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1부 4화

이경규·2026년 6월 2일

전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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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조건

4화 베이징의 축하 전문

축하는 때때로 가장 정중한 경고였다.

외교문서에서 축하라는 단어는 꽃다발처럼 보인다.
상대의 결정을 존중하고, 관계 발전을 기대하며,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문장들이 반듯하게 늘어선다. 단어들은 부드럽고, 문장은 길며, 쉼표는 예의 바르다. 외교관들은 그런 문장을 쓰는 법을 배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을 같은 문장 안에 넣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오래된 외교관들은 안다.

축전은 박수가 아니다.

때로는 먼저 보낸 족쇄다.

베이징의 겨울 아침은 회색이었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도시 위에는 얇은 먼지와 안개가 섞여 있었다. 큰 도로 위로 검은 관용차들이 조용히 움직였고, 건물들은 표정을 숨긴 사람들처럼 반듯하게 서 있었다. 중국의 수도는 오래된 제국의 기억과 현대 국가의 속도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크고, 넓고, 오래 기다릴 줄 알았다.

높은 담장 안쪽의 한 건물에는 창문이 많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정부 시설처럼 보였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건물의 기능이었다.

복도에는 장식이 거의 없었다.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고, 문은 무겁게 닫혔다. 회의실 앞에는 이름표가 없었다. 부서명도, 참석자 명단도 없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이름을 걸고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름은 문서 밖에서 움직였고, 책임은 언제나 조금 뒤에 따라왔다.

긴 테이블 끝에 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워싱턴의 움직임을 조용히 관찰하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여전히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방 안의 사람들도 그를 직함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앞에는 세 개의 문서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는 한국 대통령 하현민에 대한 최신 분석 보고서였다.
두 번째는 한국 전작권 전환 관련 여론 동향이었다.
세 번째는 중국 외교부 명의로 준비된 축하 전문 초안이었다.

그는 세 번째 문서를 가장 오래 보았다.

대한민국의 국방주권 강화를 위한 진전을 평가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문장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고, 너무 차갑지도 않았다. 한국의 전작권 전환을 환영하는 듯하면서도, 그 전환이 한미동맹 강화로만 읽히지 않도록 단어를 골랐다. 국방주권이라는 표현은 한국 내부의 자주파에게 달콤하게 들릴 것이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이라는 표현은 미국과 일본에게 은근한 압박처럼 들릴 것이다.

잘 만든 문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만든 문장은 너무 빨리 이해된다.
너무 빨리 이해되는 문장은 오래 남지 않는다.

그는 펜을 들었다.

문서의 한 문장 아래에 줄을 그었다.

국방주권 강화

그리고 옆에 짧게 썼다.

전략적 자율성

방 안의 젊은 참모가 그 손끝을 보았다.

“표현을 바꾸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다. 본문에는 넣지 마라.”

“그럼?”

“해설에 넣어라.”

참모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공식 전문은 우호적으로 간다. 그러나 관영매체 해설, 전문가 논평, 연구기관 인터뷰에는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라는 표현을 흘려라.”

참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에는 긍정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는 한국 주요 언론의 제목들이 떠 있었다.
서해 11분, 워싱턴 보고서, 전작권 전환 재검토론, 세종 코어 논란.
한국 사회는 이미 작은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린다. 한국의 일부는 자주로 듣고, 보수 안보층은 반미로 듣는다. 미국 매파는 이탈 신호로 읽고, 일본은 한미일 협력의 균열로 해석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좋은 말은 하나의 뜻을 가져야 한다. 위험한 말은 여러 개의 뜻을 가져야 한다.”

참모는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그는 축하 전문 초안을 다시 보았다.

“하현민은 반미가 아니다.”

그가 말했다.

방 안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반미 대통령이라면 다루기 쉽다. 워싱턴이 때리고, 우리는 웃으면 된다. 그러나 하현민은 동맹을 유지하겠다고 말하면서 운전대를 요구한다. 그건 더 위험하다.”

참모가 물었다.

“미국과 멀어지는 것보다 위험합니까?”

그는 고개를 들었다.

“미국과 멀어진 한국은 고립된다. 고립된 한국은 압박하기 쉽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미국과 대등해진 한국은 다르다. 그런 한국은 우리에게도 계산을 요구한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는 화면을 넘겼다.

한국 방산 수출 지도.

폴란드, 중동, 동남아, 북유럽, 남미.
K2, K9, 천무, FA-50, KF-21, 천궁, L-SAM, 무인체계, 잠수함, AI 지휘통제.
화면 위의 선들은 단순한 무기 수출 경로가 아니었다. 한국의 영향력이 이동하는 길이었다. 예전에는 한국의 안보가 한반도 안에 갇혀 있었다. 이제는 계약서와 훈련장, 정비창과 탄약고, 현지 생산라인, 기술협력 문서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는 그 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인들은 한국을 고객으로 붙잡고 싶어 한다.”

잠시 뒤, 그가 덧붙였다.

“우리는 한국이 독자 공급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참모는 고개를 숙였다.

“축하 전문은 언제 발송합니까?”

“서울이 워싱턴 보고서에 공식 항의하지 않는 순간.”

“그 이유는?”

그는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보내야 축하처럼 보인다.”

그의 웃음은 짧았다.

“그리고 분열처럼 읽힌다.”


세종 벙커에서는 중국어 문장들이 화면에 떠 있었다.

중국 외교부의 공식 브리핑 발언.
관영매체의 짧은 논평.
중국 군사전문가라는 직함을 단 인물의 인터뷰 예고.
그리고 아직 발송되지 않았지만, 외교 경로를 통해 존재가 감지된 축하 전문 초안.

윤태석 국가안보실장은 화면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보다 빠릅니다.”

오세규 국방부 장관이 물었다.

“중국이 왜 이렇게 빨리 축하를 준비합니까. 아직 전작권 전환이 공식 확정된 것도 아닌데.”

윤태석은 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의 답은 너무 뻔했고, 너무 위험했다.

백승조 합참의장이 대신 말했다.

“축하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하현민 대통령은 말없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중국어 원문 아래에 번역문이 붙어 있었다.

한국의 국방주권 강화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에 부합하며, 외부 세력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하현민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문장은 예의 바르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웃는 입 안쪽에는 아주 작은 바늘이 있었다.

외부 세력.

그 말은 미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을 찌르고 있었다. 한국이 이 축하를 반기면 반미처럼 보이고, 거부하면 국방주권이라는 말을 스스로 피하는 꼴이 된다. 중국은 축하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둘 중 하나의 표정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하현민이 말했다.

“이 문장은 축하가 아닙니다.”

윤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류하자면 프레이밍입니다.”

백승조가 물었다.

“쉽게 말하면?”

오세규 장관이 대답했다.

“말로 덫 놓는 겁니다.”

백승조는 화면을 보며 낮게 말했다.

“요즘 덫은 참 예의 바르군요.”

유서진 소령이 조심스럽게 자료를 넘겼다.

“중국어권 SNS와 한국어 커뮤니티 일부에서 같은 표현이 확산될 조짐이 있습니다. ‘전작권은 진짜 자주국방이다’, ‘미국이 막으면 내정간섭이다’, ‘하현민 정부가 드디어 미국에서 벗어난다’ 같은 식입니다.”

오세규 장관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우리 쪽 프레임에도 안 좋습니다.”

“예. 전작권 전환을 반미 구도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윤태석이 덧붙였다.

“미국 매파에게는 좋은 먹이가 됩니다. 중국이 환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워싱턴 일부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중국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습니다.”

하현민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모두는 그의 생각을 기다렸다. 하현민은 회의실에서 즉흥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화가 날수록 말을 늦췄다. 개발자였던 시절의 습관이었다. 장애가 터졌을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빨리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 빨리 결론 내는 사람이라고 그는 믿었다.

“중국은 우리가 반미처럼 보이길 원합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미국 매파는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길 원하고요.”

백승조가 받았다.

“둘 다 전작권 전환을 흔듭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윤태석이 말했다.

“한국 내부의 의심.”

하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전작권을 가져오려는 이유를 흐리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는 미국과 싸우려고 전작권을 가져오려는 게 아닙니다. 중국에 잘 보이려고 가져오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우리가 우리 전쟁을 책임지기 위해 가져오는 겁니다.”

브리핑룸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 문장은 하현민 정부의 정치적 구호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구호가 아니었다. 서해 11분의 원자료와 워싱턴의 보고서, 인천공항의 저장장치와 조지타운의 카드, 그리고 베이징의 축하 전문이 한 화면 위에 놓인 뒤 나온 문장이었다.

그것은 방향이었다.

윤태석이 물었다.

“중국 축하 전문이 공식 발송되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하현민은 바로 대답했다.

“감사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세규 장관이 그를 보았다.

“그렇다고 거부하기도 어렵습니다.”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백승조가 말했다.

“그럼 뭡니까.”

하현민은 화면의 중국어 문장을 다시 보았다.

“원칙을 말합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동맹의 성숙과 대한민국의 책임국방 강화를 위한 과정이며,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특정 진영에서 이탈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윤태석이 빠르게 받아 적었다.

“그리고?”

“동북아 평화는 외부 세력 배제가 아니라, 각국의 책임 있는 억제와 투명한 소통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세요.”

오세규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의 표현을 받되, 방향을 바꾸는군요.”

“네.”

하현민은 짧게 말했다.

“축하를 받지 말고, 축하의 뜻을 우리가 다시 정의합니다.”

백승조는 잠시 하현민을 보았다.

“대통령님.”

“예.”

“외교관들이 싫어하겠습니다.”

윤태석이 건조하게 말했다.

“이미 싫어하고 있습니다.”

방 안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그 웃음이 지나간 뒤, 하현민은 다시 화면을 보았다.

“강이준 쪽은요.”

윤태석이 보고했다.

“워싱턴에서 빠져나오는 중입니다. 조지타운 근처에서 위장 추적 또는 현지 경찰 개입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확보한 봉투는 아직 세부 검증 전입니다.”

“내용은?”

“서해 11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 해군 함정 사진과 문장 하나입니다.”

화면에 문장이 떴다.

Your eleven minutes began before your clocks did.
(너희의 11분은 너희 시계보다 먼저 시작됐다.)

하현민은 그 문장을 읽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문장이 자꾸 좋아지는군요.”

오세규 장관이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좋은 문장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백승조가 말했다.

“군 보고서부터 잡혀갑니다.”

이번에는 하현민도 웃었다.

그러나 웃음은 짧았다.

좋은 문장은 위험했다.
워싱턴은 좋은 문장을 만들었고, 베이징은 좋은 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장이 정교해질수록, 싸움은 더 조용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작은 보안실은 창문이 없었다.

워싱턴 시내에 있는 대사관 건물 안에서도, 이 방은 조금 더 안쪽에 있었다. 바깥에서는 평범한 회의실처럼 보였지만, 안쪽에는 독립 통신장비와 암호화 단말, 작은 회의 테이블, 그리고 잠금장치가 달린 문서 보관함이 있었다.

강이준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그는 벽에 기대서 있었다.
왼쪽 팔꿈치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고, 턱 아래에는 아직 붉은 멍이 남아 있었다. 조지타운 골목을 빠져나오며 한도윤과 함께 세 블록을 뛰었고, 중간에 어느 식당의 뒷문으로 들어가 주방을 가로질렀으며, 쓰레기 수거차 옆을 지나 택시를 갈아탔다. 그 과정에서 한도윤은 두 번 넘어질 뻔했고, 한 번은 정말 넘어졌다.

지금 한도윤은 옆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저는 변호사지, 현장 요원이 아닙니다.”

강이준은 봉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둘 다 하시면 됩니다.”

“제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 없습니다.”

“워싱턴에서는 구두합의도 중요하다면서요.”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한도윤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아까 담 넘을 때 제 허리에서 소리 났습니다.”

“원래 나이 들면 여기저기서 소리 납니다.”

“위로입니까?”

“동지 의식입니다.”

보안실 안쪽의 대사관 보안 담당관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않는 척했다. 그는 봉투와 사진을 특수 봉투 안에 넣고, 표면 촬영과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종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원본을 손상하지 말 것. 디지털화 전에 물리적 조작 여부를 확인할 것. 사진의 메타정보는 신뢰하지 말 것. 공개자료 재가공 가능성을 먼저 배제하지 말 것.

하현민다운 지시였다.

보안 담당관이 말했다.

“사진 자체는 프린트물입니다. 원본 데이터가 아닙니다. 인화지나 프린터 토너 특성상 미국 내 출력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이준이 물었다.

“사진 내용은?”

“한국 해군 함정으로 보입니다. 다만 식별 가능한 민감 정보는 가려져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흐린 처리된 것 같습니다.”

한도윤이 말했다.

“그럼 일부러 보여줄 것만 보여준 겁니다.”

“예.”

강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다들 편집자야.”

보안 담당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강이준은 종이에 적힌 영어 문장을 다시 보았다.

Your eleven minutes began before your clocks did.
(너희의 11분은 너희 시계보다 먼저 시작됐다.)

“협박이라기보다는 자랑입니다.”

한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자랑?”

“우리가 먼저 알고 있었다. 너희보다 빨랐다. 그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럼 워싱턴 쪽이 서해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믿게 만들고 싶은 거죠.”

한도윤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당신은 모든 문장 뒤에 ‘그렇게 믿게 만들고 싶은 것’을 붙이는군요.”

강이준은 그를 보았다.

“요즘은 그래야 오래 삽니다.”

보안 담당관이 추가 자료를 띄웠다.

“조지타운 클럽 주변 CCTV 일부는 확보가 어렵습니다. 사설 보안망이고, 공식 요청 절차가 필요합니다. 다만 인근 도로 교통 카메라에서 검은 SUV와 유사한 차량이 확인됐습니다.”

“번호판은요.”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이준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번호판 달고 다니면 워싱턴 예절에 어긋나죠.”

한도윤이 말했다.

“그런 예절은 처음 듣습니다.”

“오늘 많이 배우시네요.”

그때 강이준의 단말기에 세종에서 새 메시지가 들어왔다.

중국 축하 전문 준비 정황. 전략적 자율성 프레임 확산 조짐. 워싱턴 자료와 베이징 반응의 시간차 확인 필요.

강이준은 메시지를 읽고 눈을 가늘게 떴다.

워싱턴의 친구들.
베이징의 축하 전문.

둘은 같은 편이 아니었다.
그럴 리 없었다. 미국의 매파와 중국의 강경파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작전을 짤 가능성은 낮았다. 그러나 같은 현상을 각자 이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워싱턴은 한국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베이징은 한국이 미국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두 문장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한국 내부에서는 같은 효과를 낸다.

의심.

강이준은 낮게 말했다.

“베이징도 올라탔네요.”

한도윤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워싱턴이 판을 깔았고, 베이징이 축하 꽃을 들고 온답니다.”

“좋은 일은 아니겠군요.”

“꽃에 독 묻어 있으면요.”

한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강이준은 보안 담당관에게 말했다.

“사진 디지털 사본 만들 때, 해시값 세 개 따로 만들어두세요. 대사관, 세종, 국정원 라인 따로. 나중에 누가 원본 바꿨다고 시비 걸면 귀찮습니다.”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시 내려왔습니다.”

“누가요?”

“대통령님 쪽에서요.”

강이준은 피식 웃었다.

“개발자 출신 맞네.”

한도윤이 물었다.

“그게 개발자랑 무슨 상관입니까?”

“해시값 없으면 대화 안 하는 종족입니다.”

보안 담당관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때 보안실 문이 열렸다.

대사관 정무공사가 들어왔다. 얼굴에는 잠을 못 잔 사람의 피로와 외교관 특유의 불쾌한 침착함이 동시에 있었다.

“강 요원.”

“예.”

“방금 중국대사관 쪽에서 움직임이 확인됐습니다.”

“여기 워싱턴 중국대사관 말입니까?”

“예. 한국 전작권 관련 비공식 논평을 미국 언론 쪽에 흘리는 정황이 있습니다.”

한도윤이 얼굴을 찡그렸다.

“워싱턴에서?”

정무공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징은 서울만 보는 게 아닙니다. 워싱턴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동시에 자극하려는 겁니다.”

강이준은 벽에서 몸을 뗐다.

“내용은요.”

정무공사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영문 문장 하나가 떠 있었다.

South Korea’s pursuit of wartime command autonomy reflects a natural desire to reduce excessive dependence on external military decision-making.
(한국의 전시지휘 자율성 추구는 외부 군사결정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자연스러운 열망을 반영한다.)

강이준은 문장을 읽고 짧게 웃었다.

“와.”

한도윤이 물었다.

“왜요?”

“칭찬을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네요.”

정무공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매파가 보면 한국이 중국 쪽 논리를 따라간다고 공격하기 좋은 문장입니다.”

강이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세종으로 보낼 메모를 작성했다.

베이징 문장: external military decision-making / excessive dependence.
(외부 군사결정 / 과도한 의존)

워싱턴의 keys/architecture 문장과 반대 방향에서 같은 지점 압박.

그는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넣었다.

양쪽 모두 한국의 전작권을 ‘한국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거리’로 재정의 중.

메시지를 보낸 뒤, 그는 정무공사에게 물었다.

“중국 쪽 접촉 가능한 사람 있습니까?”

정무공사는 그를 보았다.

“공식 접촉 말입니까?”

“공식이면 제가 묻지 않았겠죠.”

정무공사는 한숨을 쉬었다.

“있긴 합니다.”

“누굽니까.”

“중국대사관 문화 라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실제로는 정책 쪽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직접 정보기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보기관이 싫어하지는 않을 겁니다.”

“장소.”

정무공사는 잠시 망설였다.

“듀폰서클 근처 작은 리셉션이 오늘 밤 있습니다. 중국 싱크탱크와 미국 학계 일부가 참석합니다.”

한도윤이 거의 비명처럼 말했다.

“오늘 또 간다고요?”

강이준은 그를 보았다.

“허리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습니다.”

“그럼 이번엔 담 안 넘는 방향으로 해보죠.”

한도윤은 그를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말도 조건부입니까?”

강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싱턴에선 모든 게 조건부라면서요.”


베이징의 회의실에서는 축하 전문의 마지막 문장이 바뀌고 있었다.

젊은 참모가 수정안을 읽었다.

“중국은 한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며, 관련국들이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을 존중하기를 촉구한다.”

긴 테이블 끝의 인물은 눈을 감고 들었다.

“너무 길다.”

참모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줄이겠습니다.”

“아니. 길어도 된다. 외교문서는 길어도 된다.”

그는 눈을 떴다.

“문제는 끝이 약하다.”

참모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마지막에 ‘진정한 자주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넣어라.”

참모의 손이 멈췄다.

“진정한 자주적 선택.”

“그렇다.”

“한국 정부가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현민은 이 표현을 그대로 받을 수 없다. 받으면 반미처럼 보인다. 거부하면 자주라는 말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대응 문장을 쓰느라 시간을 쓰게 만들어라.”

참모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참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워싱턴 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화면에 미국 내 보수 성향 매체의 제목 초안들이 떠올랐다.

Beijing Welcomes Seoul’s Wartime Command Push
Is South Korea Drifting Away from U.S.-led Deterrence?
China Sees Opportunity in Seoul’s OPCON Ambitions
(베이징, 서울의 전시지휘권 추진을 환영하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억제 체계에서 멀어지고 있는가?)
(중국, 서울의 전작권 구상에서 기회를 보다)

그는 만족스럽지도,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얼굴로 보았다.

“미국인들은 우리가 박수를 치면 의심한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박수를 쳐줘라.”

방 안의 몇몇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다시 한국 여론 그래프를 보았다.

전작권 전환 찬성.
전작권 전환 반대.
조건부 찬성.
유보.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는 검색어.

중국 전작권 환영
전작권 반미 논란
하현민 자주국방
세종 코어 중국 반응
미국 보고서 한국군

그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한국은 여론이 빠르다.”

참모가 답했다.

“예. 온라인 확산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그래서 피곤한 나라다.”

그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래서 쓸모도 있다. 빠르게 흔들리고, 빠르게 반박하고, 빠르게 지치고, 다시 빠르게 모인다. 한국 여론은 강처럼 흐르지 않는다. 비처럼 쏟아진다.”

그는 화면을 끄라고 손짓했다.

“오늘은 비가 오게 둬라.”

참모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그에게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작은 지도 위에 지나치게 많은 의지와 기술과 분노가 압축된 나라였다.
그런 나라는 강대국에게 늘 불편하다. 약하면 관리해야 하고, 강해지면 계산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관리의 대상에서 계산의 대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전환을 늦추거나, 흐리거나, 왜곡해야 했다.

완전히 막을 필요는 없었다.

믿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축하 전문 초안을 보았다.

중국은 한국의 진정한 자주적 선택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 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그 문장을 승인했다.

축하의 얼굴을 한 의심이, 서울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세종 벙커의 화면에는 세 개의 도시가 동시에 떠 있었다.

서울.
워싱턴.
베이징.

각 도시 옆에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워싱턴.

Can Seoul integrate surveillance, command judgment, and alliance coordination under compressed timelines?
(서울은 압축된 시간표 속에서 감시, 지휘 판단, 동맹 조율을 통합할 수 있는가?)

베이징.

한국의 진정한 자주적 선택이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 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서울.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기초해 차분하고 책임 있게 진행될 것이다.

세 문장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였지만, 같은 전장 위에 있었다.

하현민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워싱턴은 한국의 능력을 묻고 있었다.
베이징은 한국의 의도를 묻고 있었다.
서울은 한국의 책임을 말해야 했다.

문제는 책임이라는 말이 가장 덜 자극적이라는 점이었다.
뉴스 제목으로는 능력 부족이 더 좋고, 반미 논란이 더 좋다. 책임은 무겁지만 팔리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팔리지 않는 진실은 자주 늦게 도착한다.

윤태석이 말했다.

“중국 축하 전문이 공식 발송됐습니다.”

오세규 장관이 중얼거렸다.

“축하도 참 타이밍 좋게 하네.”

백승조가 건조하게 말했다.

“축하는 원래 당사자보다 옆자리 사람들이 더 시끄럽습니다.”

오세규가 그를 보았다.

“이번엔 옆자리가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이군요.”

윤태석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식장이 불안한 겁니다.”

하현민은 아주 짧게 웃었다.

그런 농담은 이상하게도 도움이 됐다. 방 안의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긴장을 다루었다. 누군가는 숫자를 보고, 누군가는 문장을 고치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농담을 던진다. 국가 위기관리라는 거창한 이름 안에도 결국 사람의 몸과 피로와 말버릇이 있었다.

하현민은 말했다.

“중국 축하 전문에 대한 답변은 짧게 갑니다.”

윤태석이 준비한 문안을 띄웠다.

대한민국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미동맹의 성숙과 대한민국의 책임국방 강화를 위한 과정입니다. 이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특정 진영에서 이탈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며, 한반도와 역내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차분하고 책임 있게 추진될 것입니다.

하현민은 문장을 읽었다.

“좋습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마지막에 한 문장 추가하세요.”

윤태석이 펜을 들었다.

“대한민국 안보의 최종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있으며, 그 책임은 동맹과의 협력 속에서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브리핑룸이 조용해졌다.

그 문장은 균형을 잡고 있었다.

중국에는 반미가 아니라고 말하고, 미국에는 종속이 아니라고 말하며, 한국 내부에는 전작권이 자존심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말하는 문장.

윤태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때 유서진 소령이 새로운 보고를 올렸다.

“대통령님, 중국 축하 전문 발송 직전, 중국어권 계정 일부에서 같은 핵심 문장이 먼저 확산됐습니다.”

“얼마나 먼저요.”

“공식 발표 약 14분 전입니다.”

백승조가 말했다.

“14분.”

그는 숫자를 싫어하지 않았다.
군인은 시간에 민감하다. 14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의도적인 시간일 수 있다.

유서진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일부 한국어 계정은 워싱턴 보고서 요약문을 확산시켰던 계정군과 겹칩니다.”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오세규 장관이 물었다.

“워싱턴 보고서 확산 계정과 중국 축하 전문 확산 계정이 겹친다고요?”

“일부입니다. 직접 운영 주체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동화 계정이나 중개 계정을 공유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윤태석이 말했다.

“정보공작 브로커.”

유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 있습니다.”

하현민은 화면을 보았다.

미국과 중국이 같은 편일 필요는 없다.
같은 플랫폼, 같은 중개망, 같은 여론 조작 생태계를 이용할 수는 있다.
총을 파는 사람이 어느 편인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양쪽 모두에게 총을 팔면 된다. 문장도 마찬가지였다.

하현민은 말했다.

“중간상인이 있군요.”

백승조가 낮게 말했다.

“전쟁에도 브로커가 붙더니, 문장에도 붙는군.”

오세규 장관이 받았다.

“요즘은 다 플랫폼 시대라서요.”

백승조가 그를 보았다.

“장관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십니까?”

“국회에서요.”

“위험한 곳이군요.”

짧은 웃음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현민은 화면의 계정 네트워크를 바라보았다.

워싱턴 보고서.
중국 축하 전문.
한국어 여론 확산.
전작권 반미 논란.
한국군 지휘능력 의심.

각각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화살표들이, 한국 내부의 한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의심.

“계정군 추적은 국정원과 사이버작전사령부가 공동으로 봅니다.”

하현민이 지시했다.

“단, 국내 정치 계정과 섞여 있을 겁니다. 합법적 의견 표명과 외부 조작을 구분하세요. 정권 비판을 공작으로 몰지 않습니다.”

윤태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중요했다.

위기 때 권력은 쉽게 유혹받는다.
자신을 공격하는 목소리를 외부 공작으로 묶어버리면 편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순간, 민주정부는 자신이 지키려는 원칙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하현민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불리한 말이라고 해서 적의 말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적의 말이 우리 내부의 불만을 타고 들어올 수는 있습니다. 둘을 구분해야 합니다.”

백승조는 대통령을 보았다.

그는 아직 하현민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군은 종종 명확한 적을 원한다. 그러나 현대전은 적과 국민, 비판과 공작, 정보와 의견을 일부러 섞어놓는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총을 쏘지 않아도 나라가 다친다.

“어렵겠습니다.”

백승조가 말했다.

하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쉬웠으면 대통령까지 안 왔겠죠.”

오세규 장관이 중얼거렸다.

“가끔은 쉬운 일도 대통령께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현민이 그를 보았다.

“예를 들면요.”

“점심 메뉴 결정 같은 거요.”

백승조가 즉시 말했다.

“그건 합참도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꽤 많은 사람이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난 뒤, 윤태석의 단말기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하고 표정이 굳었다.

“대통령님.”

하현민은 그를 보았다.

“말하세요.”

“워싱턴의 강이준 요원이 중국 쪽 비공식 리셉션에 접근하겠다고 합니다.”

오세규 장관이 눈을 감았다.

“그 친구는 잠을 안 잡니까.”

백승조가 말했다.

“잡으면 이상할 것 같습니다.”

하현민은 잠시 생각했다.

강이준은 워싱턴의 친구들을 보고 나왔다.
이제 베이징의 손끝을 워싱턴 안에서 보려 하고 있다.
위험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허가합니다.”

윤태석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통령님, 현지에서 이미 한 차례 추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중국 쪽 접촉까지 겹치면 미국 측도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현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화면의 세 도시를 보았다.

서울.
워싱턴.
베이징.

각자 다른 언어로 한국의 운전대를 말하고 있었다.

“이미 외교 문제입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아직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을 뿐입니다.”


워싱턴의 밤은 다시 깊어지고 있었다.

듀폰서클 근처의 리셉션 장소는 조지타운 클럽보다 훨씬 밝았다. 벽에는 현대미술 작품이 걸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와인잔과 작은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참석자들은 학자, 연구원, 외교관, 언론인, 자문역, 그리고 자신을 무엇으로 소개할지 그때그때 정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이준은 이번에도 한도윤과 함께였다.

한도윤은 입구 앞에서 말했다.

“이번엔 정말 조용히 계셔야 합니다.”

“아까도 조용했습니다.”

“담 넘었습니다.”

“그건 밖에서 한 겁니다.”

“안에서도 말로 담을 넘으셨습니다.”

강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표현이네요. 쓰셔도 됩니다.”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한도윤은 그를 보았다.

강이준의 표정은 정말로 달라져 있었다.

워싱턴의 친구들과 마주할 때 그는 건조했고, 느슨했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은 더 낮아져 있었다. 중국 쪽 접촉은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미국 쪽은 적어도 같은 동맹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그 구조가 때로 한국을 압박하더라도, 대화의 형식은 존재한다. 중국 쪽은 달랐다. 그들은 한국의 전작권 문제를 동맹 내부의 협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틈으로 본다.

틈을 보는 사람은 틈을 넓히려 한다.

리셉션 안쪽에서 중국계 남자가 두 사람을 맞았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쯤. 짙은 회색 정장, 얇은 안경, 부드러운 영어. 그는 자신을 문화교류재단의 연구협력 담당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알려줬지만, 강이준은 마음속에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이름보다 역할이 중요하다.

그 남자는 한도윤과 악수한 뒤 강이준을 보았다.

“From Seoul?”
(서울에서 오셨습니까?)

강이준이 답했다.

“Sometimes.”
(그럴 때도 있습니다.)

남자는 웃었다.

“Interesting answer.”
(흥미로운 대답이군요.)

강이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두 번째다.

워싱턴 사람과 베이징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면, 그건 농담이 잘 먹힌 게 아니라 질문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남자는 와인잔을 들며 말했다.

“We hear Seoul is entering an important moment.”
(서울이 중요한 순간에 들어섰다고 들었습니다.)

강이준은 잔을 받지 않았다.

“Seoul has many important moments.”
(서울에는 중요한 순간이 많습니다.)

“OPCON is different.”
(전작권은 다릅니다.)

“Why?”
(왜죠?)

남자는 부드럽게 웃었다.

“It is about sovereignty.”
(그건 주권의 문제니까요.)

강이준은 그를 보았다.

주권.

좋은 단어였다.

너무 좋은 단어라서, 누가 말하는지 봐야 했다.

“한국 주권을 걱정해주십니까?”

그는 한국어로 말했다.

남자는 아주 잠깐 멈췄다.
그리고 한국어로 답했다.

“이웃의 안정은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발음은 좋았다.

너무 좋았다.

강이준은 웃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조금 배웠습니다.”

“조금이 아닌데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은 한국 문화가 참 넓습니다. 김치, 드라마, 전작권까지.”

남자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한도윤은 옆에서 다시 눈으로 욕했다.

중국계 남자는 곧 표정을 회복했다.

“한국의 전작권 전환은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군사결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강이준은 그 문장을 들으며 세종에 보낸 문장을 떠올렸다.

external military decision-making / excessive dependence
(외부 군사결정 / 과도한 의존)

같은 리듬.

그는 물었다.

“외부라는 말은 미국입니까?”

남자는 웃었다.

“특정 국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중국도 포함됩니까?”

주변 대화가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

남자는 여전히 웃었다.

“중국은 한국의 독립적 선택을 존중합니다.”

“좋네요.”

강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국이 독립적으로 중국을 견제해도 존중하시겠네요.”

한도윤이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남자의 미소는 이번에는 조금 더 늦게 돌아왔다.

“우리는 한국이 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평화라는 말도 좋죠.”

강이준은 잔을 들지 않은 손을 천천히 주머니 가까이에 두었다가 다시 뺐다. 위협하려는 동작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손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이었다.

“그런데 평화라는 단어는 이상하게, 힘 있는 나라가 말하면 현상유지처럼 들리고, 작은 나라가 말하면 참으라는 뜻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남자는 강이준을 보았다.

“당신은 외교관이 아니군요.”

“자주 듣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오늘은 손님입니다.”

“내일은요?”

강이준은 웃었다.

“그건 내일 봐야죠.”

남자는 그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서울은 조심해야 합니다. 워싱턴의 친구들은 한국이 모든 열쇠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 물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다릅니다.”

강이준은 눈을 움직이지 않았다.

“뭡니까.”

남자는 영어로 바꿨다.

“Whether Seoul knows which locks were never theirs.”
(서울이 어떤 자물쇠가 애초에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는지 알고 있는가.)

강이준은 그 문장을 기억했다.

열쇠.
자물쇠.
네 번째 자리.
조건.

그는 조용히 물었다.

“그 말, 누가 해준 겁니까?”

남자는 웃었다.

“Old wisdom.”
(오래된 지혜입니다.)

“요즘 오래된 지혜가 워싱턴에도 많던데.”

이번에는 남자의 눈빛이 분명히 변했다.

아주 짧았지만, 강이준은 봤다.

워싱턴의 문장과 베이징의 문장이 서로를 알고 있었다.

직접 연결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문장을 읽고 있었다.

그때 리셉션장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잔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강이준은 반대로 움직였다.

그는 남자의 손을 보았다.
남자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방 안쪽 벽 근처에 서 있던 여성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전까지 사진을 찍는 척하던 사람이었다.

강이준은 그녀를 향해 걸었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

강이준이 세 걸음 남겼을 때, 그의 단말기가 진동했다.

발신자 없음.

Leave the Chinese flower on the table.
(중국 꽃은 식탁 위에 두고 가라.)

강이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출입문 쪽으로 움직였다.

강이준은 그녀를 따라갔다.

한도윤이 뒤에서 낮게 말했다.

“또 뛰어야 합니까?”

강이준은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이번엔 실내라 담은 없을 겁니다.”

한도윤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믿는 제가 싫습니다.”

여자는 복도로 나갔다.

강이준이 뒤따랐다.

복도는 길고 조용했다. 오른쪽에는 세미나룸, 왼쪽에는 비상계단. 여자는 빠르게 걷다가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강이준은 뛰지 않았다.

뛰는 순간 상대가 이긴다.
실내에서는 빠른 사람이 아니라 출구를 아는 사람이 이긴다.

그는 반대편 엘리베이터 앞의 장식용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계단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여자 혼자가 아니었다. 문 안쪽에 남자 하나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준은 걸음을 멈췄다.

한도윤이 그의 옆에 멈춰 섰다.

“왜요?”

“꽃이 아니라 화분이네요.”

“예?”

강이준은 복도 반대편을 보았다.

작은 서비스 출입문이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도윤이 따라오며 말했다.

“저쪽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저쪽으로 갑니다.”

“아니, 저 사람을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따라가라고 보여준 길은 보통 따라가면 안 됩니다.”

강이준은 서비스 출입문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그는 잠시 손잡이를 보았다.

“오늘 문들이 다 성실하네.”

한도윤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제발 부수지 마십시오.”

강이준은 주머니에서 얇은 도구를 꺼냈다.

“안 부숩니다. 설득합니다.”

“그걸 보통 불법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에서는 비공식 접촉이라고 하죠.”

몇 초 뒤 문이 열렸다.

한도윤은 눈을 감았다.

“저는 못 봤습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두 사람은 서비스 통로로 들어갔다.
안쪽은 좁고 조명이 낮았다. 주방과 연결된 통로였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 음식 냄새, 직원들의 빠른 발걸음이 들렸다.

강이준은 멈춰 섰다.

통로 끝에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에는 흰 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꽃 아래에는 접힌 카드가 있었다.

한도윤은 숨을 삼켰다.

“만지지 마세요.”

강이준은 장갑을 꼈다.

“오늘 다들 편지 쓰는 날인가 보네요.”

그는 카드를 펼쳤다.

안에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COND-4 is not written in Washington. It is priced there.
(조건 4는 워싱턴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가격이 매겨질 뿐이다.)

강이준은 문장을 읽고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농담이 나오지 않았다.

한도윤이 낮게 물었다.

“그럼 어디서 쓰인다는 뜻입니까?”

강이준은 흰 꽃을 보았다.

꽃잎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가짜 같았다.

그는 카드를 접으며 말했다.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한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강이준은 이어 말했다.

“아니면 세종.”


세종 벙커에서 그 문장이 도착했을 때, 회의실은 처음으로 완전히 조용해졌다.

COND-4 is not written in Washington. It is priced there.
(조건 4는 워싱턴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가격이 매겨질 뿐이다.)

하현민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의미를 보았고, 두 번째는 의도를 보았다.

워싱턴은 조건에 가격을 매긴다.
그렇다면 조건 자체는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한국 내부. 또는 한국을 가장 잘 아는 누군가. 아니면 세종 코어와 전작권 전환 조건을 모두 이해하는 내부 접근자.

오세규 장관이 낮게 말했다.

“이건 우리 안쪽을 보라는 말입니다.”

백승조 합참의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윤태석이 말했다.

“함정이라도 방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서진 소령은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중국 리셉션 현장에서 확보된 카드와 조지타운 카드의 종이 재질, 인쇄 방식, 문장 구조를 비교하겠습니다.”

백승조가 물었다.

“문장 구조도 비교가 됩니까?”

유서진이 대답했다.

“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표현 습관과 단어 선택, 은유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백승조는 피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요즘은 문장도 감식하는군.”

하현민이 말했다.

“전쟁이 문장으로 시작되면, 문장도 감식해야죠.”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었다.

하현민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베이징은 축하 전문을 보냈다.
워싱턴은 조건을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두 도시 사이에서 한국 내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건 4는 워싱턴에서 쓰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가격이 매겨질 뿐이다.

그 문장은 너무 위험했다.

왜냐하면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하현민은 천천히 말했다.

“지금부터 가설을 하나 추가합니다.”

윤태석이 펜을 들었다.

“조건 4의 초안 작성자는 외부가 아닐 수 있다.”

브리핑룸 안의 모든 사람이 그 문장을 들었다.

외부가 아닐 수 있다.

그 말은 미국보다, 중국보다, 북한보다 더 불편했다.
외부의 압박은 막으면 된다.
동맹의 요구는 협상하면 된다.
중국의 프레임은 대응하면 된다.

그러나 내부에서 조건이 쓰였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불신의 시작이었다.

하현민은 덧붙였다.

“아직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방 안의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는 의심하되, 사람을 먼저 찍지 않습니다. 기록을 봅니다. 문장을 봅니다. 접근권한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를 봅니다.”

백승조가 물었다.

“동기라면?”

하현민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세종 벙커의 차가운 화면을 보았다.
세종의 새벽, 용산의 지휘통제실, 평택의 침묵, 워싱턴의 식탁, 베이징의 축하 전문.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질문으로 모이고 있었다.

누가 한국의 전작권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미국 매파?
중국 강경파?
북한?
방산기업?
정치권?
아니면 한국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믿는 누군가?

하현민은 낮게 말했다.

“전작권이 돌아오면 손해 보는 사람.”

오세규 장관이 물었다.

“외부 말입니까, 내부 말입니까?”

하현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둘 다입니다.”

그때 윤태석 실장의 단말기가 다시 울렸다.

그는 화면을 확인했다.

“대통령님.”

“말하세요.”

“중국 축하 전문에 대한 우리 정부 답변이 나간 직후, 미국 측에서 비공식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내용은요.”

윤태석은 문장을 읽었다.

“한국 정부가 ‘동맹과의 협력 속에서 책임국방을 강화한다’고 한 표현의 구체적 의미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오세규 장관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젠 우리 답변 문장도 조건으로 바꾸려 하네.”

백승조가 건조하게 말했다.

“문장 하나 잘못 쓰면 탄약고 터지는 시대군요.”

하현민은 조용히 말했다.

“터진 건 아직 없습니다.”

그는 화면의 세 도시를 다시 보았다.

서울.
워싱턴.
베이징.

“하지만 다들 성냥을 들고 있습니다.”

브리핑룸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세종 코어의 화면이 조용히 갱신되었다.

조건 영향 분석 업데이트
외부 프레임 개입: 높음
국내 여론 분열 가능성: 높음
비공식 조건 존재 가능성: 중간 이상
내부 작성자 가능성: 평가 보류

마지막 줄이 가장 무거웠다.

평가 보류.

AI가 답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책임져야 했다.

하현민은 그 줄을 보며 말했다.

“세종 코어는 보류했군요.”

유서진 소령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현재 자료로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좋습니다.”

하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정하지 않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지시였다.

세종 벙커의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축하 전문은 도착했다.
그러나 그것은 꽃다발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향기가 아니라 방향이 들어 있었다.

한국을 미국에서 멀어지는 나라로 보이게 만드는 방향.
미국을 한국의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나라로 보이게 만드는 방향.
중국을 축하하는 관찰자로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가장 먼저 의심을 심는 방향.

하현민은 알았다.

전작권을 둘러싼 싸움은 더 이상 조건표 안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은 워싱턴의 질문으로, 베이징의 축하로, 서울의 기사 제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친구와 이웃과 동맹이 각자의 언어로 한국의 선택을 다시 쓰려 하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서울의 아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워싱턴의 밤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베이징의 축하 전문은 이미 한국어 기사 제목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네 번째 조건은, 처음으로 한국 내부를 향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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