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늦은 나이에도 두려움 없이 뭐든 도전하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결정적인 경험은 Camino de Santiago, 32일 동안 순례길을 완주했던 일이었다.
대학 시절, 동기들과의 소통이 참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 생각하는 방식, 목적 모두가 달랐고 난 그런 내 자신이 참으로 별스럽고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직면할 때마다 미친듯이 책을 찾았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찾을 수 있었던 인생의 조언자들이 거기에 있었고 운이 좋게도 책을 읽으면 한두 권 내에 딱 알맞은 조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들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부분은 딱 맞는 조언을 찾기가 힘들었다.
당시의 나는 내 자신이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닌지 홀로 많이 고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그냥 힘들었다. 그래서 도서관을 가서 이 책, 저 책 매일 둘러보던 중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작품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를 만나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10년도 더 지난 지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을 읽고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어쩌면 내가 정신나간게 아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일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그 이후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작품은 모두 읽고 그 작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에는 단순히 저기를 가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에 순례길만 생각하면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마냥 설레였다.
문제는 집안 사정으로 바로 떠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고 언젠가는 가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4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중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찾은 6개월 간의 중국 인턴십 기회!
운이 좋게도 회사에서 집세와 기타 유틸리티에 관한 비용을 전부 지원해주셨고 한 달에 받는 100만원 월급은 온전히 내 돈이 되었다.
중국의 점심은 대부분 10위안 안밖. 대략 한국돈으로 2000원 밖에 되지 않음에도 그 돈도 아끼기 위해 옥수수를 삶아 가거나 직접 점심을 준비해갔고 건강 챙기라는 주변의 소리보다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이 더 강했다.
그렇게 모인 소중한 300만원
으로 드디어 5년간 꿈꾸고 생각만 해도 설레던 그 길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루트를 선택했고, 처음 간 알베르게에서 남자분들이 속옷만 입고 다녀서 약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던 때였어요.)
돈이 적었던 나의 목적은 되도록이면 빨리 완주하는 것!
보통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많이 걷지 못 하고 여자의 경우 20키로 남짓 걷는게 보통이지만 계산해보니 30일 안에 완주하려면 35키로 정도 걸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돈이 적었기에 선택권이 없었고 그렇게 어떤 고난이 기다리는지 모르고 아름다웠던 첫 날이 시작되었다.
첫 날은 모든게 아름다웠다. 산을 넘는 코스기도 했고 설레는 이 공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날이기도 했고 스페인에 가면 알겠지만 정말 날씨도 환경도 그냥 죽인다.
알베르게 들어갈 때 함께 걷던 분과 헥헥거리면서 도착하긴 했지만 마냥 설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가 찾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워낙 상업화되어 있었고 다들 색다른 휴가를 즐기러 온 것이지 나와 같이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 조차 무엇을 찾는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문제는 뭐든 돈돈돈
이었다.
30키로 이상 걸으려면 7시에 출발하면 저녁 6-7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40키로 이상 걸으면 7시에 출발하면 밤 9-10시쯤 도착한다.
워낙 걷는 량이 많으니 자연스레 외국인들과 함께 걷게 되었다.
이름은 벌써 까먹었지만 호주에서 온 간호사(여), 미국에서 온 지질관련업 종사자(남), 독일에서 온 직장인(남)과 함께 걷게 되었고 처음에는 정말 즐거웠다.
그 놈의 돈이 내 발목을 잡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누텔라와 바게트로 연명
하다가 저녁 한끼를 제대로 먹고 끝내는 방식으로 갔다.
그런데 함께 걷던 분들은 다 오랜기간 직장생활을 해왔던 분들이었고, 내가 최대한 돈을 아끼고 있다고 말을 했음에도 점심에 음식을 사면 내가 먹고 싶은 걸 사지 않았지만 N분의 1을 했어야 했다.
그정도까지는 괜찮았는데 어느날 곧 휴가에 들어가는 알베르게에서 우리 4명만 묵으면서 알베르게 주인에게 정말 맛있는 저녁을 대접받던 날이었다.
저녁 식사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되어있던 상황이 아니었는데 이 분들은 기분이 좋다고 팁으로 10유로씩 걷어 내는 것이다. (유럽은 팁문화가 아닙니다.)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뭐해?! 10유로 주라고~"하였고 나는 내 한끼 식사에 해당하는 돈을 팁으로 줘야 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
돈이 없다는 소리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어느날엔가 그들과 따로 걷기 위해 새벽 4시에 몰래 출발하였다.
지금의 나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을텐데 그때의 나는 그냥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한없이..
당연히 걷는 속도가 비슷하니까 중간에 몇 번 마주쳤고 어색했다. 그리고 내 사정이 슬펐다.
오랜 기간 순례길에 대해 알아보기는 했지만 가보지 않으면 읽어도 어디가 어딘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문서를 뽑아서 그 문서에 기대어 길을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서에는 욕이 난무했는데 왜 그런지 곧 이해했다.
하 정말... 하루에 30키로 이상 매일 걸어보면 아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욕의 달인이 될 것이다. 한번 시도해봐도 좋다.
스페인의 그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난 그냥 걸었다. 완주해야 하니까. 돈과 시간이 부족하니까.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걷다보면 발의 통증이 위에도 영향을 줘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걸었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면서 욕하다가 또 걸었다. 울면서 걸었다.
순례길은 종교적 길이라 위험한 일이 전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
난 왠만한 남자만한 키와 덩치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아담한 여자들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순례길을 걸으면 순례자들은 단번에 티가 난다. 우린 서로에게 "Hola"라고 인사했다. 또 길을 걷다보면 자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서로 알게 된다.
어느날 아침 10시 즈음으로 기억한다. 순례자를 보고 반갑게 "Hola"하고 인사를 던졌는데 뚱하게 날 쳐다보고 지나갔던 그 남자.
기분이 별로인가?하고 산길인 그 길을 걸었다.
오가다가 아는 분들이 있었고 우리는 인사했고 헤어졌던 어느 시점 이상하게 그 공간에 나만 남았던 그때에
아침에 인사를 뚱하게 받았던 그 남자가 저 멀리 바닥에 앉아있었다.
다리가 아픈가? 다쳤나?하는 생각에 "Are you okay?"하고 물으면서 다가갔더니
"I feel good"하면서 산 한복판에서 본인을 마사지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 그대로 빠르게 걸어 지나갔더니 아는 무리가 있어서 "너네 아까 변태 봤어? 앉아서 자*하고 있었어!!"라 했더니 못 봤다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이날은 아마 40키로 넘게 걸었던 날이었다. 저녁 6시정도가 되었는데도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고 너무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계속 걸었다.
왼쪽으로는 갈대가 무성하고 오른편은 찻길이었지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실제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찻길은 저 멀리 차가 장난감처럼 보일만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 곳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석양이 잘 익은 홍시마냥 벌겋게 무르익었고 아름다웠지만 무서웠다.
얼마나 걸어야 마을이 나타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그냥 무작정 걸어야 했다.
그렇게 아무도 없고 무서운 와중 어떤 남자가 저 멀리 앞에서 빠르게 나무 뒤로 숨어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노상방뇨를 하시나? 생각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올려다 봤는데 여전히 거기에 있었고 방뇨를 하신다기엔 긴 시간이었다.
아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시는구나
싶었지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졌고 말을 걸면 해코지는 안 하겠지 하는 어리석은 마음에 "여기 지나가면 마을이 있는거 맞아?"라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다행히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하고 지나갔는데 그 남자가 불러서 돌아보니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꺼내어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미.*.놈'
난 가방에 있는 칼을 꺼내야 하나 내 지팡이를 몽둥이처럼 휘둘러야 하나 고민을 하며 아주 빠르게 걸었고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미친듯이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은 갑자기 미친듯이 뛰어서 자기 차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차를 끌고 이쪽으로 오는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다행히 내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걸어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어떤 할머니가 다가와서는 "solo? solo?"
이러시기에 혼자왔냐는 말인가 싶은 yes
라고 하였고 자꾸 말을 거셨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큰 검은 밴이 다가왔다.
차가 다가오니 할머니는 말을 멈추셨고 나는 '이거 납치되는건가?' 무서웠다.
빠르게 걸어가면서 보니 할아버지가 밴에서 내리셨고 아마 오해한 것이리라..
그날은 정말 무섭고 힘든 날이었다.
여자 혼자 여행하는건 확실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날도 40키로 이상 걸었던 날이었다. Leon이라는 비교적 큰 도시에 들어서면서 길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다른 마을들은 워낙 작아서 표식만 따라가면 알베르게고 길이고 다 명확했는데 큰 마을에 들어서니 어디가 어딘지 몰랐고 이미 날이 저물어 순례자들도 알베르게에 들어가 있을 시간이었다.
상점마다 들어가서 영어로 알베르게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면 다 다른 방향을 가르키는 것이다.
나는 길에서 정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니 눈물이 살짝 고인다.
이미 밤이었고 어디로 갈지 몰라 무작정 걸으면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상관할바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렇게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정처없이 걸으니 어느 스페인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Are you okay?"
하고 물었고 나는 "I am not okay, I wanna go here"
이러면서 알베르게 주소를 보여줬다.
그 남자가 스페인어로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전거로 순례길을 3번 완주했고 알베르게를 안다고 데려다 주겠다했다. 그렇게 그를 따라 갔다. 따라가면서 '너무 힘든데 가방 좀 자전거에 실어주지ㅠㅠㅠ'하고 철없이 생각했다. (좀 살만했었던 것 같다.)
숙소는 은근히 먼 곳에 위치했고 그렇게 숙소에 다달았을 때는 이미 10시였다.
숙소등록하는 곳에 도착하자 등록해주시는 분들도 너무 늦은 시간에 놀란 눈치였고 나는 또 엉엉 울면서 "I walked over 40km" 어어어엉엉....ㅠㅠㅠㅠ
그렇게 샤워를 하고 누웠더니 어디서 들었는지 사람들이 와서 건과일도 나눠주고 그날부로 휴가가 끝나서 마지막 걸음이었던 분은 발 마사지 크림도 주셨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계속 걸었다. 그냥 걸었다. 욕하면서 걸었다. 완성하고 싶었다 오랜 꿈을.
세일 가격으로 저렴한 등산화를 샀는데 내 발에 꼭 맞았는지 초반에 잡힌 물집 이외에는 한번도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다만 발의 감각만 무뎌져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걸으니 산티아고에 닿았고 마지막에 함께 걸은 독일인 2명과 한국인 1명과 함께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밖에서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어느 예술가가 기타를 치고 있었고 햇볕은 정말 강렬했다.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이유없이 눈물이 흘러 조용히 울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함께 걷던 일행들과 마음이 맞아 묵시아까지 더 행군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치르는 의식이 또 있었기에.
묵시아까지 그리 긴 여정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묵시아를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했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다. 거기서 순례를 마친 사람들은 순례기간동안 입었던 옷을 불태우면서 새로 태어난다 했다.
그 지구의 끝에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고 해가 바다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옷 두 벌 중 한벌을 불태우려 했을 때, 라이터가 없었다;;;
마침 담배피는 스페인 사람들이 보였고 잠깐 불 좀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 분들은 라이터를 가지라고 하면서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중국인이 자기한테 라이터달라고 했다"고 낄낄거렸다. 메롱!
(불어도 살짝 공부했었어서 아주 대충 알아는 듣는다..)
문제는 옷에 불이 잘 안 붙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어두워졌다. 결국 그 끝에 나 혼자 남았지만 꼭 태우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불을 붙였다.
드디어 옷이 타들어갔고 뭔가 속시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서 하늘을 보면서 내려왔는데 하늘에 정말 빼곡히 별이 박혀있어서 정말정말 아름다웠지만 약간은 무서워서 하늘을 보며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별이 빼곡히 박힌 하늘은 아직까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다리가 정말 굵어졌다.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발에 감각이 없어졌다. 대략 1년 동안은 감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
중요한 교훈은 내가 찾는게 존재하는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정말 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무한한 자기 신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영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게 영적인 체험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날 아침 홀로 길을 걷던 중 남자분이 길가에 앉아 빵을 드시고 계셨고 "Hola"하고 인사를 한 후 지나가려니 그 남자는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하고 "넌 어디서 왔어?" 물어보니 자기는 여러 곳에서 왔다 했다. 그리고는 "왜 이 길을 걷냐?"고 물었다.
파울로 코엘료 얘기를 꺼내면서 여길 오면 뭔가 특별한 걸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거 같아~
라고 대답하니
그는 너가 한국에 있던 일본에 있던 여기에 있던 장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고 모두 너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이라 했다.
그를 본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왜인지 자꾸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이 길을 걸은 이후 나는 절대 장소와 내 주변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실히 깨달았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무엇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인생에 도움되지 않던 경험도 후회된 도전도 아직은 없었다. 만약 걷고 싶다면 서울에도 제주에도 순례길이 있다는 것 아시는가?
걷는 고행은 추천한다. 장소는 상관없다.
오늘도 작은 발돋움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화이팅이라고 외쳐드리고 싶다. 그 경험들이 모여 우리는 오늘도 나 자신이라는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리라.
모두 화이팅!!
글 정말 감동적 입니다 !! 대단하세요 👍 저는 이번 위코드 15기로 들어가게 되는데 언젠가 마주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마주치게 된다면 글 잘 읽고 있다고 인사드리고 싶네요 !! 여기에 댓글을 남겨도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 가능하시다면 들어가기전에 이것 만큼은 꼭 공부하고 들어가라 혹은 이건 정말 필수다 ! 라고 생각하시는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