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6 묵상

만사·2020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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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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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1:26-31)

오늘 본문 역시 고린도교회에 분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게 최선이 아니라, 분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어떻게 그 상황을 하나님의 뜻대로 감수하며 선을 이루어 갈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말씀이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6절 바울의 말씀은 유익을 쫓아 자신이 “필요”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고린도교회에 전하는 탄식이다. 성경 전반적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고린도전서 1장 초반에 나오는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전1:5)” 이 말씀을 마음에 꼭 새겨야 한다. 고린도교회는 말씀을 아는 모든 지식에 풍족하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말씀을 아는데, 삶에 필요한 것은 육체를 따라 지혜를 쫓고, 능하기를 원하고 문벌이 좋기를 원한다. 각자 필요한 지혜와 문벌이 다르기 때문에 말씀을 알았어도 분쟁이 생겼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영혼의 왜곡이 생겨나고 정말 힘들어진다. 나도 요즘 더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다. 삶의 한절이라도 주님을 닮기 원하는 마음을 더 부어주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기 원한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이 더 살기 힘든 세상에서 안그래도 연약하고 안그래도 부족한데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상황이 올까? 하는 고민이 있다. 27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약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고린도교회도 분명 그랬었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풍족해질 수 있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을 가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약하고 부족한 존재들을 들어 쓰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더 분명하고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다보면 기가 막힐 때가 있다. 예수님은 능히 하시고 남으시는 분인데, 왜 굳이 우리에게 순종할 기회를 주시는지,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시려 하심이다. 예수님이 지혜이고 예수님이 의로움이고 예수님이 거룩함과 구원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함이다.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9:23-24)

하나님을 “아는 것”을 아는 것은 고린도교회가 알았던 지식이 아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를 향하여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 사랑을 아는 것이고 십자가의 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예수님의 이 말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함도 아니고 이 말씀을 따르는 것에 대한 보상에 대한 이야기도 이니다. 그냥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이 내 인생을 설득시켜 주시기를 바라고 예수님이 내 인생에 보상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이 아니다. 고난주간의 시작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깊이 생각하여 그 길 걷기를 기쁨으로 순종하기를 기도하며 이 묵상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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