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2)

박이레·2022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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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만 끝내면 멋진 모던 웹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웹 개발을 위해 20권의 책을 샀다. 평균 500페이지라고 치면 1만 페이지가 된다. 이걸 언제 다 보나 했는데 다 봤다. 어떤 책은 2회 독, 3회 독하기도 했다. 정말 미친 듯이 했다.

강의도 들었다. 3시간짜리 강의를 3배속으로 1시간 안에 반복해 들은 것도 여러 번이다. 대체 얼마나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방대한 웹 개발 공부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좌절감이었다. 누군가 "공부는 어때?"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

그간의 공부에서 무얼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프로그래밍 얘기는 안 할 것 같다. 대신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할 것 같다. 가장 큰 가르침을 받은 건 장자 사상에서다. 공부에 지칠 때면 장자와 함께 낙산, 서울한양도성, 청계천, 성북천, 중랑천 등을 걸었다. 그 시간이 내게 많은 위안을 줬다.



장자

본명은 장주. 실존 여부는 알 수 없다. '장자'를 장자의 사상을 따르는 무리로 보는 가설도 있다.

곤붕

누가 물었다. "곤붕과 대붕은 같은 존재인가요? 다른 존재인가요?"

장자가 답했다. "북명에 물고기가 있었다. 이름은 곤. 곤은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움직인다. 남명은 바다이다."

곤은 큰 고기, 붕은 큰 새를 말한다. 곤이 변해서 붕이 된다. 큰 고기가 변해서 큰 새가 됐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절대 진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곤봉 고사처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오류가 되는 경우가 있다.


장주지몽

장자가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날아다녔다. 잠에서 깨니 다시 장자가 되어 있었다.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그사이에 어떤 구별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장자는 자신과 나비 사이에는 ①피상적인 차이만 있고 ②절대적인 변화는 없으며 ③절대적인 경지(물아의 구별이 없는)에서 보면 장자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속에서 프로그래밍하다 깬 적이 있다. "이젠 하다 하다 꿈에서 프로그래밍하고 있네"라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꿈에서 깼다. 꿈에서 꿈을, 다시 꿈에서 꿈을 꿨다. 이런 꿈을 자주 꿨는데 그때마다 현실을 인지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내가 쓰고도 형이상학적인 말이다.

형이상학

형이상학은 두통을 가져오는 학문이다. "형이상학적이다"는 표현은 "너무 추상적이다" "뜬구름 잡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이상학은 골치 아픈 질문들의 집합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진짜인가요?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유 의지는 정말 자유로운가요?

형이상학은 두통을 가져오지만 그만큼 사유는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마다 처음 하는 질문은 이거다. "{새로운_기술}이란 무엇인가요?"


혼돈

남쪽 왕은 숙, 북쪽 왕은 홀, 중앙의 왕은 혼돈이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해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고 싶었다.

"사람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데, 혼돈은 구멍이 없으니 우리가 구멍을 뚫어줍시다"하고는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다. 칠 일째 되던 날 혼돈은 죽었다.

살다 보면 선의가 악의가 될 수도 있다. 혼돈은 혼돈 그대로 둬야 한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행위(구멍을 뚫는 것)가 파멸을 부른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
칼 레이먼드 포퍼 경


참고문헌

시사상식사전
장자
내 뇌의 cpu와 ssd(혹은 hdd) 메모리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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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사는 Archit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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