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4 묵상

만사·2020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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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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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빛 가운데 행하는가?

요한복음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요한복음 3:16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지만 그 이후 말씀은 잘 생각해내지 못한다.

[요3:17-21]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특별히 19-21절을 주목하면,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 이라고 말씀하는데, 마치 빛과 어둠이 살아있는 것처럼 말한다. 맞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시고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요한일서 초반에는 어떻게 말씀할까?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5-7).

이 말씀에서는 더 명확하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 그렇기에 빛이신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빛 가운데 행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은 하나님의 본성과 뜻을 드러낸 계시의 말씀과 일치한다.”
더 깊이 묵상할 것은,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이라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한다.

우리 삶에서 죄에 여전히 무너지고 죄책감과 정죄감에 마음 아파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놓치고 있는건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함.”,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함” 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은 빛” 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요한의 말은 그분의 도덕적인 순결만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감추어진 존재나 어둠이 아닌 빛이시다.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와 성경과 더불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원 사역을 통해 인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목격한 사도들과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하나님은 감추어진 존재가 아니셨다. 더욱이 남다른 영성을 지녔다며 사도를 자처한 몇몇 사람만 그분의 진리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다.

즉 “하나님은 빛이시다”라는 말씀은 그분의 완벽한 도덕적 성품은 물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과의 관계 및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감추지 않으신다. 그분은 은혜롭고 풍성하게 자신의 본성과 뜻을 그들에게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세상에 행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이제 빛 가운데 사는 삶에 대하여 조금은 명확해졌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다. 빛과 어둠은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양지, 음지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이 음지라고 꺼려하는 곳에서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을 위로하셨다. 하나님께 딱 붙어 그분과 함께 한다면 어둠이 낄 자리가 전혀 없다.

빛 가운데 사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빛 가운데로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수치 죄까지도 감추지 않고 전부 드러내야 한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본인의 수치와 허물이 드러나더라도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순간 순간을 감수해야한다. 인간의 본능은 빛보다 어둠에 거하기를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수시로 어둠을 찾아 들어가고 아무도 보지 않으려는 곳으로 숨기를 원한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우리는 어둠에 숨으려 하지 않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간다는 의미는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이다. 열린 우리 마음에 “빛 이신 에수님”께서 친히 찾아 오신다. 한번도 우리가 먼저 가서 나의 빛이 되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열두해 혈루병 앓은 여인이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지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살려달라 한게 아니다. 그냥 마음 문을 연 것이다. 열린 마음에 예수님께서 찾아간 것 뿐이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주님과 사귀며 동행하면서 주님을 닮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절대로 우리는 주님을 닮을 수 없다. 하지만 완전하신, 완벽하신 주님의 능력이, 그 도우심이 우리의 실력이 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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