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4 묵상

만사·2020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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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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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주님께서 처녀들에 대해서 하신 명령을, 나로서는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합니다.
26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아내에게 매였으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결혼한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처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림살이로 몸이 고달플 것이므로, 내가 아껴서 말해 주는 것입니다.
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32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33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 일에 마음을 쓰게 되므로,
34 마음이 나뉘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나 처녀는,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려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 일에 마음을 씁니다.
35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을 유익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36 어떤 이가 결혼을 단념하는 것이 자기의 약혼녀에게 온당하게 대하는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면, 더구나 애정이 강렬하여 꼭 결혼을 해야겠으면, 그는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십시오. 결혼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그런 사람들은 결혼하십시오.
37 그러나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람이, 부득이한 일도 없고, 또 자기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서, 자기 약혼녀를 처녀로 그대로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으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38 그러므로, 자기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39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주님 안에서만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40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7:25-40, 새번역)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당시 문화, 고린도교회 공동체가 어떤 문화을 받아들이고 있었는가를 잘 분별해야 한다. 우선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던 고린도교회에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졌던 성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정신이 육체보다 고귀하니 정신만 잘 차리면 육체는 무엇을 하든 책임이 없다.” 라는 사고를 갖고 음행을 대수롭지 않게 저지른다던가, “정신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 라는 사고를 갖고 금욕주의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문화가 자리 잡은 고린도교회에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본문 초반 말씀 25-26절

주님께서 처녀들에 대해서 하신 명령을, 나로서는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합니다.
26 지금 닥쳐오는 재난 때문에, 사람이 현재 상태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말씀을 요약하면, 닥쳐오는 재난이 크나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한다. 이전 묵상에서도 반복했지만 텍스트 그대로 결혼은 하지 마라, 결혼을 해라 하는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의미의 말씀인지 묵상해본다.

이 이후에 잠깐 결혼생활에 대한, 그리고 시집, 장가에 대한 언급을 하지만 결론은 고달플 것이라는 것이다. 결혼이 죄는 아니지만 살림살이에 몸이 고달프다니. 고달픔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32 나는 여러분이 염려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29절 이하의 말씀에서 “고달픔”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울 사도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나는 아내가 없어서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실체인 “아내, 남편”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해해야한다.
그 이후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A는 B하고> 와 같은 문장패턴을 사용하고 있지만, 중요한건 A,B 모두 31절에서 말하는 “세상의 형태” 라는 것이다. 만약 A부분에 모두 땅의 것, B 부분에 모두 위의 것(하나남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라면 모를까 A,B 의 정의가 애매모호하며 섞여있다.

32절 이하 말씀은 세상의 형태를 따랐을 때의 상태, 즉 눈에 보이는 실체를 쫓은 사람의 상태를 상세하게 말씀한다. 키워드만 보자면, 염려, 세상 일에 마음씀, 헛갈림, 아내,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한 마음. 이 모든 것이 세상의 형태이다. 그 반대로 세상의 형태가 아닌 그 반대 개념인 “세상의 형태가 아닌 것”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을 쫓는 사람의 형태에 대해서는, 거룩,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씀, 품위 있는 삶,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마음 등이 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품위” 이다. 나머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에 쉽게 이해가 되지만, 품위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품위라는 단어가 들어간 본문의 문장을 보면

여러분이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문장으로 보니 이해가 된다. 우선 품위라는 단어를 일상속에서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왕족이 교육을 받을 때 품위를 지키라, 체통을 지키라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보통 불의를 참지 못한 왕자가 법을 어기고 정의구현을 하려고 할 때 쓰이는 클리셰인데... 체통의 뜻이 참 와닿는데, “지체나 신분에 맞는 체면” 이라는 뜻이다. 품위를 지키라는 뜻은 곧,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맞는 체면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사극의 뻔한 클리셰 어쩌면 성경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 그 죄 한 가운데로 들어가 그리스도인의 품위, 체통을 지키며 오직 하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한 이들. 아마 많이도 헷갈렸을테다. 힘든데..? 두려운데..? 그런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세상의 형태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품위가 아닌 영의 품위를 갖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말씀이다.

그럼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위에서 말한 A,B 둘 둥 하나에 이미 속하고 있다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내내 이야기 하는 가치가 그 이후 본문에 나온다.

39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주님 안에서만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40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는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이든 결혼이든 재혼이든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라는 기초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40절 말씀은 아마 이 본문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본인의 의견을 섞은게 아닌가 싶지만 결국 이 답변도 본문 초반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함이다. 왜냐면 바울 사도 자신이 혼자 지내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내 주변에 결혼에 대해 안좋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바울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당당함과 같은 “결혼하니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하십시오.” 라고 말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난 그러고 싶다는 것이다...여하튼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깊게 묵상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이 말씀을 한 상황은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6-17)

낙심이 되려는 상황, 겉사람이 낡아지는 상황, 환난이 닥친 상황이다. 사람이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나? 냉정하게 말하면 난 3가지 상황 모두를 체감하고 있다. 근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상황은 가벼운 것이다. 이 상황을 애써 피할 것도, 숨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주고 산 나다. 더 당당해야한다. 품위를 체통을 지켜야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은 절대 가볍지 않다. 무려..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이 말을 묵상하는데 아마 세상의 언어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말이기에 저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다. 세상에 언어로도 존재하지 않고 형체로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영광이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을 믿으며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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