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꼭 지구에 데려갈게

Bard·2026년 5월 17일

PRAGMATA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게임을 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하게 됐고, 참 여운이 많이 남게 되었다. 계속 일정이 안맞아 미루다 결국 오늘 엔딩을 보게 되었고, 정말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게임 가격이 상당하기에(직장이 없었다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 최대한 많이 기억해보고자 스포 가득 후기를 작성해본다.

(귀신 같은 놈)

간단 줄거리 (엔딩 포함)

주인공 휴는 달 연구기지와 통신이 끊어진 일을 조사하기 위해 동료들과 달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지진과 함께 건물이 무너졌고, 휴를 제외한 동료들이 모두 사망, 휴도 중상을 입게 된다.

이후 컷신을 통해 한 아이가 치료키트를 높은 곳에서 힘겹게 꺼내들어 휴를 치료해주고, 그때부터 휴와 아이의 동행이 시작된다.

"I am D-I-03367. a state-of-the-art Pragmata created here at the Cradle. I possess basic life-saving protocols and..."

아이는 어린소녀의 모습을 띤 인간형 로봇이며, 달 연구기지에서 만들어졌다. 로봇이기에 시리얼 번호 외의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아, 휴는 아이에게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다이애나는 연구소 내 거의 모든 것을 해킹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해킹이 연구소 내 나타나는 로봇들을 상대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기에 휴는 다이애나와 동행을 시작하게 되고, 휴가 다이애나를 아이처럼 가르치며 유대감을 쌓게 된다.

휴의 목표는 지구로 복귀하는 것, 그리고 다이애나는 휴와 기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시뮬레이션 바다를 보고 자기도 지구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지구를 가기 위해 둘은 함께 달에 벌어진 이상한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상 현상의 근원을 찾던 중 휴와 다이애나는 다른 프래그마타에게 공격을 받게 되고, 다이애나는 로봇인지라 완치가 가능했지만, 한번 침식된 인간의 세포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침식은 점점 휴의 몸에서 퍼져나가고 있었다.

휴는 이 사실을 다이애나에게 숨기고자 황급히 바이저를 내렸고, 엔딩 전까지 바이저를 올리지 않는다.

여행을 계속하며 휴는 다이애나의 출생과 관련한 비극과도 알게 되고, 다이애나를 만든 연구원 히긴스 박사의 죽음도 알게 된다. 그렇게 점점 휴는 다이애나와 공감을 쌓아간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휴는 다이애나를 먼저 화물 수송선에 태운다.

자신의 우주복에 전력을 공급하던 배터리를 꺼내 수송선에 장착하고, 레일을 따라 수송선을 직접 출구까지 밀게 된다.

휴: Bad news. This is where we say goodbye… Sorry, squirt.
다이애나: No! I wanna stay with you!
휴: It's OK. You're gonna be OK.

휴: Go find the sea.
다이애나: No―wait!

휴: Have a safe journey, kiddo.

그렇게 마무리되고, 다이애나는 지구에 도착해 진짜 바다를 보며 달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감상

게임은 재밌다. 하지만 내가 이미 엔딩을 스포해버렸으니 할 생각이 있던 사람은 여기까지 못왔겠지.

그래서 '게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보다 스토리를 보며 느낀 점을 좀 서술해보려고 한다.

엔딩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스킵하지 않고 다 본 영화나 게임이 있었던가?

엔딩을 보고나서 말없이 키보드와 마우스에 양손만 간신히 얹은채로 울대에 피가 쏠리는 기분을 만끽했다.

게임을 즐기는 내내 나에게도 목표가 있었다면, 다이애나를 지구에 데려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내왔다.

약 보름의 간격을 두고 5월 2일과 5월 17일에 플레이했다. 5월 2일에 휴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다시 5월 17일에는 그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다이애나 지구 데려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접속했었다.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아 맞다! 이 놈 다쳤었지!라고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더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엔딩 자체는 식상한 신파적 연출이나 다름없다. 인물의 희생으로 눈물을 만드는 스토리다.

그런데 나는

에서 눈물 버튼이 눌렸다. 왜 그랬을까? 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다이애나의 말은

네가 없으면 싫어.
같이 있고 싶어.

이거 하나뿐이다.

반면 휴는 다르다. 휴는 끝까지 “나도 같이 있고 싶다”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을거야.”
“바다를 찾으렴.”
“안전한 여행 되길...”

이렇게 계속 미래를 이야기한다.

휴는 이미 자신이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이애나만 혼자 현재에 남겨져 있었다.

그 시간 차이가 잔인할 정도로 선명해서, 마치 한 사람만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 모습을 억지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참사를 목격했을 때, 희생자들의 죽음보다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보고 더 이입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은 아주 뻔한 신파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이상할 정도로 아프게 전달해버렸으니까.

Epilogue

출처: 프래그마타의 다이애나는, 영원히 8살일 내 딸을 닮았다

캡콤의 신작 액션 어드벤처 게임 프래그마타가 출시 직후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한 아버지의 짧은 사연이 조용히 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레딧에 글을 남긴 55세의 남성은 대학교 시절 이후 지난 30년 넘게 게임을 손에서 놓고 있었다. 그를 다시 게임 앞으로 이끈 것은 2024년, 여덟 살이던 딸 엘라였다. 딸의 권유로 시작한 포트나이트 이후 그는 호그와트 레거시, 레드 데드 리뎀션 등을 플레이하며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고, 게임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프래그마타와의 인연 역시 엘라의 말에서 시작했다.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피드에 올라오는 프래그마타의 여러 영상과 이미지. 어느 날 엘라는 화면을 들여다보던 아버지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빠, 저 아이는 맥켄지의 사진이랑 닮았어. 다이애나도 맥켄지랑 비슷할까?" 남성은 그 말에 게임을 구해 엘라와 같이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맥켄지는 지난 2009년, 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먼저 떠난 남성의 딸이었다. 그는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엘라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맥켄지가 영원히 여덟 살일 거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엘라의 권유에 시작한 게임을 통해 받은 위로도, 딸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프래그마타를 플레이하고 있는 남성은 다이애나가 자신의 두 딸을 닮았다며, 딸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게임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한 그는 딸 엘라와 함께 플레이하는 시간을 정말 좋아한다며 덧붙였다.

"이 게임이 제 영혼을 치유해주는 것 같아요"

프래그마타의 주인공 다이애나는 게임 내에서 루나필라멘트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로, 어린 소녀의 외형을 하고 있다. 게임 초반 기억을 잃은 채 등장하는 다이애나는 호기심이 많고 세상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듯 반응한다. 특히 주인공 휴가 지어준 이름 다이애나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캐릭터다.

당초 개발진은 다이애나를 완전한 로봇에 가깝게 설계하는 방향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여러 이유로 인간에 가까운 방향으로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설정 덕분에 다이애나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실제 자녀나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캐릭터가 됐다.

게임이 줄 수 있는 위로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유흥, 다른 이에게는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먼저 떠난 딸과 지금 곁에 있는 딸을 동시에 마주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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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함과 에너지로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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