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달 간 이직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심지어 일이 너무 싫었다. 근무시간 8시간을 채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을 사랑하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평소 팀과 조직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이직하고 싶었으며, 무엇이 날 일을 하기 싫게 만들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조직에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확신으로 만들어 준 것은 동료의 동의였다. 평소 믿고 따르던 시니어들 조차 나의 생각에 동의했고, 표현하지 않았을 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확신을 줬고, 확신은 곧 조직에 대한 큰 실망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조직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의 열정을 쏟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내가 열심히 해서 바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모든 열정을 회사에 쏟았다. 무릎 재활을 해야 했는데, 재활도 뒷전으로 한 채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나같은 말단사원이 도저히 바꿀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는 번아웃에 빠져버린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직을 실천하기 전 이 확신을 마지막으로 검증하기 위해 평소 믿고 의지하던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매우 충격적이게도 지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인들은 나의 확신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같은 Leaf Node 개발자가 큰 규모 기업에서 리더십의 부재를 느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이직을 떠올렸던 이유를 설명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지인들과의 대화가 상당히 불편했다. 나의 상태를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지? 본인들은 실컷 이직해놓고 왜 나한테만 엄격하지? 내 의견에 동의해주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지인들이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다시 설명을 했고, 지인들은 또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답 말고 다른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빙빙 돌았다. 고맙게도 지인들은 총 한달 간 두번에 걸쳐서 진지하게 나의 고민을 들어주며 조언해줬다. 그들의 고민 중 기억에 남는 것을 몇가지 뽑아본다.
1번 조언에 100% 동의한다. 솔직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직하고자 했던 회사에는 현 직장에서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사람이 조직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난 리더십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그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리더와 일해봤던 모두가 입을 모아서 그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것을 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이직에 관련된 여러 아티클을 읽어보았을 때 대부분 동일한 말을 했다. 외부적 요인으로 이직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외부적 요인은 동료의 무능함, 조직의 어리석음 등이 있을꺼다. 내부적 요인은 나의 어떠함이다. 돈을 더 받고 싶거나 회사가 가까웠으면 좋겠거나 이다. 생각해보니 리더십의 부재는 외부적 요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외부적 요인이라고 하더라도 견딜 수 없을만큼 일하기 싫게 만드는 요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를 이직없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에 대한 정답을 3번 조언에서 찾았다. 내가 속한 조직은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장점이 있다. 단점을 꼽으라면 딱 하나 있다. 내가 느끼는 리더십의 부재 이다. 나는 여기에 꽂혀서 이것만 보았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모든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리더십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리더십이 부재하다고 느끼기만 했을 뿐 실제로는 있을꺼다. 단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땡깡을 부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을 하기 싫게 만든 것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개발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점이다. 일년 넘게 빡빡한 일정으로 일을 해오니 지친 것 같다. 팀원들의 피로도를 고려하지 않는 조직과 리더에게 불만을 가졌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보니 리더십의 부재라는 말로 퉁쳐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너질 정도로 무리해서 일하지 말자.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해보인다.
2번 조언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코드의 복잡도를 올리는 기획이 쏟아지기 때문에 개발 검토 단계에서 최대한 공통화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나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이 개발자의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획서 그대로 개발하는 것 보다 뛰어난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2번 조언을 들을 당시엔 정말 어이가 없을정도로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했으나, 의도는 이해가 된다. 조직의 성공 이라는 거시적인 그림에서 구현의 어떠함은 상당히 미시적인 점 일테다. 더 큰 그림에서 의견을 내기 위해 총알을 아껴두라는 소리인 것 같다. 의도는 알겠으나, 나의 환경에서 실천하기엔 어려운 조언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이직을 할꺼냐 말꺼냐? 안할꺼다. 그럼 어떻게 이 권태로움을 극복할꺼냐. 최대한 장점만 보고 일하려고 한다. 회사엔 셀 수 없이 많은 장점이 있다. 이 장점들만 보고 일을 하자.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힘을 빼고 일하려고 한다. 1년 365일 열정적으로 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너무 열내며 일하지 말자. 일이 몰아칠 때는 야근하며 많은 일을 즐기고, 일이 적을 때는 일찍일찍 퇴근하고 다음 웨이브를 대비하자. 그게 끝까지 갈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자. 어처구니 없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내자.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지게 되며, 나는 손해만 본다는 것을 느꼈다. 공수를 산정하고, 개발 의견을 내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신경쓰지 말자.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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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아쉽다. 나의 장점과 매력이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불평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고 매력이자 불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회사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게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최대한 밉지 않고 시기 적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노하우(?)로 이 선을 정말 잘 지키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그만둔다면 나의 아이덴티티를 잃는 것이 아닐까?
아이덴티티를 잃을까봐라는 말이 공감됩니다.
저도 요즘 퇴사나 이직을 하고 있는데 비슷한 문제로 고민중이라서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