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와 화가> 감상

Roeniss Moon·2022년 12월 17일
0

독서

목록 보기
17/29

기억나는 게 두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와 이 사람 진짜 잘났네'고, 다른 하나는 '리스프 안쓰면 덜떨어진 개발자인가?'이다.

내용은 가벼운 수필집 (블로그에 쓴걸 엮은 것 같은데) 인데, 꽤 생각해볼 구절이 많아서 좋다. 폴 그레이엄이라는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이나 생각의 플로우가 꽤 나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 글도 술술 읽히고 (이런 종류의 책 중에서는 정말 드물게)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게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구절들

몇몇 구절은 내가 동감하는지 아닌지에 관련없이, 생각해볼 지점이 많아서 참 좋았다. 아래는 그 문장들을 적당히 내 식대로 인용해본 내용이다:

  • 해커에게 필요한 언어는 엄격한 컴파일러 숙모와 마주 앉아 데이터 타입을 채운 찻잔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놓고 대화할 때나 쓰이는 언어가 아니고, 사방에 떡칠할 수 있는, 내갈길 수 있는 언어다.
  • 우리가 프로그래머를 면접 볼 때 집중적으로 물어본 질문은 그가 여유 시간에 작성한 소프트웨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 최고의 반격은 유머다. 나는 이 대목에서 베르베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상대적으로 쉬운 것이 선택지로 떠오르는 이유는 대개 게으름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이미 알고 있다. 이 전략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마다 더 어려운 쪽을 선택하라)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만든다.
  • 브랜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차이가 증발하면서 남게 된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 좋은 디자인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아주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들이 있으며, 더 성숙한 쪽이 반드시 존재한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하고 / 시대를 초월하며 / 유머를 담았고 / 겉으론 쉬워 보이며 / 대칭적이며 / 자연을 닮았고 / 여러번 퇴고되었다.
  • 강력한 언어 (lisp) 를 선택한다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지 않는다. 왜냐면 강력한 언어는 더 적은 수의 해커가 필요하고, 이런 '앞선' 언어를 쓰는 해커들은 대개 똑똑하기 때문이다.
  • 당신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서엥 대해서는 낙관해야 하고, 당신이 그 시점까지 개발한 해결책의 가치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회의를 해야한다.
  • 창조자는 오로지 결점만을 보게 된다.

이 책의 부수적인 효과들

1. Lisp

책의 사방팔방에서 "lisp는 최고다. lisp 외의 언어를 쓰는 것은 네가 멍청하다는 뜻이다. lisp 를 안쓰면 2급 개발자다. 삐빅삐빅. 🤖" 같은 세뇌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lisp 계열의 언어를 메인 언어로 쓰는 모 회사의 개발자 분에게 들었는데, 그 회사에선 이 책이 거의 성서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을 통해 리스프의 세계에 발을 접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테다. 나 또한 이에 영감을 받아, 꾸준히 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리스프 계통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좀 더 pure 한 코드를 짜도록 노력하게 된 것은 덤.

2. 선입견

해커와 화가를 읽은 개발자는 꽤 똑똑한 개발자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생겼다.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면 근거없는 믿음과 호감이 10점 정도 오른다 (만점은 비공개). 이걸 알고 있는데도 의식적으로 제어하기가 어렵다.

profile
기능이 아니라 버그예요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