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2023년처럼 상반기, 하반기 회고를 나눠서 작성하려고 했지만, 게으름과 바쁜 일정 이슈로 그러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2024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려고 한다.
1월은 UMC 프로젝트와 마지막 프로젝트인 퐁투게더에 전념했다.
팀 매칭 후 매일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는 스케줄을 한 달 동안 반복했다.
퐁투게더의 회의 일정과 개인 공부, UMC 프로젝트였던 최애의장소 프로젝트의 일정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뒤늦게 일 벌인게 후회가 되었지만 모두 내가 시작한 일이니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자바스크립트 코드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웹 개발은 좋아하는 분야이다 보니 할만했던 것 같다.
최애의장소는 말할 것도 없었다. 백엔드 팀원 모두와 생각이 참 잘 맞았다.
다들 열정있고 배울 점이 있는 멋있는 사람들이라서 나도 같이 힘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분들께 코드 리뷰나 프로젝트 일정 관리, 기술 도입 관련해서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모든 분들은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분들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맘때 쯤 작성한 일기를 보면 분명 정신은 행복했던 것 같은데 몸상태는 최악이었다.
커피로 연명하다보니 위염을 달고 살았고, 나빠진 컨디션으로 인해 독감에도 걸려서 앓아눕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일기 한 줄 쓰겠다고 페이지에는 "안돼 일어나야 돼" 라고 써있었다.
되돌아보니 참 미련하다. 아플 때 몸관리를 철저하게 했으면 위염이 연달아 올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때는 뭐든 열정있게 해내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보니 1월은 금방 지나갔다.
UMC 프로젝트 최종 발표회인 데모데이가 있었던 달이다.
월 초에는 그냥 미친 것 같이 바빴다.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평일에는 클러스터로, 주말에는 스터디룸으로 출근했다.
나보다 더 바빴을 팀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 포기하고 집에서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역할이 있으니 그러진 못했다.
이맘 때 쯤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팀원 한 분에게 불만이 생겼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거나, 굳이 새벽 시간에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는 장문 카톡을 보내거나, 자신이 만든 문제를 나에게 떠넘기는 것들을 보면서 화를 삭혔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에게 은근히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할 때에는 참기 힘들정도로 열이 받았다.
그럼에도 팀원이, 사람이 싫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밤에 혼자 산책하며 안그래도 늦은 귀가 시간을 더 늦췄다.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그랬던 것 같다.
밤 늦게 달리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그 사람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사과를 새벽 3시에 카톡으로 하더라도 일단 사과했으니까 털어야지...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날아갔다.
내내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팀 내에 문제를 만들기는 싫어서 그냥 산책로를 달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분출했다.
외골수 성향인 나에게 스트레스 해소엔 달리기만한게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넨 계통으로 따지면 강화계 ㅋ ㅋ ㅋ
그리고 최애의장소 프로젝트를 좋은 성과로 마무리하게 된다.
전체 전시장을 대여해서 규모있게 열린 데모데이에서 2위라는 성적으로 수상까지 하게 됐다.
데모데이를 통해 이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내보일 수 있었다.
부스에 사람이 5명 정도 몰리니, 이미지 업로드에 1분이 넘게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간 성능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업로드 지연으로 부스 앞에 사람이 점점 쌓이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데모데이 이후에도 할 것이 많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데모데이에서 수상을 하고 다같이 회식도 하며 기분좋게 마무리되었지만, 프로젝트를 매듭짓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다행히 팀원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수상 소식에 기분이 좋다가도, 앞으로도 해나갈게 산처럼 많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팠다.
개강했다.
2년 간의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퐁투게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와 클러스터를 오가며 개발을 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지만, 그간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탓인지 아는 사람이 휴학 전보다 오히려 많았다.
수업에 갈때마다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내심 반가웠다. 멋사 활동을 하며 친해진 부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오히려 동아리 활동 당시보다 더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학교 생활이 즐거웠다.
2022년 휴학을 고민하던 나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게 느껴졌다.
클러스터에서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아서 이슈를 전달받기도 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전화를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팀원들도 나를 배려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만으로 넘어갔다.
3월은 학교에 적응하면서도 퐁투게더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클러스터 출석 시간을 채우고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주말마다 클러스터에서 밤새가며 개발을 했다.
가끔씩 같이 해준 팀원들 덕분에 그 시간이 즐겁게 지나갈 수 있었다.
이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신기하다. 소파에서 대충 잠들고, 아침은 대충 해결하고 개발을 했다.
재미없는 일상인데 신기하게도 팀원들이 재미있어서인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됐다. 다시 회상하더라도 나를 힘들게 한 팀원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참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클러스터 내에 약간의 이슈가 있어서 평가가 미뤄졌으나 3월 말에는 퐁투게더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프론트엔드 개발로 웹개발을 시작한만큼 나는 그냥 분야 상관없이 웹 개발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팀원과는 의외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사이가 괜찮아졌다.
눈에서 멀어지니 나를 힘들게 한 기억도 빠르게 사라졌고, 가끔 클러스터에서 만나면 시시콜콜 대화할 수 있는 정도로 사이가 회복됐다.
애초에 내가 티를 안 낸 탓이었다. 좋은게 좋은거지 싶다. 별 생각 없어진 지금 와서는 세상에 별별 사람 있음을 알게 해준 것에 감사하다.
학교에서는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래 별 생각 없었는데 아는 사람이 같이 하자고 해서 그렇게 얼떨결에 팀원을 구했다.
처음부터 수상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기능을 구현하고자 했고, 내가 팀장을 맡아서 기획 총괄을 했다.
팀원들은 솔직히 말하자면 개발을 잘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개발 실력 이전에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 명은 뭘 말하든 알겠다고만 했고 한 명은 뭘 말하든 싫다고만 했다.
재미있었다.
그래도 시키는 일은 다들 잘 해왔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다. 월 초에 프로젝트에서 참고 삼켜서 다른 곳에서 내뱉으면 좋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워와서일까,
이번에도 최대한 트러블없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웬만한 의견 충돌은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문제가 생기면 회의 시간에 대화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으로 해결이 됐다.
일부러 회의때마다 팀원 모두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한 명은 회의 중 입을 닫고 있는 편이었기에 꼭 그 팀원을 지정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어떤 때보다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절실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 생각에 한숨 쉬어지던 3월과 달리 4월부터는 팀원들과 트러블이 거의 없었다. 기획은 정해졌고, 디자인이나 개발만 남았기에 그 일정만 잘 정하면 문제될게 없었다.
3월에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일까 오히려 초반 이후에는 다같이 열심히하는 분위기가 됐다. 3월 중 느꼈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족은 회의를 거듭할수록 채워졌던 것 같다.
어떤 때에는 내가 문제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이 생기는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결국 문제가 해결되고 보니 다들 똑같은 사람이기에 생각이 같을 수 없다는걸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좋은 개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팀원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디스코드에 들어가서 깃이나 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도움을 줬다. 시간 써가며 남 도와주는건 오지랖 넓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팀원의 의지가 느껴져서 기쁘게 도와줬던 것 같다.
학교 수업 중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팀원을 구해서 함께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팀원 구하기에 머리쓰기 싫어서 에타에서 아무나 구했다. 그때 팀이 된 분도 목표가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기승전결을 내릴 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로 주제가 좁혀졌기에 팀원분이 가지고 온 주제를 픽스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빅데이터분석 수업의 팀원분과 다른 수업도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공지능 수업이었다. 배울 것이 없다는 평이 자자했으나, 그래도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학과인데 인공지능 프로젝트 정도는 한 번 쯤 해보고 싶었기에 수강한 수업이었다.
사실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기말 프로젝트에서 생각보다 얻어가는게 많았다.
CNN으로 5개 라벨의 이미지를 분류해내는 모델을 만들었다. 머신러닝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지 알 수 있었고, 진행 과정도 꽤 재미있었다. 수업으로 도움받은 것은 없었다. 그냥 파이토치 튜토리얼 보면서 알아서 했다. 왜 수업 평이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남은게 학교 공부와 졸프, 최애의장소의 짤막한 회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여유롭게 지나갔다. 시험공부에 전념하다보니 중간고사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밖에서 구르다가 학교에 돌아오니 새삼 공부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느꼈다.
프로젝트가 꽤 많았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개발 관련 프로젝트는 공부로 안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도 내가 열심히하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고 하셨다. 확실히 몇 년 전까지 나는 그다지 의욕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시험이 껴있는 와중에도 바쁘지 않은게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4월까지는 클러스터의 출석과 병행했기 때문에 쉴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클러스터에서 시험공부를 하다보니 오히려 시간 분배가 꽤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중간 중간 놀러다니기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졸업프로젝트의 발표와 기말고사가 있는 달이었다.
기말고사는 미리 준비해둔 대로 무난하게 끝났다.
졸업프로젝트는 정말 어지러웠다.
낙상 감지라는 생소한 기술을 개발했는데, 물리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나에게 있어서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논문을 수 편 읽고 겨우 겨우 알고리즘을 만들었으나 논문에는 임계값이 명확히 기재되지 않았기에 우리 서비스에 맞게 적절한 임계값을 설정해야 했다.
스마트워치 끼고 넘어져가면서 값을 수정했다. 서버가 나 혼자밖에 없는게 좀 서러웠다.
그래도 계속 넘어지다보니 임계값을 적절하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점이 많은 프로젝트였지만, 이런 과정을 발표에 담아내니 그럴듯한 프로젝트로 보였고... 운 좋게 프로젝트종합설계1의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스마트워치라는 모듈의 특이성도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것 같다.
당시 너무 괜찮은 프로젝트들이 많았기에 이런 허접한 프로젝트로는 수상을 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사실 졸업프로젝트의 발표가 있던 날, 3연강이었는데 수업 세개가 전부 다 발표수업이었다.
그래서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세 번의 발표를 진행했는데 뒤로 갈수록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발표를 진행했다.
그럼에도 준비해둔게 있다보니 의도는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업을 밝히기는 좀 꺼려지지만 아무튼 꽤 유명한 서비스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갔다.
운 좋게 서류에 합격했지만 개발 부서로 지원했던 것이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SRE 부서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ㅋㅋ
당연히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준비도 미흡했다.
면접관 두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질답하는게 꽤 재미있었지만, 그분들은 내가 왜 이자리에 있는지 의문스러워보였고... 그렇게 내 인생 첫 면접은 개같이 망했다.
심지어 면접 다 끝나고 대기실에서 울먹거리니까 인사팀 직원분이 달래주셨다.
부끄러워서 죽고싶었다.
그럼에도 얻어가는게 정말 많았다. 비록 SRE부서였지만, 그분들도 결국 개발자들이셨기에 개발자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 많이 성장한 것 같냐고 물어보면 흠... 스럽지만 확실히 성장을 이룬 것 같다. 이때 얻은 인사이트 덕분일지도.
종강하고 15년지기 친구와 대전으로 여행을 갔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같이 자전거도 타고 수목원도 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배아프게 웃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성심당 빵봉투 7개 싸매고 오는게 웃겼다.
명란 바게트 맛있더라 ㅋㅋ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1학기 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결과도 있다. 그런 방면에서 이번 학기 내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졸업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 공모전을 준비했다.
졸업프로젝트를 디벨롭해서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서 스마트폰 모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7월, 8월은 거의 이 프로젝트에 전념하며 개발만 반복했다.
아무래도 서버 개발자가 나 혼자이다 보니 팀원들 개발 속도에 맞추려면 내가 제일 바빠야 했다.
그 와중에 인공지능까지 도입하려고 하니 정신이 없었다.
개발만으로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공모전은 아쉽게도 1차 탈락으로 끝이 났다.
적어도 본선까지는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허무했다.
중간발표 때 교수님이 이 사실을 공연히 알리셔서 더 부끄럽고 민망했다.
주제에 안 맞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간 나를 탓해야 하나.
실패는 성공으로 잊는다지만 이후에 있던 성공 기억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7월에 퐁투게더를 함께 했던 몇 명의 팀원들과 만나서 뒷풀이를 했다.
늘 밝고 자유롭게 사는 것 같은 그 친구들 덕분에 시야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렇게 팀이 만들어졌다.
즉석에서 팀원 몇 명을 구했는데, 신기하게도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5명의 팀원을 구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생각이 참 많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여러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초기 5명의 인원 중 프론트엔드 인원은 한 명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프론트엔드의 팀원을 구했지만 한 명이 구해지면 한 두 명 씩 나갔고, 그러다 프론트엔드 파트의 모든 인원이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 같은 백엔드 부서 내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의사소통에서 생긴 문제였다.
백엔드 팀원은 나까지 총 세명이었다. 팀원 중 두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기에 아무래도 거리감에서 나와 서로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은 나를 편하게 대해주었으나, 디스코드에 둘만 있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백엔드 회의가 끝나고도 둘만 남아 이야기하거나, 혹은 아무 날도 아닌데 팀 회의방에 둘이 남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팀적으로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카톡으로도 이야기 해보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겨질 뿐이었다.
프론트엔드 팀원들이 빠지면서 백엔드에서 프론트엔드 개발까지 도맡는 것이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아예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구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지배적이게 되었다. 또한, 당시 프로젝트를 도와주시던 멘토님께서 프론트엔드 개발자 없이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방법이 템플릿 엔진이었다.
초기 사이드 프로젝트의 목적을 rest api에 대한 역량 높이기+퀄리티 높은 서비스 출시로 잡았기에 이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개발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팀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같은 파트 팀원 두명은 서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마친 듯 싶었고, 새벽 내내 붙잡고 있었으나 어차피 팀원들이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될거란 예감이 들었다.
팀원들은 초기부터 함께 했던 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맞춰주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나 그런 말뿐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둘이서만 따로 연락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팀원들도 서로에게 설득되지 않았고, 그렇게 팀에서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 뒤에도 팀원들이 몇 번 붙잡았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무책임한 나의 모습에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이미 우리 팀은 결속력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프로젝트를 나가게 됐다.
이 일이 있고나서 그 팀원들과는 더이상 예전처럼 지내지 못하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티내지 않고 웃어 넘겼을텐데, 팀에서 아예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내가 이 팀에 있는게 오히려 방향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결론이 섰다.
그동안 프로젝트에서 여러 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많이 상승했다고 느꼈지만, 이번 경험에서는 그런 능력이 많이 부족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더 좋은 해결 방법이 있었을거라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후회했지만, 이미 일은 벌여놨고 이제 와서 나의 선택을 뒤바꿀 수도 없기에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나아지길 기도했다.
나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말하고 갔어야 했는데, 분위기를 해친다는 생각에 분명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그게 응어리져서 의견 차이가 발생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팀 내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정말 많았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친구 두 명을 잃었다는 것이 속상하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앞으로 같은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겠다... 정도 밖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아직도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기에 2025년에는 응어리진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9월은 다시 개강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근로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학교의 총동문회에 배정되었다.
그 곳에서 같은 학과에 동갑이기까지 한 친구를 만났다.
이전에 동아리를 같이 했던 적이 있기에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근로를 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다.
무언가 진로에서 고민이 있을 때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며 어느정도 털어놓고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총동문회 선생님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직원 선생님들이 모두 학교의 동문 분들이셨기에 나를 후배로 대해주셨다. 일이 참 많았는데, 사람들이 좋으니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근로를 하면서 내 성향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근로를 같이 했던 친구와, 아는 동생까지 세 명이 스프링 스터디를 진행했다. 새 학기에 적응하는 기간 치고 꽤 알차게 보냈다.
10월에는 우아한테크코스라는 부트캠프에 지원했다.
나를 비롯해 같은 학교에 지원한 사람들이 꽤 되었기에 사람들을 모아서 스터디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외부인원도 모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으로 인해 노원역 인근 스터디를 만들어 처음 생각보다 규모있는 스터디를 운영하게 되었다.
시작 인원은 7명이었다.
인원이 많기에 모두가 한 번에 만나진 못했고, 대신에 3명/4명으로 조를 짜서 모였다.
스터디에는 OOP에 진심인 분들이 많았고, 살아오면서 관심이 전혀 없었던 의존성 분리에 대해 스터디에서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코딩이라는 분야 외에도 모든 부분에서 말을 참 신뢰감있게 하는 분도 계셨는데, 그 분 추천대로 TDD도 진행해보면서 테스트코드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1주차 과제는 평소 해오던 C스타일의 개발로, 객체 분리가 거의 안 된 우스운 코드였다.
개발할 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코드리뷰를 받아보니 부족함이 많은 코드라는게 확연히 느껴졌다.
이때부터 클린코드와 OOP에 신경써가며 개발했던 것 같다.
스터디 운영은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의외로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활동이었다. 거의 코드 리뷰를 하는 식으로 스터디가 진행됐기에 3~4시간 짜리 스터디를 한 번 하고 나면 생각해볼 것들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그걸 다음주 과제에 반영하면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다지 도움되는 팀원은 아니었는데, 자바 문법에 엄청나게 익숙한게 아니다보니 평소 개발하며 써오던 문법만 알고있고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질문하고 배우면서 단기간에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1주차와 4주차 코드를 비교해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 웃음만 나온다.
우테코는 총 4번의 프리코스 미션을 마친 뒤에 최종 코딩테스트를 치룬다.
그 중 4주차 프리코스 미션이었던 편의점 문제의 난이도가 상상이상이었다.
학교 끝나면 매일 스터디카페로 출석해서 설계하고 도메인짜고 인터페이스 연결하고... 뭐 그냥 개발만 했는데도 마감 시간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제출했다.
여태까지 해온 과제들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느낌이 아니었기에 4주차 미션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1차 심사에 붙더라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문제였다.
아무튼 다 만들었다는게 중요하니까... 라며 웃어 넘겼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차피 1차에서 떨어질텐데 미리 걱정해서 뭐하나 싶었다.
이 시기 운 좋게 인생 두번째 기업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판교에 있어서 가는 길이 고됐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okky나 카톡 오픈채팅에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다. 첨삭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는데, 세상에는 생각보다 친절한 분들이 많았고 모의 면접을 진행해주신 분이 계셨다.
이 분과 3일 내내 면접을 준비했다.
우연히 도움을 주신 분도 판교에서 근무하는 개발자셨는데, 내가 면접 본 회사와 거의 10분 거리 안에 회사가 있어서 신기했다.
판교는 생각보다 좁구나...
면접을 봤는데, 모의면접에서 준비한 질문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럴때마다 신나서 얘기했는데, 면접관분들이 내향적이신지 기빨리시는게 느껴져서 진정하고 차분히 말하려고 노력했다.
면접관분들이 나에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갈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얘기가 꽤 기분 좋았다.
이 면접을 생각하면 웃긴 점이 꽤 많은데, 그냥 실없는 소리라서 넘어간다. 기술적인 질문이 꽤 나왔지만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고 무난하게 끝났다.
면접 끝나고 모의면접 도와주신 개발자분께 클린코드 책도 받았다. 당근 거래하는 느낌이었다.
학교 수업으로 포트폴리오특론을 수강했다.
최종 과제로 책 형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지금보다 한 10년은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소한 꿈이 있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외관을 동화책 느낌으로 만들었다. 지류에 애착이 강한 나이기에 학교 과제지만 두고 두고 보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다.
책을 소량으로 만드는건 정말 비쌌다. 3권 만드는데 7만원 넘게 들었다.
그래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살면서 책 만들어 볼 일이 또 있을까? 출판도 내 버킷리스트에 있지만 몇 십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기에 이 책이 젊었을 때 만든 유일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11월에 봤던 면접에서 합격했다. 내 생각보다 이르게 개발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근로하는 사무실에 말씀드리니 다들 내 일 같이 기뻐해주셔서 감사했다. 심지어 국장님은 분당에 사셔서 집 어디가 좋다고 추천까지 해주셨다. 디저트타임 가지면서 다같이 내 자취방 위치 봐주시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하반기는 사무실 분들 만나는 것에 운을 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졸업프로젝트에서 의외의 갈등이 있었다.
팀원들과 GPT를 같이 쓰는데, 누군가 내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GPT에 올리고 요약한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졸업전시를 위해서 공유했고, 내가 작업한 작업물만 정리해뒀는데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팀내 서버 담당자는 나 혼자였으니까.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정리한 내용을 어떤 교육의 지원서로 내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이 일로 팀원에게 크게 따졌으나, 사과받고 내용을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미 gpt 데이터셋에 업로드됐을 내 포트폴리오를 되돌릴 방법은 없지만, 최종발표를 앞두고 더 이상 갈등을 지속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기말고사와 프로젝트 마감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우테코 1차 합격 메일이 도착했다.
엥? 나 왜 합격이지????? 라는 생각이 반 정도 들었고, 시험 준비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반 정도 들었다.
우테코 스터디를 하며 한 주에 한 문제씩 풀어오고 있었지만, 직전주에 인턴 합격을 이유로 최종 코테 준비는 포기했기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뒤늦게 한 두 문제를 더 풀어보려고 했지만, 팀원과의 갈등 등 심적으로 힘든 일들이 여럿 있었기에 4기 최종 문제였던 페어매칭 문제만 겨우 풀어본 채로 시험장에 가게 됐다.
스터디를 함께 했던 한 분과 만나서 커피사며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새삼 내가 준비없이 왔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소중한 기회였기에 시험은 최선을 다해서 임하려고 했다.
자리 배치도 운이 좋았다. 시험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시험을 오순도순 모여서 봤다. 한 테이블에 세명 씩 앉는게 기본이었으나, 나는 마지막 자리에 배정되어 한 테이블을 혼자 사용했다.
그래서 옆자리 사람의 화면을 보며 정신적으로 흔들릴 일도 없었고 내 페이스대로 편안하게 시험을 봤던 것 같다. 시험 중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편했다.
모든 상황이 나의 편을 들어주는 느낌이었으나 내 머릿속에 그닥 정리되지 않은게 참 아쉬웠다.
그런데 웬일인가... 시험문제가 4기 페어매칭 문제와 비슷하게 나왔다.
전 날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아마 어제까지 아무것도 안했다면 이 문제를 시간 안에 푸는 것은 커녕 인터페이스도 완성하지 못하고 제출했을 것이다.
문제를 풀면서 애초에 요구사항을 모두 지키지는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많은 부분을 내려놨다. 클린코드는 지키지 못했고 테스트코드도 작성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능 요구사항도 몇 개 씩 빼먹었다.
그럼에도 목표는 모든 기능을 일단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고, 이 목표는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요구사항을 제대로 지킨게 단 한 기능도 없으니 테스트코드를 다 통과했다고 해서 합격할거란 기대는 되지 않았다.
테스트코드 통과를 위해 뒤늦게 기능을 추가하다보니, 엣지케이스에서 np가 뜬다는 것을 알고서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못지킨 요구사항이 정말 많았다.
내 코드는 돌아가기만 하는 쓰레기였다.
그러나 5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모든 기능이 돌아가게는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래서 망해버린 코드는 뒤로한 채 남자친구에게 만들긴 다 만들었다며 자랑하며 나올 수 있었다.
결과는...음ㅋㅋㅋ 기대가 하나도 안 된다.
졸업프로젝트의 최종 발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번에도 금상을 받으며 1,2학기 모두 금상을 수상하여 기분 좋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보잘 것 없는 프로젝트에 점수를 내어준 동기들에게 감사하다.
이번 회고는 정말 솔직하게 작성한 것 같다.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트러블도 역대급으로 많았던 해였다.
이전에는 다 참고 견디면 어느 순간 모든 일이 끝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짧은 일회성 프로젝트라면 몰라도 앞으로 얼굴 보고 살 사람들에게 나 혼자 참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털어내고 솔직히 얘기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올해 내 잘못된 부분을 많이 배우고 반성한 해였다. 결국 문제는 대화에서 오기에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으로 끝났든, 실패로 끝났든 조금이라도 배워가는 것이 있었다. 내가 이룬건 어떤 상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기다리더라도 나는 결국엔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2024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