 외롭다.

🙅‍♂️ 개발자는 개발(만)을 한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내 망상 속 개발자의 모습엔 기획자와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며 제품의 기획과 디자인 결정과정에도 참여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주어진 일정 안에 일을 끝내기 위한 기획과 개발의 치열한 디펜스 게임에 가깝다.

현재까지 경험한 업무 프로세스를 단순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프로젝트 일정이 내려온다.
  2. 기획이 프로젝트 세부사항을 기획한다.
  3. 개발이 이 일정에 쉽지 않다고 어필한다.
  4. 회의를 통해 프로젝트 완성도를 조율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획과 디자인이 종종 변경되기 때문에 개발 공수는 쌓여만 간다는 거다. 어떤 화면/기능을 구현한 뒤에는 QA 분들의 검증에 맞춰 다시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능이나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낼 여유가 거의 없다. 초반부 프로젝트 세팅을 위한 설계 단계 외에는 위 과정의 반복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행중에는 개발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도전하기 쉽지 않다. 초짜 개발자는 시간 안에 개발만 제대로 해도 다행인 것이다. 종종 나에게 FE 개발자에 관해 질문하면서 디자인 관련 역량을 어필하는 분들이 있는데, 적어도 내가 경험한 카카오, 네이버는 크게 연관이 없다.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디자인을, 기획을 하고 싶으면 기획자가, CEO가 하고 싶으면 창업이나 VC 에 취업해서 커리어를 쌓는 게 맞다고 본다.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 있지만 난 이걸 처음 느끼고 현타가 와서 잠시간 업무에 집중을 못했다. 뭐 이 부분은 내가 경영학 출신이라 큰 그림을 보면서 입터는 데 익숙해져 있는 특이 케이스라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각 직군의 역할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나는 내 역할을 다하기도 빠듯한 평범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 성실함이 중요한 이유

위 내용의 결론은 결국 개발자도 여타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일정에 쫓기며 반복되는 일을 하다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이 지치면 본성이 드러난다. 요즘같이 재택근무가 많아진 땐 더더욱 이 본성이 쉽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개발자란 직종이 어느정도는 개개인의 역량을 신뢰하며 일을 맡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개인이 일을 게을리 하기 시작하면 걸러내는 게 쉽지 않다.(복잡한 기능을 구현중이거나 특이 케이스에 막혀서 오래 걸리는 걸 수 있잖아? 란 변명이 가능하다.) 나도 어느순간 믿기지 않을만큼 게을러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는데 나중에서야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정신을 차렸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FE개발은 생각보다 개발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일정 안에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기획안을 조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이렇게 기획에 맞춰 페이지를 구현하는 데는 다양한 팀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기획이 이해가 안되면 기획과 소통해야 하고, 기획에 맞는 API 가 제대로 안 내려오면 백엔드와 소통해야 하며, 마크업에 문제가 있으면 디자인 및 마크업 개발자분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구현 후에는 QA 분들이 만족할 때까지 소통하며 코드를 수정해야 한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면 이 모든 사람들과의 소통이 뒤쪽으로 압축되어 밀리게 되어 다같이 불행해지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이의 사랑/평화/우정 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내 일을 제때 해내는 성실함이 중요하다. 사실 개발 하나만 놓고 봐도 성실함은 필수 덕목인데, FE 개발은 생각보다 최적화 알고리즘을 고민하거나 어떤 대단한 라이브러리를 설계, 작성할 일이 없다. 쏟아지는 일 중 제 몫만 성실히 해내도 일인분을 해내는 것이고, 중간중간 가로막히는 개발 환경 충돌 등으로 인한 에러 해결 능력이 더 필요하다. 문제 상황을 해결할 때까지 공식문서, 깃헙이슈 및 스택오버플로우를 뒤지는 끈기와 분노조절능력이 필요하며, 요즘은 코딩테스트가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해내는 능력을 보기 위한 것이었단 확신이 생겼다.(뇌피셜)

🙄 업무 외 활동이 가능하다니

아직 초짜라 그런 것이면 좋겠지만, 일단 나는 일 외의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분명 취업하면 일 외에 개인 공부를 하며 관련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며 인맥도 넓히고 여러 프로젝트도 진행하려 했는데, 1년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도 언제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안 선다. 굳이 변명하자면 재택근무로 일을 시작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출퇴근 없이 자율 근무를 하다보니 업무시간이라는 개념없이 늘어지게 되고, 주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뒤늦게 저녁/밤 시간을 쓰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타고난 쫄보인 나는 일정압박이 들어올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어 일이 쌓일수록 하염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참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맘편히 쉴 시간을 만들기도 힘들 뿐더러 시간이 생겼을 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을 또 한다는 건 정말정말 쉽지 않다. 혼자 일하다 쉬는 시간의 반복이다보니 인맥이 쌓이기보단 뱃살만 쌓이는 것이다. SNS 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분들이 업무 외 활동을 하시는데 존경스러울 뿐이다.

개발이란 직종 자체가 필요에 의해 소통할 때 외엔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에 하루종일 한마디도 못하는 날이 많다. 덕분에 내가 생각보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란 걸 처음 느꼈다. 혼자서도 잘 놀던 내가 이럴 정도니, 사람들과 수다떠는 것을 조금이라도 즐기는 사람에게는 이 직업을 그닥 권하지 않는다.

마무리

일기장에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의 글이지만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누군가는 공감해주길 바라며 글로 기록해본다. 맨 처음에 언급했지만 취준생 때와 달리 '똥을 싸고 난' 상태기 때문에 불평하는 데 좀 치우친 느낌이 있다. 어느 똥 싼 놈 생각은 이렇구나 하고 재밌게 넘어가주면 좋겠다. 잘 읽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외로운 개발자에게 좋아요와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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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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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9일

글 잘 읽었어요! 재택근무 때문에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네요 ㅠㅠ 그래도 힘든만큼 더 발전하고 계실거에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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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1일

프론트엔드 직업상을 살짝 엿본 것 같아 재밌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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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3개월차 프엔 개발자인데 눈물 흘리며 공감하고 갑니다..ㅋㅋㅋㅋ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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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2일

백엔드 개발자이지만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네요 ㅠㅠ 동지가 있어서 위안을 얻고 갑니다... 저도 빨리 정신차려야겠어요..크흡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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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성실함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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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ㅋㅋㅋ재밌게 잘 봤어요! 실상은 쌔드하쥐만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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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고생이 많으시네요.

스택오버플로우 창업자 '제프 엣우드'(jeff atwood)도

신입들에게는 재택근무가 안 좋다고 했죠..

배우는 게 적고, 멘탈관리 어려우니깐여..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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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잘 읽었습니다!
잘 살아내고 계시군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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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5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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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6일

엄청 공감하고 갑니다 ㅎㅎㅎ!!항상 응원해요 !!!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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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6일

열정은 쓰레기다. 라는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일하다 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은 부품이라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더라고요 ㅜㅜ
이런 속에서 일의 의미를 찾아 가는게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좋은 포스트 보고 도움 많이 됬습니다.
힘 받은 만큼 응원으로 돌려드리고 싶네요. 화이팅 하시죠!!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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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4일

있는 그대로 감정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응원할게요 빠셍!!!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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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9일

저도 혼자 놀기 좋아하는데, 일 할 때 소통 없이 그저 코드만 짜고 있으면 외롭긴 하더라고요 ㅎㅎ
좋은 경험담 감사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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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일

ㅠㅠ 공감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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