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행성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 왕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는 것이었다. 불복종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전제 군주였다. ... 하지만 어린 왕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성은 작았다. 도대체 이 왕은 무엇을 다스리지?
작디작은 행성 속에서 다스릴 것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왕과 같이 자신의 권위가 존중받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좁고(마치 왕의 행성처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자신의 의견과 반하는 것에 참지 못하며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주위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도 왕과 같은 모습을 가질 때가 있지 않았나? 여러분은 어떤가? 소위 말하는 '꼰대'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왕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젊은 꼰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 아니던가. 세상의 중심은 항상 나 자신이었으니. 잘 모르겠다.. 어려운 것 같다….
"올바른 권위는 무엇보다도 사리를 바탕에 두어야 하느니라. ... 짐에게 복종을 요구할 권한이 있는 것은 짐의 명령이 이치에 맞기 때문이니라."
아, 정말 맞는 말이다. 전제 군주이며, 권위가 존중되는 것을 가장 신경 쓰지만 적어도 왕은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것 같다. 내가 바르다고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통솔하려면... '틀림'과 '다름'의 차이에 대해서 반드시 이해해야만 한다. 비록 왕은 다스리는 것은 작은 행성뿐이지만, 온 우주를 다스린다고 착각(?)하고 있지만(착각이 아니라면.. 와우….) 최소한의 리더의 자질은 갖추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너 자신을 심판하라. ...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렵나니. 네가 너를 올바로 심판한다면, 너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세상에! 왕은 현명함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과 같이,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메타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나 스스로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고민은 참 많이 하지만 쉬이 알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나 보다. 책 속에서는 이러한 고찰들을 책을 읽는 시간만으로도 향유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 그리고 여러분들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책을 가까이 하자.
메타인지 (meta認知, 영어: metacognition) 또는 상위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관찰 · 발견 · 통제 · 판단하는 정신 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생각에 대한 생각","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higher-order thinking skills)이다. 단어의 어원은 메타에서 왔다. 메타인지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배움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한 전략들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메타인지에는 두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다: (1) 인식에 대한 지식과 (2) 인식에 대한 규제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뜻한다.
- 메타인지, 위키백과 中
두 번째 행성에는 우쭐대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 아! 숭배자가 찾아오는군!" 어린 왕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우쭐대는 사람이 멀리서부터 외쳤다. 우쭐대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이 숭배자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우쭐대는 사람은 어린 왕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쭐대는 사람들은 칭찬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우쭐대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이 숭배자라고 한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좀 더 많이, 과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속된 말로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이런 것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적절한 자기애는 필요한 법. 다만, 지나치게 되면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찾아본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나르키소스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데, 과도한 자기애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행성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뭘 하고 있어요?" "술을 마시고 있어." "왜 술을 마셔요?" "잊으려고." "무엇을 잊으려고요?" "부끄럽다는 것을 잊으려고." "뭐가 부끄럽다는 거예요?" "술 마시는게 부끄러워!"
소위 말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가 싶다. 술이 술을 부르고, 슬픔을 부르는... 당연히 조심해야 할 인간 군상 중 하나이다. 술은 적당히 즐길 줄 아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네 번째 행성은 사업가의 것이었다. 이 사람은 어찌나 열중을 하고 있는지 어린 왕자의 방문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내 인생에서는 꿈이나 꾸고 빈둥거릴 시간이 없어."
꿈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꿈꾸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말자. 꿈은 사람을 빛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조금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꿈이 없다면.. 사람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다섯 번째 행성은 매우 이상했다. 그것은 모든 별 가운데 가장 작았다.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지기 한 명 밖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 "안녕하세요. 어째서 방금 가로등을 껐나요?" "명령이야." "무슨 명령요?" "내가 가로등을 끈다는 명령. 잘 자." ... "아무것도 이해할 게 없어" ... "저 말이에요. 쉬고 싶을 때 쉴 방법이 있어요..." "나는 언제나 쉬고 싶어." "아저씨 별은 아주 작으니까 세 걸음만 옮기면 한 바퀴를 돌아요. 항상 햇빛을 받고 싶으면 천천히 걸으면 돼요. 쉬고 싶으면 걸으세요... 그러면 낮은 원하는 만큼 길어져요.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없이 앞으로만 가게된다. 다만, 힘들어도 계속 뛰어야만 하는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러고 있는 것 같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선물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우리에게 휴식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다간 지쳐서 쓰러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곤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
여섯 번째 행성은 앞의 행성보다 열 배는 더 컸다. 거기에는 방대한 책들을 쓰는 늙은 신사가 살고 있었다. ... "넓은 바다도 있어요?" "알 수 없어" "그럼 산은요?" "알 수 없어."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리학자시잖아요!"
분명 지식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록해두었을 뿐인 지식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직접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거 아닐까? 소위 말하는 죽어 있는 지식을 쌓지 않도록 주의하자..
어린왕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는 깊이가 더해지는 책인 것 같아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콜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