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5 묵상

만사·2020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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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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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8:1-9)

정신을 육체보다 중하게 여기던 문화에 젖은 고린도교회에 바울 사도는 “꾸며낸 경건과 겸손을 하지 말아라.” 는 말씀을 한다. 오늘 본문은 그렇다면 육체가 아닌 정신, 지식으로는 잘 섬기고 있나? 를 말씀하는 본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는 타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육체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던 자들에게 정신, 지식 역시 올바른 가치를 추구할 수 없을 것이다.

7장 본문의 내용의 연장선으로 “세상의 형태”가 나오는데 “우상제물을 먹는 것 vs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1-2절 말씀을 보면,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우상의 제물을 “지식 vs 사랑” 으로 말씀한다. 먼저 우상제물을 거부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 말씀을 묵상하며 시작한다. 이 묵상이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8 다니엘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9 하나님은 다니엘이 환관장에게서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주셨다.
(단1:8-9, 새번역)

이 당시 문화를 정말 어려웠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이름도 바꾸어야 했고, 이 당시 문화로 육류를 먹는다는 의미는 우상에게 받쳐진 제물을 먹는다는 의미로 여겼기 때문에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을 먹는 것은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럼 다니엘은 서두에 말한 우상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라는 세상의 형태를 따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이후 9절 말씀을 보면

9 하나님은 다니엘이 환관장에게서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주셨다.

호의와 동정이란 은혜와 긍휼이다.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렇다. 다니엘은 세상의 형태를 선택하여 쫓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해와 긍휼이 환관장에게 임하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온다. 다니엘 시대에도 있었던 문제가 고린도교회에도 그대로 존재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장 초반을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고전1:5, 새번역)

온갖 지식이 늘어날대로 늘어난 상태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우상이라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 아니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받쳐진 것이 뭐가 대수냐?” 이런 의견이 분분했고, 그 의견에 대한 바울 사도의 답변이다. 1,2절을 다시 본다.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더 자세히 이해가 된다. 애초에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우상제물을 먹냐 먹지 않냐를 넘어 그들이 가진 지식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든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씀했던 것이다. 2절은 3절과 연결하여 본다.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이건 다니엘을 깊게 생각하면 되는 말씀이다. 다니엘이 채식주의자라 왕이 내린 음식을 먹지 않은게 아니라, 하나님만을 사랑했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은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환광장에게 흘러간다. 그것이 하나님이 알아 주신 것이다.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이제 이 본문을 텍스트 그대로 받아 들이기 보다는,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봐야한다. “나” 가 아닌, 우상제물에 쫓기는 모든 이에게 외쳐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최근 회사 동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서적으로 쫓기고 두려운 사람들이 종교에 쉽게 빠진다.” 뭐,, 완전 틀린 말은 아닐거다. 종교라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은 그런 이유를 가진 삶이 아니다. “나”의 정서가 안정되고 “나”가 제물에 쫓기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믿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그저 세상의 한 형태에 끼워 맞추려는 것 밖에 안된다.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사랑이 내 주위에 내가 선 자리에 넘치는 삶이어야 한다.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먹고 마시는 문제는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 나도 그렇지만 보~통 그런 문제를 갖고 염려할 때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더 잘 사는 것”에 대한 마음이 크고 “못 사는” 현실에 대한 마음이 크기 때문인데, 바울 사도는 딱 잘라서 말한다. 먹지 못한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먹지 못하든 먹든 그건 너희 자유인데, 그런 너희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자 못하는 그런 모습은 좀 피해! 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 은혜, 사랑이 가득 넘치는 것을 늘 소망하는 삶이어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두렵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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