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어느 생물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대상을 알아갈수록 이해하게 되고,
이해를 통해 오해가 줄어들며
결국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들이
과연 나를 가장 잘 아는 타인일까?
나는 과연,
나의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분들의 삶을, 마음을, 꿈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또 나는,
나의 자식에게 나에 대해 얼마나 알려주려 노력할까?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타인은
가족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십 년을 함께한 친구들은?
그들이 나를 가장 잘 아는 타인일까?
하지만 친구에게 비친 나는
가족의 눈에 비친 나와는 또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변한다.
아니, 어쩌면 매분, 매초, 매순간 달라진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결국
지금의 나로 수렴된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바로 ‘나’인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이 순간 속의 내가 곧 나다.
그렇다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공간에 따른 물리적 거리,
시간에 따른 시대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서로를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타인이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는,
이미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넓은 이해심이란 무엇일까.
깊은 존경심은 어떤 감정일까.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남의 상처를 보고 울컥하는 그 마음은 무엇이며,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은 또 무엇인가.
거울 속 생명에게 쏟아내는 철저한 자기부정,
타인을 향한 몰아적 헌신,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궁금함을
굳이 글로 적고 있는 지금의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혹시
쓰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