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14 묵상

만사·2020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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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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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비교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삶과 그분이 행하신 영광스러운 사역,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요한의 말이 과연 제정신으로 하는 공정한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요한 사도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도들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우리에게 지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면 가장 경건한 그리스도인도 과연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 주님의 온전한 삶을 본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리새인들의 잡다한 규칙이나 율법의 힘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그러나 절망하며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기 전에 이 말씀의 문맥을 다시금 잘 살펴봐야 한다. 요한은 불가능한 완전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우리 삶의 태도를 점검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좇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애쓰는 확실하고도 실천적인 증거가 나타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주장이 우리의 언행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가?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식하고 깊은 슬픔을 느끼는가? 그리스도를 닮기를 갈망하는가?

형을 몹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소년이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형을 닮고 싶었다. 소년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지만, 생김새와 행동거지는 둘이 형제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형을 많이 닮았다. 눈 내리던 어느 겨울 아침, 형은 농장 주위에서 늘 해오던 허드렛일을 처리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어린 동생은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형은 키가 컸고, 걸음걸이도 힘차고, 보폭도 넓었다. 눈 위에 남겨진 그의 발자국에서 어린 동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균형이 느껴졌다. 어린 동생은 형처럼 되고 싶은 열망이 몹시 강했기에 보폭을 최대한 넓혀 형이 남긴 발자국을 밟으려고 애썼다. 그는 비척거리며 몇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그가 형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린 소년은 자기 앞에 남겨진 발자국을 응시하며 굳센 각오로 그대로 따라 걸으려고 용을 썼다. 그런데 결과는 참으로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어린 소년의 노력에는 형을 닮으려는 진지한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직한 관찰자라면 잦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린 동생이 형을 닮고 싶어하는 마음과 그가 걷는 대로 걸으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선지자이자 왕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맏형이시라고 가르친다. 그분이 걸으셨던 길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형태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다는 말로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권고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잦은 실패와 실수, 연약함,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고 싶어하는 마음 그 한가지 이유가 분명하게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며, 예수님께서 손 내미시며 “함께 가자”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모든 마음을 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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