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개발실록 - 제5화: 지행합일 (知行合一)

teo.v·2026년 2월 3일

조선개발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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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지행합일 (知行合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경복궁 편전, 경연 전 아침]


왕: (병만 들어와 있다) 경연 전에 그대를 따로 불렀다.

병: 무슨 일이시옵니까, 전하.

왕: 과인이 그대한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왕: 인공지 시대에... 개발자는 어떤 자여야 하느냐? 그대 생각을 듣고 싶다.


병: (잠시 생각하다가) 전하, 옛말에 "술사는 자고로 게을러야 한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좌의정: (놀라며) 게으른 자를 어찌 쓰겠사옵니까!

영의정: 무슨 뜻인지 들어나 봅시다.


왕: 그래, 말해보라.

병: 그 말의 본뜻이 있사옵니다, 전하.


[게으름의 본뜻]


병: 좋은 술사는 반복 작업을 못 참사옵니다.

왕: 못 참는다?

병: 같은 일을 두 번 하기 싫어하옵니다. 그래서 자동화를 하옵니다.


왕: 예를 들어보라.

병: 배포(配布)할 때마다 같은 명령어 열 줄을 쳐야 하는 상황이라 하겠사옵니다.


병: 부지런한 자는 어찌 하겠사옵니까?

왕: 열심히 치겠지.

병: 그러하옵니다. 매번 열 줄을 정확히, 빠르게, 실수 없이 치옵니다.


병: 게으른 자는 어찌 하겠사옵니까?

왕: 귀찮아하겠지.

병: 그러하옵니다. 귀찮아서 못 참사옵니다. 그래서 스크립트(命令帖)를 만드옵니다.

병: "이 열 줄을 한 줄로 합쳐라" 하고 인공지한테 시키옵니다.


왕: 그래서?

병: 그 다음부터는 한 줄만 치면 되옵니다.

병: 백 번 배포할 것을, 부지런한 자는 천 줄을 치고, 게으른 자는 백 줄만 치옵니다.


좌의정: 오... 결과는 게으른 자가 나았구나.

병: 그러하옵니다.


왕: 그런데 부지런한 자도 스크립트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

병: 전하, 그것이 함정이옵니다.

왕: 함정?


병: 부지런한 자는 반복 작업이 불편하지 않사옵니다.

병: 그냥 하면 되니까요. "뭘 그런 걸 가지고 스크립트까지 만들어"라고 생각하옵니다.

왕: 아...

병: 불편함을 못 느끼면 해결할 생각을 안 하옵니다.


왕: 부지런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구나.

병: 그러하옵니다, 전하.


왕: 잠깐. 그대 말을 들으니... 그냥 게으른 게 아니로구나.

왕: 불편하면 못 참고 해결하려 드는 것... 그것은 능동적인 게으름이 아니냐?

병: (감탄하며) 전하께서 정확히 짚으셨사옵니다.


영의정: 능동적인 게으름이라... 참 묘한 말이로다.


[인공지는 욕망이 없다]


병: 전하, 한 가지 더 있사옵니다.

왕: 말해보라.

병: 인공지는 욕망(慾望)이 없사옵니다.

왕: 욕망?


병: 사람은 "더 잘하고 싶다", "더 깔끔하게 짜고 싶다"는 욕심이 있사옵니다.

병: 장인정신(匠人精神)이라 하지요.

왕: 그렇지.


병: 인공지는 그런 것이 없사옵니다.

병: 돌아가는 코드를 주면 그것으로 만족하옵니다.

병: "더 좋게 다듬어라" 시키지 않으면 절대 먼저 안 하옵니다.


왕: 욕망이 없으니 발전도 없다?

병: 그러하옵니다. 사람의 욕망만큼만 움직이옵니다.


좌의정: 그러면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부려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병: 정확하옵니다.


[최악과 최고의 조합]


왕: 그러면 제일 안 좋은 조합이 뭐냐?

병: 수동적인 사람과 인공지이옵니다.

왕: 왜?

병: 둘 다 먼저 안 하옵니다.

병: 사람은 "에이, 귀찮아" 하고 가만있고, 인공지는 시키기 전까지 가만있고.

병: 아무 일도 안 일어나옵니다.


왕: 제일 좋은 조합은?

병: 능동적인 사람과 인공지이옵니다.

병: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해결책을 생각하고, 시키면, 인공지가 빠르게 해결하옵니다.

병: 최고의 조합이옵니다.


왕: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경연을 시작하자.


[경복궁 근정전, 경연]


왕: (갑, 을, 병이 도열해 있다) 지난 경연에서 "원래 그런 거"를 의심하라 했다.

왕: 그리고 실제로 해결한 것을 찾아오라 했다.

왕: 무엇을 해왔느냐?


[병의 보고]


병: 전하, 소인은 테스트 코드 작성을 인공지한테 시켰사옵니다.

왕: 테스트 코드?

병: 그러하옵니다. 함수를 만들면 그에 맞는 테스트 코드를 짜라고 시켰사옵니다.

병: 잘 되옵니다. 테스트 커버리지(試驗 範圍)가 올라갔사옵니다.

왕: 좋구나.


[갑과 을의 보고]


왕: 갑, 을. 그대들은?

을: 전하, 소인들이 워크플로(臥剋浮漯)라는 것을 만들었사옵니다.

왕: 워크플로? 그것이 무엇이냐?

갑: 절차서(節次書)와 같은 것이옵니다. 인공지한테 시킬 일들을 미리 정해놓고, 순서대로 알아서 하게 만든 것이옵니다.


왕: 어떤 것을 만들었느냐?

을: 코드를 짜고, 실행하고, 에러가 나면 고치고, 다시 실행하고...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옵니다.

을: 이제 소인들은 처음에 시키고, 마지막에 결과만 확인하면 되옵니다.

왕: 오호!


[워크플로 탄생 과정]


왕: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느냐?

을: 전하, 지난주에 "찾아보라" 하셨사옵니다.

을: 소인이 에러 긁어다 붙이는 게 귀찮아서 찾아봤사옵니다.

을: 근데 딱 맞는 게 없었사옵니다.


갑: 그래서 소인이 물었사옵니다. "그것도 인공지한테 시키면 안 돼?"라고.

을: 물어보니 된다 하였사옵니다.


왕: 오...

을: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사옵니다.

왕: 무엇이냐?

을: 브라우저(瀏覽器)에서 나는 에러는 인공지가 못 본다 하였사옵니다.


왕: 그래서?

을: 소인은 "그건 어쩔 수 없지" 했사옵니다.

갑: 소인이 또 물었사옵니다. "다른 방법 없어?"라고.


왕: 인공지가 뭐라 하더냐?

갑: 파라이라이특(播羅以來特)이라는 것이 있다 하였사옵니다.

왕: 파라이라이특?

갑: 자동으로 브라우저를 띄우고, 화면을 확인하고, 에러가 나면 그것을 잡아낼 수 있는 도구라 하였사옵니다.


을: (아직도 놀란 표정) 그런 게 있었사옵니다, 전하!

을: 소인은 이 년이나 일했는데 몰랐사옵니다.


[병의 침묵]


왕: (병을 바라보며) 병, 그대는 이것을 알았느냐?


병: (잠시 침묵)

병: 전하, 파라이라이특은 알고 있었사옵니다.

왕: 알고 있었다?

병: 그러하옵니다. 듣자마자 알겠사옵니다. 그것으로 되겠다는 것도.


왕: 그런데?

병: ...그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못 했사옵니다.

병: 소인도 매번 에러를 긁어다 붙였사옵니다.

병: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사옵니다.


왕: 알면서도 쓸 생각을 못 했다?

병: 그러하옵니다, 전하.


[병의 깨달음]


병: (쓴웃음) 전하, 소인이 부끄럽사옵니다.

왕: 왜 그러느냐?


병: 소인이 아까 전하께 아뢰었사옵니다.

병: "능동적인 게으름", "인공지는 욕망이 없다", "시키지 않으면 안 한다"...

병: 다 아뢰었사옵니다.


병: 그런데 정작 소인은...

병: 행하지 못했사옵니다.


왕: (고개를 끄덕이며) 과인도 그것이 이상했다.


[왕의 통찰: 지행합일]


왕: 과인이 오늘 이상한 것을 보았다.


왕: 병은 알았다.

왕: "능동적인 게으름", "시키지 않으면 안 한다"... 다 알았다.

왕: 그런데 행하지 못했다.


왕: 갑과 을은 몰랐다.

왕: 그런데 물어보고, 해봤다.


왕: 더 멀리 간 것은 갑과 을이로구나.


영의정: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왕: 그렇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왕: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왜 그랬을까?]


왕: 병, 왜 그랬느냐? 왜 찾아볼 생각을 못 했느냐?


병: (잠시 생각하다가) 전하, 소인은 아는 것을 시켰사옵니다.

왕: 무슨 말이냐?


병: 테스트 코드 짜라. 이건 소인이 아는 것이옵니다.

병: 소인이 알고 있으니, 시킬 수 있었사옵니다.


병: 갑과 을은 몰랐사옵니다.

병: 그래서 물어봤사옵니다.

병: "이것도 시키면 안 돼?", "다른 방법 없어?"


왕: 아는 자는 아는 만큼 시키고, 모르는 자는 모르니까 물어본다?

병: 그러하옵니다.


좌의정: 아는 것이 오히려 벽이 된 것이로군요.

병: (고개를 숙이며) 그러하옵니다.


[많이 알수록]


왕: 그러면 많이 아는 것이 나쁜 것이냐?


병: 아니옵니다, 전하.

병: 많이 알수록 갇히기 쉽사옵니다.

병: 그러나...


병: 많이 알수록 탈출하기도 쉽사옵니다.


왕: 무슨 말이냐?


병: 소인이 오늘 깨달았사옵니다.

병: "나도 갇혀있었구나"라고.


병: 갑과 을은 아직 그것을 모르옵니다.

병: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옵니다.

병: 그냥 물어봤을 뿐이옵니다.


병: 소인은 알기에 깨달은 것이옵니다.

병: "아, 내가 이런 데서 막혀있었구나"라고.


영의정: 알아야 갇힌 줄도 알고, 알아야 탈출도 한다?

병: 그러하옵니다.


왕: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말이다.

왕: 모르는 자는 우연히 벽을 넘고, 아는 자는 벽이 있는 줄 알고 넘는다.


[부지런함의 방향 전환]


왕: 그러면 부지런함은 쓸모없는 것이냐?


병: 아니옵니다, 전하.

병: 부지런함의 방향이 바뀐 것이옵니다.


왕: 방향?


병: 예전에는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했사옵니다.

병: 코드를 많이 치고, 작업을 많이 하고.


병: 지금은 머리를 부지런히 굴려야 하옵니다.

병: 불편함을 느끼고, 해결책을 찾고, 방향을 잡고, 확인하고.


왕: 손은?

병: 손은 인공지가 대신하옵니다.

병: 사람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부지런해야 하옵니다.


[왕의 결론]


왕: 오늘의 깨달음을 정리하겠다.


왕: 첫째,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왕: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


왕: 둘째, 아는 자는 아는 만큼 시키고, 모르는 자는 모르니까 물어본다.

왕: 물어보는 것이 오히려 더 멀리 갈 수 있다.


왕: 셋째, 많이 알수록 갇히기 쉽다. 그러나 많이 알수록 탈출하기도 쉽다.

왕: 알아야 갇힌 줄 알고, 알아야 탈출도 한다.


왕: 넷째, 게으름뱅이는 두 종류다.

왕: 수동적 게으름뱅이는 불편해도 참는다. 능동적 게으름뱅이는 불편하면 해결한다.


왕: 다섯째, 인공지는 욕망이 없다.

왕: 사람의 욕망만큼만 움직인다. 사람이 욕심을 가지고 부려야 한다.


왕: 여섯째, 최악의 조합은 수동적인 사람과 인공지다.

왕: 둘 다 먼저 안 한다. 최고의 조합은 능동적인 사람과 인공지다.


왕: 일곱째, 부지런함의 방향이 바뀌었다.

왕: 손의 부지런함에서 머리의 부지런함으로.


왕: 이것을 기록하라.

영의정·좌의정: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마무리]


좌의정: 부지런함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겠사옵니다.

영의정: 인재를 보는 눈도 달라져야겠사옵니다.


왕: (갑과 을을 바라보며) 갑, 을.

갑·을: 예, 전하.

왕: 오늘 그대들이 스승을 가르쳤다. 잘했다.

갑: (당황하며) 전하, 소인들은 그저 물어봤을 뿐이옵니다.

왕: 그 "물어봤을 뿐"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왕: (병을 바라보며) 병.

병: 예, 전하.

왕: 오늘 그대가 겸손했다. 그것도 잘한 것이다.

병: 황송하옵니다, 전하.


왕: 다음 칠일 후에 다시 보겠다.


[막 내림]


- 제5화 끝 -

다음 화: 제6화 - 인공지어(人工智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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