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는 사회. 마을의 원로들이 아이들의 직업을 12살 때 정해주고, 결혼할때도 배우자를 정해준다. 가정은 ‘기초가정’이라 불리우며 한 가구 당 아이는 2명으로 제한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크면 부모들은 아이를 다 기른 부모들과 함께 살게된다. 애초에 부모 자식이 혈육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직업, 배우자, 자식 모두가 누군가가 잘 정해준 틀에서 살게된다. (아이를 낳는 건 부모가 아니라 ‘산모’라는 전문 직업인이다) 장애를 가졌거나, 원로회에서 정한 인구를 넘기는 시점에 출산된 아기들은 ‘직무해제’ 처리된다. 노인들은 양로원에서 케어받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직무해제’ 처리된다. 햇빛이 없고, 눈이 없다. 음악도 없고 색깔도 없는 무채색 세상이다. 이렇게 규정된 것은 ‘Sameness’(늘 같은 상태) 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주인공 조너스는 12살이 되는 12월 직무수여식에서 자신의 직무가 ‘기억보유자’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기억전달자’를 만나 아주 먼 옛날 색깔이 있고 음악이 있고 사랑, 분노, 슬픔, 전쟁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늘 같음 상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 규약 중 하나인 ‘직무해제’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게된다. 이 사회에 분노하고 그는 스스로를 희생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 그리고 서로간의 사랑을 선물하고자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남포의 <모퉁이 극장>에서 ‘이터널선샤인’을 보았다. 상영 이후 관객들끼리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사회의 전 구성원 모두가 이유 모른채 정해진 길 만을 가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비하는 것 같다. 수험생때도, 대학에 가서도, 군에 가서도,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취업을 해서도,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희생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 같다 : 희미한 먼 미래의 안정성, 남이나 사회가 만든 것 따위를 맞춰나가기 위함 등.. 나는 이 영화가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순간을 오롯이’ 를 말하는거처럼 느껴졌다.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 영화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모두들 언젠가 알게되겠지.’ 모두가 언젠가는 꼭 알게될거란 뜻인데, 가사처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꼭 알게되었으면.
‘넌 지나간 세월 앞에서 미친 개마냥 미쳐버릴수도 있어. 운명을 탓하며 욕을 할 수 도 있어. 하지만 결국 끝이 다가오면 그냥 가게 냅둬야할 뿐이야…’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내가 선을 벗어날 용기가 없는건지, 모두 다 이루고싶은 욕심때문인건지, 아니면 사실 노력이부족해서인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벗어나기 위해 미치게 발버둥치고싶지만 끈적한 늪에 빠진 것 같았다. 경험해본 사회는 외롭고 무서운 곳이였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후회없을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생각과 행동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였다. 시간은 지나가고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갔다. 무엇인지 잘 모를 것들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만 가득하였고, 분명한건 이렇게 가다가 내 자신을 잃고 그냥 뻔한 사회의 부속이 될 것이라는 점이였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난생 처음으로 책 한권 잡자마자 다 읽어버렸다. 중반부부터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는것처럼, 아주 폭발적으로 책에 빠져들었다. 제 정신을 간직하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집중하게 되었고, 또 울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