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회고 :: 가속하는 세상 속, 저전력 모드

숑숑·2026년 1월 1일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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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직하고 나서는 좀 조심스러워서 일부러 글을 안 썼었는데, 한 해를 보내는 회고는 항상 쓰게되는 것 같다.
사실 에너지가 안 났던 것도 있다. 내년엔 좀 더 글을 많이 써야지..
작년 회고처럼 올해 일어났던 사건들을 정리해서 연말결산을 해볼까 싶었지만,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았던 해라 생각 정리를 해보는 형식으로 써보려고 한다.
(썸네일은 이직 텀에 다녀왔던 하와이 호놀룰루 해변이다.)

1. 이직

첫 이직

블로그에는 처음 밝히는 내용이라 제일 먼저 언급해본다.
7월부터 카카오로 이직해서 근무 중이다.

이직 사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업무 도메인을 AI 쪽으로 변경하고 싶은게 가장 컸고, 연봉을 한번 확 올리고 싶은 것도 있었다.

전직장 회사 분위기가 그 당시 좋지 않았던 것도 없진 않았다.
(올해 희망퇴직받는 회사가 한두군데도 아니라서 뭐 대단히 특수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작년 말쯤부터 거의 혼자 한 프로젝트의 백엔드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게 장점도 있지만 난 아직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더 정립해야할 단계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회사였고 정말 많이 배웠다. 여느 IT 대기업 주니어 못지 않게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성장하기 좋은 프로젝트에 운 좋게 꽂힌 것도 있겠지만, 성장할 수 있도록 팀장님과 매니저님들께 많이 배려를 받았던 것 같다.

운이 매우 좋았다

사실 AI 서비스 쪽을 하고싶다고 해서 바로 그 쪽으로 이직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운이 많이 따라야하고, 요구되는 기술스택과 100% 일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금 밀어붙였던 것도 있는데 다행히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이직한 곳의 팀이 어떨지도 조금 걱정이 있었는데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대기업이지만 스타트업같은 면모가 더 많은 것 같고 항상 새로운 기술에 열려있는 마인드도 좋다.

안 좋은 이직 시장에서
운에 운이 겹쳐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이직을 한 것 같다.

AI 서비스에 대한 생각

주로 채팅 기반의 AI 서비스를 하는데, AI 서비스를 입체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일단 UI가 고정적이지 않고 AI의 결과에 따라서 출력되는 구조다보니 기본적으로 분기가 많고 기획 복잡도가 높다.

AI의 동작이 항상 예측한대로 돌아가주면 좋겠지만 언제나 100%는 없다. 5분 동안 계속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거고 절대 말하면 안 되는 내용을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용자의 발화와 function call, AI의 응답을 모델의 히스토리 컨텍스트로 넣어줘야하는데, 이것도 많은 고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히스토리가 어떻게 쌓이느냐에 따라서 이후 턴에서 오동작할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function call 결과를 히스토리에 넣어줄 때, 쓸데없는 내용을 포함하면 이후 할루시네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정보를 적게 제공하면 이후 사용자가 이것도 모르냐며 불평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고 기획 사항 중에 어디까지를 AI에 맡길 것인지, 어디까지를 룰기반으로 잡을 것인지 판단하는 것도 챌린징한 부분 중 하나다. 보통 AI에 맡기면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지만 확률적인 동작이 될 수 있고, 룰기반으로 잡으면 확실하지만 코드 구조를 클린하게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좀 더 정립해가는 단계인 것 같다.
올해의 성장은 내가 막 잘해졌다기보단,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걸 깨달았다는게 가장 큰 성장인 것 같다.

빠른 템포

전직장과 굉장히 비슷하다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가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원래도 스펙이 중간에 갈아엎어지고 이런 일이 잦았는데 이건 비슷하긴 하다. (그래서 한 때는 모든 개발자가 이런 식으로 일하는 줄 알았다)

그런 상황에서 놓치기 정말 쉬운게 문서화다.
개개인이 문서화를 더 신경써서 하면 된다는 말로 넘어가기 쉽지만 높은 확률로 다음에도 실패할 것이다.
사실 문서화는 생각보다 시간 많이 잡아먹기도 하고, AI를 쓴다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을 때가 많다.
그 긴 컨텍스트를 제공하기 위해 프롬프트를 작성하느니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문서화하는게 빠를 것 같다는 판단으로 그냥 수제로 공들여 문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건 아직도 개선점이 없을지 고민 중이다.


2. 업무 방식의 변화

일년 사이에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Claude Code, Codex 없이 살 수 없을 지경이고 항상 AI가 두세개씩 돌아가고 있다.
점심시간 전에 실행해놓고 밥먹고 와서 검사하는게 일상이 되었다.
생산성은 이전과 비교불가 수준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과제라고 느낀게 몇가지 있다.

기존 패턴에 대한 의문

세상엔 디자인 패턴이 여러가지가 있고, 사람마다 코드 스타일도 미묘하게 조금씩 다르다.
물론 지향점은 모든 개발자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일정한 성능 바운더리 내에서 가독성이 좋고 유지보수하기 좋은 코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가들의 여러가지 방법론이 나와있는데, 이게 지금은 얼마나 유효할까? 란 생각을 했다.

왜냐면 앞으로 코드를 인지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AI가 주가된다면, 가독성을 사람 입장에서 판단하는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다.
예전에 그런 말이 돈 적이 있었다.

주석은 가능한 적은게 좋다. 주석이 없어도 될 정도로 코드가 가독성이 좋아야한다.

라는건데 개인적으론 동의하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AI한테는 어떨까? 싶다.

물론 큰 차이는 없을거라 생각한다.
AI도 사람이 정의한 디자인 패턴을 학습했을테고 그에 따라서 코드를 해석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론적인 구조를 지키면 AI를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패턴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여러 오동작을 할 수 있을거 같긴 하다.
예를 들어 DDD 구조라면 자기 멋대로 도메인을 판단해서 새로운 디렉토리를 만들어버리거나, 헥사고날로 되어있다면 코드가 어느 레이어에 속해야하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사소한 요구사항에 포트와 어댑터를 잔뜩 만들어놓을 수도 있다.

이걸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패턴으로 극복할 수도 있고, 기존 방법론에다가 AI 프롬프트도 같이 포함해서 각각 2.0 패턴으로 재정의될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명확한 답은 없지만 AI가 오해할 확률이 적은 구조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뭔가 대가들이 답을 줬으면 좋겠다.

쉽게쉽게 되는 것의 이면

AI를 쓰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점 중 하나인데 뭐든 쉽게쉽게 해결하려고 한다.
좀만 복잡해도 수제 코딩하는게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Claude Code를 키게 된다.

이게 생산성만 보면 좋긴 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내 손으로 코드를 짜는 감각이 둔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AI에게 먼저 물어보고 공식문서로 팩트체크를 하게 된다.
틀린 방식은 아니지만, 뭔가를 진득하게 배울려는 의지와 지구력이 사그라드는 것 같다.
게을러지고 싶지 않은데 세상에 좋은 도구가 많아서 스스로를 너무 쉽게 풀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AI를 안 쓸 것이냐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AI를 쓰면서 '뭐든 쉽게 되는 것'의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AI는 빠르지만 난 느려야한다

난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커뮤니케이션을 최선의 방법으로 하지 못했을 때, 혹은 코드리뷰 올리고 나서 실수를 발견했을 때 등등 내가 조금 더 심사숙고했으면 되는 일들에 자책을 하게된다.

이게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일을 빠르게 끝내려는 태도랑 충돌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피드와 퀄리티 중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하는 태도를 장착하려고 한다.


3. 저전력 모드의 필요성

올해의 가장 큰 성장이라고 생각하는건 나 자신을 저전력 모드로 구동하는 법을 알게된 것 같다.
난 정신 에너지의 총량이 남들보다 낮은 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올해 세상이 너무 빠르게 가속하고 있어서 내가 알아야 할 지식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 에너지 관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번아웃과의 차이점

처음엔 이게 번아웃인가 싶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그걸 따라가는게 너무 재밌긴 한데 인풋이 지나치게 많아서, 내가 어디까지 유의미한 정보로 보고 받아먹어야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굳이 왜 모든걸 소화하려 하고있었지?란 생각을 했다.
모든 정보에 진심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출력을 낮추고 나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을 판단해서 거기에 에너지를 쓰기로 했다.

인간관계

저전력 모드는 업무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적용이 됐다.
올해 결론적으로는 불필요했던 인간관계들이 있었고, 상반기까지는 나도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다.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게 망설여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인간관계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다른 스트레스보다 소모량이 2배는 되는 것 같았다.
저전력 모드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런 인간관계들을 정리해냈다.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시원한 성과들 중 하나다.

내 손을 떠난 일

이건 원래 잘해왔던 것 중 하나지만 내 손을 떠난 일에 감정을 잘 소모하지 않는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만큼 에너지를 쓸데없이 많이 소모하는 일도 없다.

전직장에서 희망퇴직 기간이 있었지만, 이직처의 최종 발표가 났던 타이밍이 안 맞아서 간발의 차이로 신청을 안 했다.
그래서 당시에 주변에서 나 대신 엄청 아까워해주고 위로해줬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듣는 얘기다.)

액수를 생각하면 아까울 만 한데 사실 아깝지 않아서,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물욕이 없던가 싶어서 놀랍긴 하다.

이직에 성공할거라는 확률만 보고 퇴사를 하는건 나답지 않은 행위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내 돈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4. 감사함을 표현하자

소중한 친구가 해준 말로는 가족을 제외하고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에너지가 낮고 감정기복이 적다는 점은 나 스스로는 그렇게 맘에 드는 특징은 아니다. 되게 재미없는 사람 아닌가 싶고 그렇다. (그렇다고 이걸 고칠 생각도 없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런 이유로 나를 단단한 사람,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해석해줬다.
곱씹을 수록 고마웠고 감동이었다.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달리 생각해보고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 말고도 올해 크고작게 감사한 사람들이 유독 많다.
하지만 내가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했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내년에 가장 하고 싶은 액션 아이템 중 하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5. 내년에는

내년엔 더 인풋이 넘쳐날테니 저전력 모드를 끄지는 않을 생각이다.
대신 이 상태를 조금 더 잘 활용해보고 싶다.

  •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하기
  •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 유지하기
  •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 여행 다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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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 만들기 좋아하는 삽질 전문(...) 주니어 백엔드 개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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