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TA Paris 교환학생 08 : 프랑스에서 병원/약국 가기

LeeWonjin·2024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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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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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유학생 보험 본전을 뽑을 때가 왔다.

한국에서는 건강보험료와 실비보험비를 꼬박꼬박 내고도 병원에 가지 않는 아주 훌륭한 고객이었다. 4년동안의 방문 횟수를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병원 갈 일이 없겠거니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30만원짜리 유학생 보험을 가입하며 돈아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엥? 아픈곳이 생겨버렸다.

9월 말부터 왼쪽 중둔근에 근육통이 서서히 생겼다. 그러다가 10월 라피신을 지나며 통증이 심해졌고,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됐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내리 앉아있던 날들이 상태를 빠르게 악화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라피신이 다 끝난 11월 진통제로만 버티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결국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다.

해외에서 병원에 가야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막막함을 느끼신다면, 불어도 못하는데 내 증상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을까 걱정하신다면, 그런 걱정 말고 당장 병원에 가시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러다가 증상을 키워버렸으니까. 실상은 이렇다.

  • 병원 예약 쉽습니다. 인터넷으로 할 수 있습니다.
  • 불어를 하면 좋겠지만, 제가 만난 병원, 약국의 사람들은 영어를 매우 잘합니다. 자신들은 잘 못한다고 하지만 제가 볼땐 아주 잘합니다. 나이 지긋한 약사님도 영어를 충분히 잘 구사하십니다. 또, 불어를 못한다고 해도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들 최선을 다한다는게 제가 프랑스 보건의료인들로부터 받은 인상입니다.
  • 가격 안비쌉니다. 프랑스 의료체계를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의원 초진 가격이 26.5유로였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병을 키우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돈입니다. 이마저도 프랑스 의료보험인 ameli를 가입했다면 70%를 환급받습니다. 유학생 실비 보험이 있으면 전부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 아멜리(Ameli)가 없으신가요?

프랑스에 도착하면 주택수당APL (일명 caf)을 받기 위해 프랑스판 국민건강보험, 아멜리를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아멜리가 있으면 건강보험증과 같은 카드인 꺄흐트 비탈(carte vitale)이 발급되고, 병원이나 약국에 갈 때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지출비용의 70%인가를 계좌로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선감면 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단 청구된 비용은 다 내야 한다. 그 다음에 환급된다.

그런데 나는 caf가 되지 않는 집이었고, 그래서 caf도 신청하지 않았으니 아멜리 사회보장번호도 없었다. (나중에 글을 따로 쓰겠지만, caf가 안되는 집이라는 것은 나에게 큰 문제가 되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반드시 apl이 되는 집으로 가십시오. 당신의 비자연장에도, 집 보험 연장해지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니까요.)

전체적인 흐름

  1. 의원(클리닉)의 일반의 또는 전문의(치과 등 일부 과) 예약하기
  2. 의원 진료 및 처방 받기
  3. 처방 받은대로 이후 치료 진행

내 경우는 일반의를 통해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적는다.

일반의 예약하기

한국이라면 그냥 방문해서 바로 처리하면 될 일을, 프랑스에서는 예약을 먼저 잡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도 마찬가지. 의사를 찾아 예약부터 잡아야 진료를 볼 수 있다. 그냥 무턱대고 방문해도 오래 기다려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글도 접했는데,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의료 체계는 대충 이렇습니다.

한국에 1, 2, 3차 병원이 있듯이 프랑스도 상/하급 병원이 있다. 어딘가 아프다면 일단 의원(영어로 clinic, 불어로 Cabinet) 으로 간다. 물론 큰 종합병원으로 바로 가도 되기는 할텐데, 그 경우는 아는 바가 없다. 프랑스 사회보장보험 아멜리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분야를 일반의(Médecin généraliste)가 모두 진단한다. 일반의 진료를 보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처방을 내려준다. 상급병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일반의의 처방에서 끝날 수도 있다.

여기서 일반의의 처방은 약 처방전 뿐 아니라, 다른 전문 의원(Cabinet)으로 옮겨 치료받도록 하는 것도 포함한다. 내 경우 키네틱테라피 의원을 소개받았다. 운동 처방을 받은 셈이다. 지금도 소개받은 의원에서 운동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으로치면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의 중간 쯤에 있는 의원인데, 의사 없이 물리치료사만으로 이루어진 기관이다.

치과의 경우 일반의가 아닌 치과전문의를 바로 예약해 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병원을 모든 의료기관을 지칭할 때 쓰지만, 프랑스에서 병원(l'hopital)이라고 하면 대형병원을 의미한다. 프랑스인의 인식에 종합병원은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큰 병이 있을 때 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한 프랑스 친구는 딱 한 번 가봤다고 한다. 대부분은 의원에서 끝난다고도 덧붙였다.

Doctolib로 진료 예약(헝데부) 잡기

다행히도 오늘 날의 프랑스는 온라인 서비스가 상당히 잘 구축되어있다. 진료 예약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들어가서 회원가입 하고, 마음에 드는 병원 또는 의사를 찾아 예약하면 된다. 인기가 많은 의사는 몇 주가 지난 다음에나 슬롯이 열려있기도 하다.

검색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secteur 1이라고 적혀있는 의사들이 있다. 프랑스 의사는 섹터1, 섹터2에 속한 의사가 있는데, 섹터1은 일반적인 진료의 경우 가격이 25유로 정도로 정해져있다. 예약할 때 선결제를 하지 않는다. 진료가 끝나고 한국처럼 결제하면 된다.

예약한 뒤 Mes rendez-vous로 들어가면 예약일시와 의원으로 들어가는 방법(비밀번호, 위치 등)이 적혀있다.

일반의 진료 보기

일반의를 만나서 진료를 받기까지

예약을 했으면 의사를 만나야 한다. 근데 이게 한국인에게는 만만치 않을 수 있다. 한국의 병원은 대체로 눈에 잘 띄는 병원에 있고, 밖에 간판도 달려있다. 하지만 여기는 프랑스. 한국같은 상업용 건물이 잘 없다. 그래서 마치 사람 사는 집 같은 곳에 병원이 들어서있다. 닥토리브에서 준 지침에 따라 일단 잘 들어가 보자. 보통 공동현관을 지나 진짜 병원에 들어가려면 정말로.. 내 방의 문처럼 생긴 문 옆의 벨을 누른다. 그럼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 난 못찾아서 윗층의 다른 병원에 잘못 갔었다.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다면 이제는 한국이랑 똑같다. 접수하고, 진료보고, 결제하고, 처방받은대로 하면 된다.

나는 미리 증상을 자세히 적고 번역기로 프랑스어로 열심히 번역했다. 한/영/불어 교차검증도 미리 빡세게 해서 일단 이걸 보여줬다. 그리고 되도않는 내 영어로 열심히 내 증상을 설명했다. 그러고 나니 복약처방과 운동처방(+을 위한 다른 전문 의원 소개)을 내려줬다.

문서는 세 개를 받았다.

  • feuille de soins ausiliaire medical : 주황색의 수많은 표가 그려진 종이이다. 환자가 누구인지, 의사는 누구인지, 어떤 처방을 받았으며, 그래서 얼마가 청구되어있는지가 적혀있다. 한국의 진료확인서와 비슷하다.
  • 복약 처방전 : 한국이랑 똑같다. 이거 들고 약국가면 약 준다. 참고로 꺄흐트비탈이 있다면 이것도 일부 환급이 된다.
  • 운동 처방전 : 이것도 한국에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냥 약 처방전처럼 이 사람이 이런 운동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약국 가서 약 받기

한국이랑 똑같다. 가서 그냥 슥 내밀고 진짜 미안한데 불어 못하고 영어만 한다고 불쌍한 표정 지으면 웃으면서 잘 처리해주신다.

운동 처방 받기

내 경우는 일주일 동안 약(진통제 + 소염진통제)을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의사가 소개한 키네틱테라피 의원으로 가서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지금도 다니고 있고, 출국 직전까지 다닐 계획이다.

일반의 이후의 치료

일반의에서 문제가 해결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처럼)

그럼 다시 일반의가 소개해준 또다른 의원으로 가야한다. 이후 과정은 똑같다.

  1. 예약한다.
  2. 진료(치료)받는다.
  3. 그 다음 그 기관의 사람의 지도(처방)에 따른다.

예약 하기

닥토리브에 소개 받은 기관이 없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프랑스를 와서 놀란 점이 아주 작은 사업체라도 모두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도, 병원도, 스케이트장도 그렇다. 심지어 단기간 운영되는 이벤트라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경우 예약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작은 의원을 소개받았더라도 예약방법을 고민하지 말고 일단 홈페이지를 찾는다. 만약 없다면 전화를 하거나, 이게 부담된다면 그냥 찾아가서 말하자. 그게 더 편할테니까.

진료 받기

똑같다. 나는 키네틱 의원이라 그냥 가서 유료 PT(..고문?)받는 느낌이다.
지금 8회째 받았는데, 눈에띄게 좋아지는게 보인다.

번외 : 그냥 약국 가기

프랑스어로 약국은 빠흐마씨(pharmacie)라고 한다.
초록색 십자가나 향초같은 전광판이 있으면 보통 약국이다. 일반적으로 0층에 있고 간판도 멀쩡하게 달려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다. 일반적으로 평일에는 오후7시까지 하는데 점심시간이 있다. 주말은 약국마다 다르지만 날 밝을때는 열려있다.

약국에 간다면 대부분의 경우 감기때문일 것이다. 그냥 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받아도 되는데, 우리나라 말을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몸살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프랑스 친구는 어떤 약이 독감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딱 맞는 말이 아니었고 몸살에 오히려 가까웠다.) 그러니 성분을 알아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 아세트아미노펜 : 코로나때 먹었던 그거다. 진통제다.
  • 파라세타몰 : 아세트아미토펜이랑 똑같은거다. 유럽권에서는 다 이렇게 부른다.
  • 이부프로펜 : 이것도 아세트아미노펜처럼 진통제인데, 소염작용도 있다. 근데 아세트아미노펜이랑 같이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 나프록센(나프록센 소듐/나트륨) : 이것도 진통제인데, 작용시간이 길고 세서 근육통에 처방해준다.
  • 항히스타민제 : 콧물, 재채기같은걸 완화시켜준다. 근데 먹으면 졸리다.

프랑스에서 주로 파는 감기약은 아래와 같다.

  • 페르벡스 (Fervex) : 가루약이다. 종합감기약에 가까움. (아세트아미노펜 + 항히스타민제 + 비타민)
  • 돌리프란 : 알약. 감기약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이 주 성분. 먹으면 졸림.
  • 악티페드 : 알약. 코감기약.
  • 그리고.. 목, 기침감기약 : 이거 약국마다 주는게 다른데, 보통 끈적한 액상의 약을 준다. 먹으면 기분나쁘게 목이 코팅된다. 난 포기하고 그냥 스트랩실 먹었다.

참고로 프랑스 약국은 샴푸, 바디워시, 화장품도 파니까 간김에 하나씩 쟁여오면 기분이 좋다.

프랑스에서 병원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갔으면 좋겠다. 병원 간다고 의사가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최선을 다하고 내게 생소한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모습에 감동하게 될 테니까.

또, 돈이 몇백만원이 깨지는 것도 아니고 4만원 안쪽이면 진료를 보고 막연한 불안함을 해소할 수도 있을테니 남는 장사다. 그 돈마저도 보험으로 돌려받으면 그만이다.

내 주변 사람이 프랑스로 가서 살짝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해주고 싶은 말들을 이 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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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게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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