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PART 2 - 정치관

Ryan Jeong·2020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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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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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환경에 의해 개인의 인성이 결정
결국 주위 환경이 나쁜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행복에 이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개개인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이 ‘이런 사회에서 나의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사회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개인을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 둘 수가 없게 된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야 만이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언어사용 능력을 가짐
정치적 이라는 것은, 개인의 잠재력을 사회 안에서 충분히 실현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언어는 중요하다. 언어능력은 서로 의사소통 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것으로 사회 안에서 개개인이 서로 서로에게 보다 나은 것, 선한 것을 결정해 갈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현실적인 국가건설을 주장
플라톤이 주장했던 국가관은 너무 이상적인 것이었다. 이런 실현하기 불가능한 이상적인 국가보다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국가를 염두에 두자. 단 국가는 중용의 원리로 국가 모든 분야의 장점이 최대한 활용되어야 한다.

국가의 형태
시민들 자신이 원하는 국가를 찾아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보다는 냉철한 이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입헌국을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방종과 개인주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저급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소위 말 잘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도에 관해서도, 소유권은 개인이 갖고, 사용권은 모든 사람이 갖는 형태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노예제도와 남녀불평등이 당연시 되는 사회구조를 넘지를 못했다.

[칼빈의 국가관]
영적통치와 국가통치
영생에 관계된 통치와 시민생활에서의 정의와 외적인 도덕성만을 확립하는 통치 두 가지 통치가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통치가 서로 반대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국가제도를 무시하고 전복시키려는 야만적인 생각과 왕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어리석은 생각, 이런 두 가지 어리석은 혼동을 피해야 한다.

국가통치의 지정된 목적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며, 우리를 사회생활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행위를 사회 정의와 일치하도록 인도하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게 하며, 전반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조국을 갈구하는 한편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생활을 위한 보조 수단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빼앗는 것은 인간성을 빼앗는 것이 된다.

국가통치는 필요하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집권자의 지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집권자들을 부인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일은 무지와 교만의 표현일 뿐이다. 집권자들 또한 하나님의 대리로서 집무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대리라는 사실로 그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더욱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와 선과 후의와 공의를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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