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2 묵상

만사·2020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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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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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3:11-12]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 와 “장성한 사람”을 지난 본문 9~10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 과 같은 의미처럼 보인다.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는 나이가 어리고 덜 자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이가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 즉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장성한 사람은 그 사람이 크고 잘나서 장성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린 사람이기에 썩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대표적인 어린아이였다. 오늘 본문은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그 때에는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바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버렸다.

12절 말씀에서는 “지금은” 과 “그 때에는” 으로 구분된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무엇을 보는 것이며, 무엇을 보기에 희미하다는 말씀일까? 나는 어제 묵상했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한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2-5)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성경 말씀과 삶 속에서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천국을 바라볼 때에 조금은 희미할 수 있다. 희미하게 보인다는 뜻은, 존재는 확실하나 정체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천국의 정체는 확실하다. 다만, 사람이 불완전하기에 불확실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약1:23-24]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이 말씀을 보고 정리가 되는 것은, 사람의 불완전, 불확실성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며, 그 이유는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보더라도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온전한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을 바라고, “그 때”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닌 “지금”에 얽매여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십자가를 바라보자. 그 뿐이다.# 2020/5/22 묵상
[고전13:11-12]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 와 “장성한 사람”을 지난 본문 9~10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 과 같은 의미처럼 보인다.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어린아이는 나이가 어리고 덜 자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이가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 즉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장성한 사람은 그 사람이 크고 잘나서 장성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린 사람이기에 썩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대표적인 어린아이였다. 오늘 본문은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그 때에는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바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버렸다.

12절 말씀에서는 “지금은” 과 “그 때에는” 으로 구분된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무엇을 보는 것이며, 무엇을 보기에 희미하다는 말씀일까? 나는 어제 묵상했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한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2-5)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성경 말씀과 삶 속에서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천국을 바라볼 때에 조금은 희미할 수 있다. 희미하게 보인다는 뜻은, 존재는 확실하나 정체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천국의 정체는 확실하다. 다만, 사람이 불완전하기에 불확실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약1:23-24]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이 말씀을 보고 정리가 되는 것은, 사람의 불완전, 불확실성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며, 그 이유는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보더라도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온전한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을 바라고, “그 때”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닌 “지금”에 얽매여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십자가를 바라보자.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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