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준비중에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 경력과 경험을 담백하게 적어내면 되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이력서의 첫줄을 적기 시작할 때였다.
솔직함은 억지로 꾸며낸 모습보다 강하다는 핑계로 큰 생각없이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이력서를 적어보았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다시 읽어봐도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경험을 했고, 인사담당자에게 어떤 어필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작성중이던 이력서를 내려 두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체 어떤 개발자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TMI 넘치는 블로깅을 해보려고한다.
누군가 나에게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했던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이 얘기를 한다.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던 시기에 아버지는 어딘가에서 MS-DOS가 깔려있는 PC를 얻어오셨다. 그와 함께 컴퓨터의 설명서를 가장한 두꺼운 책 두 권도 함께 가지고 오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골때리는 책이었다.
책 이름은 이제 생각지도 않지만 한권은 C언어였고 한권은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라는 개념서였다.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라곤 1도 모르는 꼬꼬마 초딩이 이 책을 읽고 DOS를 구동시키기란 말 그대로 불가능했고, 당시도 지금도 텍스트를 읽는것을 즐겼던 나는 한 문단조차 이해 하지 못할 글들을 읽어 나갔다. 물론 1독을 완주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나에게 프로그래밍이란 세계가 열렸던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져와 주신 컴퓨터는 흔한 결말로 게임기가 되었다. 3년 위의 형은 여기저기서 DOS 게임들을 공수해 왔고, 게임들을 플로피디스크에 복사하여 친구들에게 전파하고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마법의 수리기법, format c:/)해 주며 아주 자연스럽게 학교내에서 컴퓨터 박사로 알려지게 된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 어느날,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고민이 시작됐고, 막무가내로 C언어를 다시 펼치게 된다.
신세계였다. 내가 컴퓨터박사랍시고 플로피디스켓에서 부팅디스켓을 만들고 다니는 일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물론 이때 깊숙히 들어가지 못했다. 기초도 없는 상태로 독학으로만 C언어를 공부하자니 포인터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지금처럼 강의가 쏟아지는 시절이 아니다보니 중학생 신분으로 더 이상 깊은 배움에 빠지기는 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내 꿈은 확고한 프로그래머였고 대학진학 역시 컴퓨터공학으로 마음먹은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엇다.
대학교육으로 C언어와 운영체제, 시스템분석설계, 자료구조론등을 수강하면서 드디어 막혀있던 부분들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너무 소중한 기회였는데 너무 달콤하게 다가왔던 고등학교 이후의 자유에 의해 그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다.
매일매일이 술이었고 매일매일이 축제였다. 그 기간이 헛되었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약 1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더 열심히 했다면.. 이라는 후회는 남기 마련인것같다.
아무튼 여러 사정에 의해 군대를 전역한 후에 대학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때 무료로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네이버의 광고를 통해 서울 종각에 있는 모학원을 찾았다.
국비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상담사를 찾아갔지만, 상담사 말로는 현재 자기들이 소개시켜주는 국비지원교육이 3개월 후에 시작한다고 하면서 학원에서 진행하는 3개의 강의를 무료로 듣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것이 Java Level1, Network Level1, Network Level2 였다.
선택의 이유는 대학시절에도 네트워크관련이 매우 취약했고, 자바는 실무에서 어떻게 응용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상담사에게도 문법적인 내용은 이미 공부가 된 상태며 내가 원하는것은 실무에서 어떻게 응용하는지라며 몇번을 당부했기 때문에 추천하는대로 강의를 들었다.
폭망이었다. 그 강의는 진짜 초보자를 위한 Hello World부터 시작한 기초강의였고, 그 강의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3개월을 이미 아는 내용을 복습한다고 다녔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안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실무형교육이라는 국비지원교육을 기다리며 3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국비지원교육에서는 자바, JSP, 오라클을 사용한 웹개발교육을 시작했다.
기간은 3개월이었으며 마지막 1달은 팀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업 진행방식은 여전히 기초수업이었고 강사는 A4용지를 나누어 주고 타이핑을 시키는게 수업시간의 대부분이었기에 지식을 얻어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 강의때처럼 더 이상은 믿을 구석이 없었기에 독자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팀 프로젝트는 게임개발 경험이 있던 조장형의 주도하에 아주 물 흐르듯이 진행 되었고, 타 팀의 찬사를 받으며 문제 없이 종료되었다.
이 때 우리는 게임포탈사이트를 만들었고, 각 조원들이 Applet을 활용하여 하나씩의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들의 점수로 랭킹을 기록하고 나아가 상점에서 구입한 아이템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포탈사이트를 제작했다.
나는 추가로 고객지원센터도 제작했는데, 이 때 넥슨 고객지원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ㅎㅎ..
솔직한 후기로 교육기관으로서는 0점이지만 국비지원을 통해 웹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국비지원을 많이 찾고 있다. 어디선가 개발자 초봉 6천시대! 이런 허위광고가 나가고 나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비지원 경험자로서 이렇게 생각한다.
국비지원은 분명 나쁘지 않은 제도고, 그 교육의 질은 높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어떤길을 가야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국비지원교육을 수료한다고 누구나 초봉 6천 이런건 불가능하다. 중요한것은 나의 노력이다. IT취업시장은 정말 정직하게 공부한대로 대우받는 시장이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공부해야할 가지가 생기고 그 가지를 얼마나 탔냐에 의해 나의 가치가 증명되는 시장인것이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노력을 열심히 한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내가 뭐가 부족한지도 몰랐기때문에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안다. 그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 시간인지 말이다.
그대들도 나처럼 10년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 시기에 찬란해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