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17 묵상

만사·2020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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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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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15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1만 명의 선생이 있더라도 정작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16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따라 행하십시오.
17 이를 위해 나는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 생활 방식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
18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교만해졌습니다.
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여러분에게 속히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20 이는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21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내가 매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면 좋겠습니까?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면 좋겠습니까?
(고전4:14-21, 우리말성경)

오늘 본문의 소제목은 <바울의 호소와 권면> 이다.
먼저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하는 호소와 권면은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훈계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어제 묵상한 본문 막바지에도 비슷한 말씀을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들같이 맨 끝자리에 두셨으니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고전4:9, 우리말성경)

9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끝자리에 두셨다는 의미 역시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있다.” 스스로 높아지고, 돋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동반한 낮아짐이 있기에 바울 사도의 호소 서두에 “절대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여러분에게 속히 가서 그 교만해진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멈춰섬의 능력”
우리가 기도할 때, 간절히 소망할 때면 늘 나아가기 원하는 방향과 목적이 있기에 그것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 오늘 본문 19절에 바울 사도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씀한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이라는 말은 멈춰서는 것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하시면 이라는 찬양 가사 중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내가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주님의 뜻, 즉 주님이 허락하셔서 나아갈 때 능력이 있고 허락하시지 않으셔서 멈춰 있다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삶을 살며 참 멈춰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COVID19 로 인해 두달 넘게 시간이 멈춘 듯이 흐르고 있다. 너무나 힘든시간이다. 하지만 이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속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뭔가가 이루어 질 것 같은 마음은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음에도 능력과 은혜가 넘친다.

20 이는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의 의미를 조금 풀어보면, “오늘 내가 선 자리가 천국이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디모데를 보냈다. 그 이유는

16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따라 행하십시오.
17 이를 위해 나는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그가 여러분에게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 생활 방식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내 “생활 방식”을 생각나게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은, 너무나도 실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저 말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하지 않는 삶이 아닌, 멈춰있는 것만 같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천국을 살아내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나를 따라 행해라” 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실력이나 지혜를 따르라는 말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만 알아,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에 정성과 열심을 다 하라는 말이다. 나를 따라 행하라는 의미는 “너는 왜 못해? 너는 왜 못났어?” 이런 뜻으로 교훈을 준 것이 아니라, 바울이 실패한 자리, 몰랐던 자리에서 “날” 지키신 하나님과 그런 실패한 자리에서도 모든 것을 은혜로 만드신 하나님과 함께 하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바울 사도의 생활 방식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의 생활 방식은 하나님을 알기에 전심을 다해야 하며,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울이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지 늘 깨어 순종해야 하며, 그 순종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삶을 살기에 부단히 애써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며 기도 응답을 원하면서 이 세상과 구별돼야 한다는 말에는 침묵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 말씀과 십자가는 오늘도 내가 주님 앞에 응답하기를 원하신다. 주님 앞에 순종하며 구별된 생활 방식을 살아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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