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것이 많아졌다.
빛나는 얼굴, 빛나는 옷, 빛나는 소비, 빛나는 말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빛 아래 서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실체 없는 광택만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다.
명품은 더 이상 성취의 상징이 아니다.
이제 그것은 불안을 덮는 외피다.
자존감을 입는 대신 가방을 메고,
관계를 맺는 대신 피드를 꾸민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 살면서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위한 소비”라 말하지만,
그 ‘나’는 누구인가.
충동적인 클릭 속에서 무너지는 예산표,
감정 기복을 커피 한 잔으로 무마하려는 자위.
이런 소비는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갈아 넣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통은 늘었지만 대화는 줄었다.
말은 많지만 듣는 이는 없고,
비판엔 눈을 피하고,
감정의 경계에는 “불편하다”는 말이 방패처럼 붙는다.
결국, 우리는 자신과 닮은 말만 듣고,
자신을 닮지 않은 세상을 혐오한다.
현실은 불편하고, 이상은 조급하다.
장기적인 계획은 인내를 요구하지만
우리는 즉석에서 만족을 원한다.
그래서 연애는 속도전에 지치고,
직장은 ‘내 적성’을 맞추지 못한단 이유로 떠난다.
그러고선 말한다.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각박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감당할 줄 모르는 우리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면서도
다른 생각엔 귀를 닫고,
완벽을 꿈꾸지만
한 치의 실수에도 타인을 매장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날카롭고도 유약하다.
남을 베는 검을 들고 있지만,
스스로의 상처엔 쉽게 무너진다.
결국 필요한 것은
광택이 아니라 무게다.
소비 대신 성찰을,
반응 대신 사유를,
자기확신 대신 자기검열을.
진짜 아름다움은 반짝이지 않는다.
그것은 오래 견디고, 천천히 드러나며,
결코 타인의 시선 앞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물어야 할 때다.
그대는 지금,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