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요 클론코딩] 1차 프로젝트 회고록

DevOps 블로그·202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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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프로젝트를 임하는 나의 마음과 자세, 협업의 숙명...
나도 법석이나 털.. 👀 ✨

프로젝트를 임하는 나의 마음과 자세

🗓 프로젝트 기간: 12월 27일 ~ 1월 7일(12일)

🎼 구성원: 프론트엔드 3명 / 백엔드 3명 => 2명(1명 중도 포기)

내가 맡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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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프로젝트를 들어가기 전의 나의 상태는 저 위의 로빈과 다를바 없었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내가 과연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리액트가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맡은 기능을 구현하지? 나 자신의 역량에 대해서 고민과 걱정이 많았었다.

하지만 한가지 내가 별 걱정이 없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협업 능력, 팀이 매끄럽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까지의 나의 경력들이 사실상 팀으로써 일하는 것들만 해왔었기 때문이다. 해군 장교로써 일할 때도 사실상 함정을 움직이는 것, 그를 통해 작전을 수행하는 것, 미국에 있을 때도 유기적으로 테크니션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사무실 내의 직원들과도 잘 의사소통을 하면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등 일 자체가 팀으로써 움직이며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움직이게 할지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내 경험이 있다고 내가 리더로써 앞에 나서서 이끌어가는 것은 별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리더로써 나서려면 내가 충분한 역량과 지식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들에게 인정을 받을만큼 증명을 해낸 후에 그러한 리더 역할이 가능하도 생각했기에 나는 '헨리 이병 이야기'의 헨리의 역할을 이번 프로젝트에서 맡기로 스스로 생각했다.

헨리 이병 이야기는 예전에 내가 대학생 때 들었던 사설 인문학 교육캠프에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어느 전투에서 매우 불리한 전황 속에서 이긴 사례가 있는데, 그 때 그 전투에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들이 승리를 할 수 있있던 이유는 헨리 아병이었다고 한 것이다. 이병은 군대 계급 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다.
헨리는 취식/보급담당이었는데, 항상 음식을 나눠줄 때마다 사람들에게 격려와 칭찬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먼저 베풀고 인사하던 병이었다고 한다. 그의 그러한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극한의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였다.

🪖 스스로 세운 나만의 개인적 프로젝트 목표, 팀의 이병 헨리가 되자!
이번 프로젝트에서 비록 기술적인 나의 미숙함 덕분에 팀에 기술적으로는 큰 보탬이 될 수 없겠지만, 팀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 그리고 팀원들이 맡기 싫어하는 자잘한 일들을 내가 먼저 나서서 맡아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내가 맡은 기능적인 역할도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위의 기능들 뿐만 아니라 장바구니 페이지, 결재 페이지 또한 구현하려고 했으나 멘토님과 상담을 했을 때 우선 장바구니까지만을 목표로 해보자고 하셨다.(그러나 프로젝트 말에 결국 시간 부족으로 장바구니도 빼게 되었다.)
리액트를 배우기 시작한지 1주일 정도 되었지만 여전히 자바스크립트와 다른 문법과 개념 등에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멘토님께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구헀었다. 그 때 멘토님께서 여러가지 조언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팀의 목표를 구현해보려고 해봐라고 조언을 받았는데, 그 조언이 꽤 나에게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리액트 강의를 유튜브에서 다 뒤져보고 다시 보면서 보는대로 기능을 직접 구현을 해보면서 1시간을 고민해도 안되면 동기나 멘토 분께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어디까지 찾아보았고 구현을 하다 막현는지를 설명드리고 도움을 요청하니 항상 동기나 멘토 분들이 맥을 잡아주면서 가르쳐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우리 팀이 선택한 협업 방식
우리 팀은 화면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백엔드를 포함해서 전 팀원이 함께 화면구성부터 데이터 모델링까지 짜는 식으로 다같이 중요 결정사항에는 다같이 참여해서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했다. 그래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서 시각적으로는 와이어프레임(Wire-Frame / Tool: Kakao Oven)을 작성하였다.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의 구현 목표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각자 현재 맡은 업무들의 구체적인 진행상황을 한 눈에 신문 읽듯이 파악할 수 있도록 트렐로를 사용하였다. 각자 프론트/백엔드로 나눴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레이블 색을 지정하였고 나는 핑크색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매일 데일리 미팅을 하지만 중간중간에 다른 사람이 어디까지 했고,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매일 매일 데일리 미팅을 하고 스프린트(1주일) 주기로 회고록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상호간의 진행상황과 Blocker들을 공유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갔다.

🔥 내가 놓친 실수
그런데 내가 한가지 실수를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엔드 분과 의사소통도 없이 내가 프론트 단에서 Mock Data를 만들어서 정렬 기능 등을 처리하는 코드를 짜고 있었던 것이다. 백엔드 분들도 처음이다 보니, 데이터 모델링 등을 짜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시간이 좀 걸려서 일단 내가 진행한 점도 있었다. 물론 그 경험 또한 내가 리액트를 공부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긴 하였지만 쿼리 스트링(Query String)으로 코드를 짜는 것을 빨리 들어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들어간 던 점이 나의 실수였다. 그것을 2주차 화요일에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장바구니 페이지를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 마주친 역경/어려운 점들
그리고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불어 닥쳤다. 우선 팀적인 역경으로는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역경은 코로나(Covid-19)였다. 팀원 중 한 분이 많이 아프셔서 혹시나 몰라서 PCR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나와버렸다. 그래서 위코드 자체가 비상이 터져버렸다. 모든 사람이 재택근무로 전환이 되고 전부 다 PCR 검사를 의무적으로 해야했다. 특히 우리 팀원 같은 경우에는 밀접접촉자로 분류가 되어서 2차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위코드의 최대의 장점은 오프라인 수업인데, 갑자기 재택으로 돌아가다보니 집중도가 확실히 떨어지긴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두 번째 역경도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백엔드 팀원 분의 이탈이었다. 특히 그 분은 사실상 우리 팀의 백엔드 에이스 같은 분이셨다. 한국 대학과, 뉴질랜드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셨고 잘하시던 분이셨는데, 하다보니 적성에 안맞다고 프로젝트 도중에 그만두셨고 그분은 나와 같이 식당 목록 페이지를 담당하신 분이셨다. 팀의 2차 멘붕이 오게 되었다.

🥇 개인적인 역경, 합격 메일
개인적으로 마주한 역경은 바로 합격 메일이었다. 이 합격은 개발자로써 합격이 아니라, Business Development 직책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된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채용 조건도 괜찮고 회사도 나름 괜찮은 회사였다. 창업 경진대회에 나가서 우승함으로써 대기업으로부터 10억원을 투자받고 급격하게 성장을 해가는 회사였다. 나에게 제시한 조건 또한 연봉 4500만원에 스톡옵션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직무 또한 내가 하던 일과 결이 비슷한 일이라 적응도 금방인 직책이었다. 너무나도 큰 유혹이 되었다. 개발자로써 나에게 재능이 없는 거 같고, 팀 상황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팀이 엉망인 상황에 나까지 나가면 팀은 완전히 엉망이 되고, 나 또한 한 번 이 길로 나아가길 결심을 하였는데, 이렇게 힘들다고 그만두는 것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국 도망친 이 경험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다시 알게되었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이 좋다면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팀원들과 위코드 동기들의 곁에서 아직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죄송스럽게도 합류 거절 메일을 보냈다. 그렇지만 개발로 인해서 낮아진 나의 자존감이, 내가 이전까지 해온 일들이 그래도 누군가에는 인정 받을만한 일이었구나를 느끼며, 약간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 팀의 헨리 이병으로써 한 것들
많은 상황들이 어그러졌고 팀원들도 많이 힘들어 했지만, 다행히 우림 팀원들은 전원 음성이 나왔고 오프라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팀원들을 사기를 돋볻기 위해서 간식과 에너지 드링크들을 매일 같이 사비로 사와서 나눠주었다. 물론 단순히 간식을 나눠준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힘들어 하는 시간에 단 것을 제공함으로써 힘이 조금이라도 전환되길 바라며 그렇게 거의 매일같이 하였다.
그리고 또한 팀원들이 맡기 꺼려하는 일들인 회의록 작성과 중간 발표하기, 최종일 발표자료 만들기 등의 역할 또한 내가 먼저 나서서 맡았다. 그렇게 나는 비록 팀의 중심은 되지 못하겠지만, 1인분의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써 역할을 하면서 팀의 윤할유 같은 역할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갔다.

🌈 성장 포인트
그 과정에서 스스로 구글링을 하면서 답을 찾는 능력이 많이 올라갔음을 나도 느꼈고 멘토님과 다른 팀원 분들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씀들을 해주셨다. 또한 우리가 결국 여러가지 역경을 마주하면서 너무나도 각자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팀원들 또한 서로 간에 짜증내거나 질책하기 보다는 각자 배려를 하면서 저마다의 페이스대로 완주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우리 팀만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우리의 팀명이 위해요(WEHAEYO)인데, 정말 팀명대로 서로 간에 위해주는 팀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끝끝내 우리 팀은 수많은 역경들을 이겨내고 저마다의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내면서 결국 요기요 클론코딩을 해낸 경험 자체가 너무나도 뜻 깊은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술적으로도 성장을 많이 하였지만 무엇보다 팀의 이병 헨리 역할 또한 해내면서 결국 우리 팀이 코로나와 팀원의 중간 이탈 등을 넘어서면서 팀의 목표를 무사히 완수한 것에 일조를 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도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프로젝트였다.

🎉 결과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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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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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엔지니어를 향해 살아가는, 공부하는 기록들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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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9일

감동이네여!!! 응원하겠습니다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