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9 묵상

만사·2020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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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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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고전9:15-18, 새번역)

오늘 본문 말씀은 어제 묵상의 연장으로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행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15절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는 “이런 권리”는 “나를 위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권리를 원하지도 않고 그것을 원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만 묵상하면 엄청난 헌신과 결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보면 너무 극단적인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전9:14)

15절의 바울 사도의 말씀의 뜻은 “이런 권리들은 희생과 내려놓음이 있어야 하니 포기해!” 라는 식의 말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자의 본문을 위해, 복음 전함을 위해 때에 따라 헌신해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복음 전함을 위해 때에 따라 헌신해야 할 것은 비단 “나를 위한 모든 것”과 15절에서 말씀한 “이런 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이후 말씀은 하나님의 모든 것에 대한 말씀이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몇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나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둘째.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한다.
셋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친다.

나도 그랬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아마 멘붕이 왔을 것이다. 고린도에 복음 전파를 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이 하는 말이다. 고린도교회의 복음은 세상 문화와 “나의 모든 것이”충돌하는 그런 교회였다. 바울 사도 당신의 마음을 외친 것이기도 하지만, 고린도교회에 다시 복음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하는 저가 자진해서 복음을 전하면 삯이 있는데 그 삯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을 좀 해석하자면

“내 보상은 내가 한 일에 대하여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음을 담고 가고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사명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품위이자 체통이다.!” 하는 것과 같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일을 하면 당연히 삯을 받아야 한다. 1절 부터 묵상해온 세상의 형태로 생각해보자면 일을 해서 “삯을 받음 vs 삯을 받지 않음” 이라고 생각하고 삯을 받든 받지 않든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오늘 바울 사도가 하고싶은 말은 아니다. 여기서의 일은 복음 전함이다. 그리고 삯은 내가 그 복음을 담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거나 자진해서 하지 않으면 그 삯인 “내가 복음을 담고 있구나.” 느끼지 못한다. 그 반대로 기쁘게 전하는 사람은 “복음을 담은 자신”을 느끼며 감사하게 된다.
복음 전하는데 따르는 나의 권리를 그대로 이용하게 되면 나의 생각, 나의 자랑 등이 섞이게 된다. 마치 고린도 교회처럼. 복음 전함은 A와 B 무엇을 선택하든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면 된다. 라는 세상의 형태가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 오늘도 예수님과 동행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사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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