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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있는 내 본가에는 동생의 침대가 있다. 나는 이 침대를 마약침대라고 부르는데, 여기 누우면 묘하게 잠을 푹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여기서 자기 위해서 이 집에 오는 경우는 없지만, 간만에 한 번씩 들를 때면 꼭 동생의 침대에서 잠을 잔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군말없이 다른 방, 그러니까 내 침대 또는 안방의 엄마 아빠 침대, 에서 잠을 잔다. 나를 배려한다기보다는 이미 잠든 나를 들어낼 도리가 없다는 것이 더 적합한 이유일테다.
그러나 왜 이 침대가 잠이 잘 오는가, 왜 이 침대에 건강검진 수면내시경의 프로포폴같은 효과가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원래 동생 침대에 두꺼운 매트릭스가 두 개 있었는데 처음엔 그게 마약침대의 근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트릭스를 하나 빼버린 이후에도 동일 효과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한 가지 추측은 이 방에 전자파가 덜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이 (놀랍게도)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공유기의 안테나가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무리 조절해도 이 방에선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알았는데, 핸드폰 위치에 따라선 LTE도 잘 터지지 않는다. 와이파이를 온전하게 세 네 칸 채우기 위해선 핸드폰을 아주 특정한 각도로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이 때 체력이 방전되어 일종의 운동 후 수면 상태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모든 게 단 한 순간의 우연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심리적인 이유라는 가설이다. 어쩌다 한 번 동생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그게 만족스러운 수면이었고, 내가 침대에 마약침대라는 이유를 붙임으로서, 스스로의 환상이 더욱 확고해지는, 뭐랄까 보기 드문 긍정적 확증편향의 예시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마약침대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마약침대에선 마약같이 달콤한 (어라, 이 문장을 쓰면서 처음으로 이게 말이 되는 별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잠을 잘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온전하게 마약침대의 효과를 100% 누리고 있다. 참으로 다행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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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작가와, K 대학원의 K 모씨, 그리고 나는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사이였다. 나 빼고 둘은 아마도 훨씬 자주 만났겠지만. 만날 때마다 느꼈던 것이, 이 작가의 말이나 행색이 퍽 재미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이 자는 분명 좁고 기묘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길을 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독립서점의 사장이 이 작가의 책이 요즘 대세라는 말을 했을 때 세상이 드디어 맛탱이가 갔다는 생각을 했다. 심너울은 그런 작가여서는 안된다 이놈들아, 조금 더 꽁꽁 숨겨져 아는 놈들만 아는 그런 홍대 무명 밴드같은 맛이 있어야 된단 말이다, 같은 울분을 속으로 삼키고 서점을 나오면서 대체 이 자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하는 탄식을 한숨으로 승화했다. 요즘은 좀 체념한 상태다. 마치 장기하 2집과 3집 사이.
나는 두 번째 단편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이런 식, 이런 정도, 이런 수준의 현실과 환상의 짜집기가 내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