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오늘은 저번주까지만 해도 쉬는 날이었지만
나만의 무기 마지막 주차로 접어든 만큼
일요일에도 작업을 하는 것에 아무런 의구심이 들지 않았다.
월요일인 내일은
1차 리허설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와 장표를 만들어야 했다.
시나리오가 짜여져야
발표를 위한 데이터를 세팅하기 때문에
순서를 지켜서 작업을 진행했다.
나도 저번주까지는 파이널에서 발표를 하고 싶었지만
팀원 모두의 발표를 보고
또 내가 장표를 만들고 나의 역할을 수행해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여태까지 ‘발표’라는 것을 일종의 트로피처럼 여겼던 것 같다.
무대에 서는 것,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박수를 받는 것.
그 모든 게 성과이고 증명이라 믿었고,
그래서 파이널에서의 발표는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자리였다.
하지만 점차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발표보다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창으로
장표와 포스터를 완성도 있게 다듬는 일이
팀 전체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땅히 해야할 역할은
우리 팀의 무기를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
그 무기의 껍질과 구조, 흐름과 톤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지금 내가 만드는 페이지 하나, 이미지 하나, 효과 하나가
클릭랩의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만들고,
우리 팀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왔는지를
가장 순수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발표는 단지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팀에 기여하는 것.
그것은 단지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작지만 분명한 존재의 증명이라고 확신한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완성할 수 없던 나는,
너무나 작은 모래 알갱이 같은 존재.
같은 공간에 있던 모두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숟가락을 얹은 건 결국 나였다는 것을.나의 반짝이던 아이디어와
안쓰럽던 고민과
닳아 없어진 것 같은 노력으로 인한 성공과 인정,
실패와 질책까지 모두
타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 부끄러워.『료의 생각 없는 생각』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