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8 묵상

만사·2020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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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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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10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고전9:1-14, 새번역)

고린도전서 8장 까지의 내용은 고린도교회 분쟁에 대한 문제, 결혼에 대한 문제, 우상제물을 먹는 것에대한 문제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 말씀이었다. 특히 8장 마지막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희생과 내려놓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9장 본문은 “사도만 아무런 보상없이 희생과 내려놓음을 촉구 받나?” 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나는 오늘 본문에서 지난주에 묵상했던 그리스도인의 “품위”을 더 깊게 묵상할 수 있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비판하는 무리들이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1장에서는 바울파, 아볼로파 등 분파, 분쟁이 있었는데 바울 사도의 안티들이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헬라 문화를 받아 금욕주의, 음행 등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성도들에게는 바울 사도의 말씀에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일꾼의 “품위”에 대하여 말씀한다.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하였습니까?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내가 일해서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 몰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바울 사도가 서두에 1-2절과 같이 말씀한 이유을 묵상한다. 우선 고린도교회 일부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그랬던 간에,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강하게 자신의 사도됨을 두가지 이유를 들며 변호한다. 1. 나는 예수님을 본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나를 사도로 세우셨다. 2.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고린도교회가 세워졌다. 당신들이 나의 사도됨의 열매이다.
이 두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아마 3절 이하의 말씀으로 보아 고린도교회 일부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묵상하기 전에 1-2 절이 바울 사도에게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한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3:4-6)

고린도전서 초반에 묵상했던 말씀인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 즉, 사도로 부름을 받기 전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열심을 쏟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본인이 스스로 말한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며 5절 말씀의 본인 신분의 “품위”를 지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달라졌다. 7절 부터 어떻게 말하고 있나,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

7절에서 주춤하는 순간이 온다.

내게 유익한 것 ==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김

삶 속에서 내가 유익하고 생각되는게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생각하면 내게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얼마나 많은가 그게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보면 완전히 반대 의미로 다가온다는게 많은 사람을 주춤하게 만든다. 하지만 잘 분별할 것은, 바울 사도는 계속 말씀하지만, 내게 유익하고 유익하지 않은 것으로 진정한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내게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8절에서 말하듯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내가 유익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쓰레기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다. 바울 사도가 특별하고 실력이 좋아서가 아닌, 9절 말씀처럼 “그 안에서 발견하려 함”이다.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려 했다. 나의 삶 구석구석을 모두 주님 안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려고 했던 바울 사도이다. 그 구체적인 예는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8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11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저 먹고 마실 권리를 넘어 하나님 안에서 먹고 마시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먹고 마시냐의 차이다. 영적인 것을 뿌려 물질적인 것으로 뿌리는 것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거두느냐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거두느냐의 처이다. 하지만 어제 묵상 때도 나눴듯, 먹고 마시는 것과 물질을 거두는 것이 “나”의 잘 됨과 “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라면 분명 많은 생각, 욕망, 혈기가 섞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바울 사도는 “내”가 가진 그 권리를 쓰지 않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쓴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자 않도록” 모든 것을 “참는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나”를 위해 참았던 금욕주의와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참았던 “모든 것”.

모든 것이라는 표현을 고린도전서 곳곳에서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이며, 둘로 나뉘는 것은 “나를 위한 모든 것” 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 바울 사도가 참았던 것은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참은 것이다. 그것을 어찌 구별하고 살아낼 수 있냐 하는 것은 위 본문에서 말씀한 “그 안에서 발견함” 뿐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딱 붙어있어야 한다. 떨어지면 안된다. 동행하며 정성과 열심을 드리며 주님과 승리하는 하루를 보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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