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 묵상

만사·2020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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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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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9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10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고전10:1-13, 새번역)

오늘 본문은 출애굽 사건 때에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본문 말씀을 시작한다. 고린도전서 8장 본문에서 우상제물을 먹었던 고린도교회인들은 본인들의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우상제물을 먹어도 어차피 없는 신이니 먹어도 된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똑같이 나타났었다. 본문 1-4절을 보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늘 보호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신령한 음식, 물을 먹고 마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가 끝이었다. 구원을 마치 본인들이 특별해서 선택받은 것처럼 여겼다. 그러니 “나의 삶, 나의 것”을 더 챙기려는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나날이 늘어갔고 결국엔 간음, 우상숭배와 같은 큰 죄를 저지른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고 결국에 광야에서 멸망하였다.

고린도교회 성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통점은, “구원 받음” 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았으니 우상제물을 먹어도 돠고 우상숭배를 해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딱 거기에서 멈췄기에 우상제물을 먹고 우상숭배를 했다.

고린도전서 8,10 장은 우상숭배에 관한 말씀인데, 9장에 뜬금없이 사도됨에 대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말은 10장 우상숭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스도인 됨과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바울 사도가 하고 싶었던 말은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구원 받은 자가 살아야 할 삶이 있다.” 는 것이다. 이런 말을 많이 보고 들어봤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건 “머리로 <-> 마음으로” 가 아니다. 구원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내가 그 길을 건넜다고, 내가 특별한게 아니고 구원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 홍해를 건너며 아렇게 생각했어야 했다. ‘홍해를 건너고 값없이 구원을 받은 나의 삶을 어때야 할까?’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똑같다. 우상제물, 간음, 금욕 등과 같은 분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구원 받은 자의 삶을 더 생각했어야 했다.

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부터 고린도교회를 거쳐 오늘날의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말씀이다. 구원 받음이 끝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서 있는 삶이란 구원 받은 자의 삶이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자. 출애굽 때 처럼, 고린도교회 처럼 “나의 것”을 위해 사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13절 말씀의 예를 많은 성경에서 들고 있다. 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우리 주변에도 13절 말씀의 열매가 참 많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들면, 길고 긴 광야 길에서 타는 목마름에 짜증이 난 백성들은 하나님께 물을 좀 달라고 원망한다. 그게 그렇게 큰 죄인가? 광야 길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달라는데... 중요한건 물이 아니라 목마른 자의 마음이다. 홍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늘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신뢰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하는 그 마음. 13절 말씀 끝에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 가능하다. 목이 말라도 예수님과 함께 목마르고 시련이 고달파도 예수님과 함께 고달프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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