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는 전혀 몰라. 바람이 날려버리거든. 그들은 뿌리가 없고, 그래서 생활이 아주 고단하지."
뿌리가 없고,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는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쪽 어딘가에선 정착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편한 상태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할 뿐이다. 마치, 죽음을 영원한 '안식'이라고 하는 것처럼. 뜬금없지만,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해있지 않을까?
'메마르고 뾰족하고 거칠고 삭막해. 그리고 도통 상상력이라고는 없어. 말을 하면 따라 하기나 하고...'
말을 하면 따라 하기나 한다고 한다. 상상력도 없고. 우리네 삶과 비슷하지 않나? 학창 시절엔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따라서) 가기 위해 달렸고, 대학에서는 남들 다 가는 직장을 (따라서) 가기 위해 달린다. 자, 이제 다음은 무엇인가? 무엇을 따라 하기 위해 우리는 결승점 없는 트랙을 달리고 있는 걸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되고 싶다'가 아닌, '하고 싶다'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만, 목적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이겠지. 꽤 추상적이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난 해적선의 선장이 되어 '모험'을 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나는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진 것은 평범한 장미였어. 평범한 장미, 그리고 무릎까지밖에 안 차는 화산 세 개... 게다가 그중 하나는 아마도 영원히 꺼져 있을 것이고.. 그것만 가지고는 아주 멋진 왕자가 될 수 없어...' 그래서 어린 왕자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이 부분이 좀 슬펐다.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모습이 꼭 우리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본인이 가지지 못했지만, 타인이 가진 것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비관하고 실의에 빠진다. 스스로 가진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는 본인만이 알아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닐 텐데.. 난 그저 각자가 가진 보석을 돌멩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보석이 있는가?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 라는 게 뭐지?"
"아주 자주 무시되는 행동이야. 그것은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지."
'길들인다'라는 건 자주 무시되는 행동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세상을 보라. 인스턴트식 인간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맺고, 쉽게 타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천천히, 서서히 따뜻하게 차오르는 진득함이 없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사이에서, 과도기에 세상에 나온 내가 느끼기엔 그런 것 같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 어른 제국의 역습'이라는 영화를 아시는가? 영화 속에서 악당으로 묘사되는 그들은 왜 과거로 회귀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앞에서 조금씩, 서서히 온정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와 동시에 외로움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차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 中
"나에게 너는 다른 수십만 명의 소년들처럼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 ...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돼. 나에게 너는 온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것이 되는 거야. 너에게 나는 온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것이 되는 거고...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에는 햇살이 깃들게 될 거야.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발소리를 알게 되겠지. ... 너의 발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거야! ...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에게 아무 쓸모도 없어. 밀밭이 내게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슬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얼마나 근사할지 생각해 봐! 밀은 금빛이니까 네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러면 나는 밀밭을 지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고..."
정말, 이 부분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읽어도 늘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구절이다. 서로에게 유일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이걸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닐까? 조금 더 관대하게, '우정'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 같다. 온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가치 있는 것들을 잔뜩 가지고 있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 '사랑'과 '우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매 순간들이 아주 큰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우리의 시간은 우리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좀 더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야겠다.
...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아주 많아."
"알게 되는 것은 자기가 길들인 것뿐이야.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 사람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들을 상점에서 사거든. 하지만, 우정을 살 수 있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어.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너를 길들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먼저 내게서 좀 떨어져... 이렇게... 풀밭에 앉아. 나는 너를 곁눈질로 볼 텐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이란 오해의 원천이거든. 하지만 너는 조금씩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앉도록 해, 매일매일..."
맞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다. 한 인간의 일생은 어림잡아 100년 정도일 거다. 시간이 흘러서 의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음.. 글쎄.. 드라마틱하게,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은 우리가 시간을 쏟고, 관심을 두는 것들뿐이다. 그러니 모든 것들을 거저 얻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짜 너무 좋아하지 말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인스턴트식 관계에서 벗어나, 진득한, 잘 우려낸 사골국과 같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관계를 맺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인지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인내심과 노력, 그리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 쉽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것들의 가치는 절대 작지 않다. 끝없는 허무와 외로움으로 자신을 밀어 넣지는 말자.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내가 전혀 모르잖아... 적절한 행사는 반드시 필요해..."
"'행사'가 뭐야?"
"그것도 너무 자주 무시되는 행동이야."
"그것은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들지. 예를 들면 사냥꾼들에게도 행사가 있어. ... 하지만,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똑같고, 나는 전혀 휴가가 없을 테고..."
행사라..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삶이 온통 '사건'들로만 가득하다면 그 삶은 드라마틱 할지언정, 결코 순탄한 삶은 아닐 것 같다. 물론 '적절한 행사'는 필요하다.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소중한 순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우도 '적절한 행사'라고 말한 게 아닐까?
"너희는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아직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는 누구를 길들이지 않았어. 내가 여우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아. 수십만 마리의 다른 여우들과 비슷한 한 마리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이제 내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내 여우는 온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이야."
"너희는 아름답지만, 의미가 없어. 누군가 너희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을테니까."
아름답지만 의미 없는 것들이 많다. 결국, 나와 함께할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닐까?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정'과 '사랑' 중에서는 아직 '우정'밖에 가지지 못한 것 같다(가족은 논외다). 잃어버린(또는 처음부터 갖지 못했을지 모를) '사랑'은 언제쯤 찾게 될까?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선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해.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말이야..."
이 부분을 보니 떠오르는 글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굳이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래에 해당 글을 첨부한다.
"한 사람과 연애를 오래 하면 인생이 뭔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스물 갓 넘었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앉혀놓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무 여자나 대충 만나지 말라는 뜻이었다. 사랑하는 일도, 친구를 사귀는 일도 신중해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분별없이 만나다 보면 상처가 생기고 결국 사랑을 잃고 만다.
사랑하는 마음을 잃으면 인생도 엉망이 되어버린다. 연애란 인생에 슬쩍 끼워 넣는 부록 같은 것이 아니다. 다 벗어 던지고 끌어안았다면 끝까지 그 사랑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연애가 희망이 될 수 있다.- 황인철, <아침공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