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수동적인 사람은 필요없다.

고은연·2021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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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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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없는 사람은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에서야 남들이 할 일 알려주고 정책 결정해 주고 아키텍쳐 짜 주고 알고리즘 정리해 주고 다 하겠지만, 스타트업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죠
자기 할 일 하기도 정신 없습니다.

이럴때는 맞든 틀리든간에 자기 주장 펼치고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왜 스타트업에 주도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꼭 필요하냐면, 스타트업은 R&R( Role and Responsibility - 역할과 책임) 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우리 이번에 사용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ㅇㅇ 기능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될까? 라는 의문에 대해서 R&R이 역할이 명확한 기업들은 이런 식으로 움직여요.

  • 기획자는 시장 조사를 한다.
  • 마케터들은 어떻게 팔 지 경쟁 제품을 분석한다.
  • 개발자들은 필요한 기술 스택을 찾고 구현체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는다.
  • 디자이너들은 UI/UX를 고민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난 다음, 기획자가 모든 것을 아울러서 "기획서", 혹은 "스토리보드"라는 산출물을 만들어냅니다.
이제 모두 다 함께 달려들어서 만들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스타트업은 어떻냐고요? 물론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야 규칙에 따라 뭔가를 만들어내겠지만, 아직 초기에 혼란스러움이 남아있는 스타트업은 대충 이런 식입니다.

사용자들의 유입을 늘리고 싶어!

  • 그럼 모두 다 달려들어서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뭔지부터 찾아봅니다.
  • 그리고 일단 만들어요. 복잡한 시장조사 따위는 (없지는 않지만) 미세합니다.
  • 대충 프로토타입을 만듭니다.
  • 잘 모르겠고, 출시해 봅니다.
  • 사람들이 잘 안쓰면 그냥 없에버립니다. 어차피 안쓰는걸요.
  • 사람들이 잘 사용하면 기뻐하면서 회식이라도 하러 갑니다.

여기서 수동적인 사람은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에만 참여합니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움"은 "혁신"을 부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유람선이 이리 저리 방향을 마구 바꿔대면 승객들은 불안해하고 침몰할 수도 있겠지만 , 잠시의 혼란스러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배에서는 모두 그냥 손잡이를 꽉 잡고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수동적인 사람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사실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인데요.
수동적인 사람은 누군가가 일을 시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잖아요? 그럼 누군가가 일을 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큰 조직은, 일을 시키고 확인만 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보통 "상사"라고 부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위계 조직이 아닌 수평 조직을 지향하는 곳에서 "상사"라는 것은 없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조직 체계나 경력에 따라 사실상의 위계는 있습니다만, 상하 관계가 명시적으로 설정되지 않습니다.
상하 관계가 명시적이지 않다면 일을 시킬 수 있는 명분이 없고, 시켜야 할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시키지 않으니 멍하니 앉아있고, 보다못해 가서 일을 시켜야 합니다.

일을 시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실력이 어떤지, 어느정도 기간이 걸릴 지 등을 모두 고려해서 시켜야 하는 거에요.
즉, 수동적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자기 일 할 시간을 빼서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데 써야 하는 거죠.


수동성은 사람의 성향 문제도 있지만, 많은 경우 속해 있던 환경에 영향을 받더군요.
큰 기업에 속해 있던 분들일 수록,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 조직에 있던 분들일 수록, 혹은 수동적인 태도가 강조되는 (일부) SI 에서 일하시던 분들에게 많이 보였습니다.
아무리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환경에서 적극성이 발휘될 리가 없으니까요.


수동적인 분들은 대체로 비슷한 특성을 가집니다.
인간적으로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스스로는 절대로 뭔가 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뭔가를 시키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죠. 마치 건전지 없는 장난감 인형처럼요.

이런 성향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은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아요
실력은 스스로 뭔가를 찾아낼 때 가장 빨리 늘어나는데, 수동적인 사람에게 스스로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함께 할 멤버를 찾을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여부에 꽤나 많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같은 학교에서나 먹힐 것 같은 멘트 말고, "제가 지금은 부족해도 스스로 함께 참여하게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요.

profile
중년 아저씨. 10 + n년차 웹 백엔드 개발자. 자바 스프링 (혹은 부트), 파이썬 플라스크, PHP를 주로 다룹니다.

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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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3일

글의 많은 부분에 매우 동감합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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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1일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