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2024.09.23 자 끄적끄적...
이번 TIL 작성은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나, 인생의 배운점을 작성한다.
나는 사실 살이 꽤 많이 쪄서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운동을 하러 가기가 괜시리 버겁고 멀게만 느껴진다.
아니 사실 운동 말고 더 재밌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운동할 시간이면 운동보다 더 재밌는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은 꽤나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늘 하기로 생각하던 달리기를 하였다.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오래전부터 아프던 발바닥을 지압해주고, 밑창이 푹신한 크록스를 신고 집을 나왔다.
강릉원주대 운동장은 한 바퀴에 400m,
나는 군인시절 1.5km를 뛰던 경험을 생각하며 3바퀴 반을 목표로 잡았다.
처음 반 바퀴 뛰며 드는 생각은 기분 좋다. 였다.
오랜만의 기분좋은 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움직이는 감각에 즐거웠다.
4분의 3바퀴 뛰며 든 생각은 이거 페이스 조절을 해야되지 않나? 이대로 계속 뛰면 금방 지칠 것 같은데 속도를 조금 줄여야 되나? 였다.
무릎도 안 좋고 체중도 3자리기 때문에 완주를 위해 내 다리와 페이스를 생각하며 속도를 줄였다.
1바퀴를 도며 드는 생각은 이제 한 바퀴야? 였다.
3바퀴를 더 돌아야 된다고?(사실 4바퀴를 딱 맞추자는 생각도 있었다) 라는 생각에 굉장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 머리가 목표에 겁을 먹었고, 포기하고 싶어했고, 몸은 점차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실제로 무겁긴 하다)
나는 막 입대하여 훈련소에 들어갔을 적을 떠올렸다.
지금의 나는 105kg, 그때의 나는 107kg이었다. 내 인생 최고 전성기 몸무게라고 할 수 있다.
배는 임산부처럼 나오고 얼굴은 퉁퉁하고 음......뭐 그랬다.
아무튼 각설하고 그때 처음 달린 아침 1.5km달리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는 '군대가면 알아서 살 빠지겠지'와 '군대에서 몸이라도 만들고 나오자' 라는 생각으로 입대를 하여 어느정도의 각오와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1.5km의 달리기는 정말 어려웠다.
열 맞춰 앞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맞춰서 뛰어야 하는데, 점점 나는 행열의 뒤로 빠지게 됐다.
여러사람들이 뒤쳐졌고, 걸어가며 정해진 목표보다 먼저 복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뜀을 포기하지 않았다.
걷는 것보다 느릴지라도, 나는 뛰었다.
지금 포기하면 내일도, 모레도 포기할 테니까.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뛰었다.
나는 맨 꼴지로 연병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는 뿌듯했다.
나는 걸어가는 사람들을 제쳐서, 쉬지않고 뛰어서 도착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돌아와서 지금보다 무겁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뜀을 계속했다.
그 시절에 했던 거 이제와서 못할쏘냐.
근데 너무 힘들었다.
그 시절에는 마음의 준비와 각오도 되어있었는데 나는 그래 오늘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뛴 것에 불과했다.
그 시절에는 같이 페이스를 맞춰서 뛰는 사람들을 목표로 잡으며 그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그냥 무작정 뛰었다.
함께 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보다 뒤쳐지는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 매일 뛰어야 하니까, 나중에 자대가면 선임들이 이걸로 뭐라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부터 노력하자라는 마음도 있었다.
군대라는 압박감과 상황은 나를 뛰어가게 만들었다.
이것은 정해진 일과였다.
하지만 지금 뛰는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
잠깐 걸으면서 쉬다가 다시 뛰어도 되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다.
2바퀴만 뛸까? 3바퀴를 어떻게 뛰지? 오늘은 조금 뛰고 앞으로 뛰는 거리를 천천히 늘려가면 되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나에게 포기를 종용했다.
정말 숨이 차고, 온 몸이 삐그덕대는데 진짜 정말 포기하기 싫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원하는 게임 개발, 1인 개발도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까, 어떤 일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운동선수들은 정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문득, 몸이 더 오른쪽 왼쪽으로 쏘다니고 고개도 떨구고 싶고 더욱 더 힘들어졌을 때, 나는 생각을 멈췄다.
그때도 그랬다.
그냥 머리를 비우고 지금까지 달려온 대로 몸에 나를 맡기고 생각을 멈췄다.
그러자 이상하게 몸이 좀 더 가벼워지고 좀 더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2바퀴 반을 달리던 때였다.
그럼에도 몸은 매우 힘들어 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문득 머리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때마다 그냥 생각을 멈추고 몸을 관성적으로 움직였다.
재밌었다.
3바퀴하고 4분의 3바퀴를 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얼굴과 목이 후끈후끈 뜨겁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나는 그때 그랬던 것처럼 멈춰서 쉬지않고 걸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폐에 찬 공기가 빠르게 들락날락 하고 어깨는 들썩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입에서 불쾌한 침은 계속 나오고 숨은 안 잡히고 목도 말랐다.
물이라도 가져왔어야 됐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볍게 나온다고 카드도 안 가져 나온 게 아쉬웠다.
힘들었다.
어떻게든 호흡을 가다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나섰다.
가면서 생각했다.
그날의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
그날의 나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었다.
안전요원(조교)들이 길목마다 있었으며, 페이스 메이커 역할도 해주며 나에게 목표를 보여주었으며(저정도로 뛰어가면 된다!). 함께하는 같은 처지의 수많은 동료들도 있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도 안전을 위해 쓰러진 훈련병이 없는지 체크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법을 알려주며 안정을 취하게 도와주었으며, 챙겨온 물도 나눠주었다.
그에 반해 오늘의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달리기를 강요하는 어떤 사람도 일정도 없었다.
몇 바퀴를 뛸 지 스스로 정하고, 페이스도 스스로 지켰으며, 제시해주는 목적지나 따라갈 목표도 없었으며, 혼자였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도 안전을 위해 스스로 호흡법을 지키며 숨을 가다듬었고, 혹시 내가 쓰러지더라도 나를 도와줄 안전요원도 없었으며, 나의 갈증을 달래줄 물도 스스로 챙겨왔어야 했다.
이 때, 나는 느꼈다.
아, 이것이 인생이구나.
혼자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내 스스로가 모든 것을 정하고 따르고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구나.
목적지도 내가 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페이스도 내가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뤄야 할 중간 목표도 내가 정하고, 내 건강도 내가 챙기고, 나에 대한 보상도 내가 내리는 것이었다.
그게 혼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사람의 인생이었다.
또한, 인생을 느꼈다.
어떤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회사, 학원, 학교 등등 어느 곳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정해진 커리큘럼을 보여주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페이스를 제시하며, 중간중간 목표를 설정해주고, 미참여시 건강은 괜찮은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계속할 수 있는지 함께 걱정해주며, 목표 도달에 대한 보상도 제시하거나 보여준다.
또,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다.
어떤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어떤 목표로 이끌어 주기 위해 큰 도움을 주는 것이구나.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하는 것과 달리 모든 것을 정해서 이끌어주는 구나.
지금까진 굉장히 편한 인생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단체에만 있고 싶고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내가 설정해야 할 목표들을 설정해주고, 도와주고,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해주지만, 그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맞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들이 정한 목표가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는지, 그들의 방식이 나에게 정말 맞는 방식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검증해야 내가 성장하는 데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원하는 바를 목표에 넣기가 어렵다. 여러 사람들에 맞게 단체가 정한 커리큘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단체를 잘 정해도 그 방식과 목표가 완벽히 들어맞긴 힘들다.
나는 나 스스로 이루는 인생과 단체와 함께 이루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고 이뤄내고 일궈내는 인생이기도 하지만, 단체와 함께 살아가고 이뤄내고 일궈내는 인생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이뤄내야할 시기도 있지만, 단체가 설정한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시기도 필연적이다.
또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스스로 이뤄내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좋은 단체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홀로 이뤄낼 수 있다.
오늘 달리기를 하며, 홀로 이뤄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지난날의 다짐을 잊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보단 힘든 기억만 남을 때도 있다.
나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자 TIL 마침.
+팀스파르타는 나의 목표를 위한 좋은 단체인 것 같다.
근데 진짜 뛰다가 죽을뻔 했어요. 폐가 그렇게 날뛴 건 오랜만인듯. 흐윽 헤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