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대로 코를 박고 힘껏 들이마셨다. 여인은 10분째 이곳저곳을 탐닉하고 있는 나를 이미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었다. 뒤통수가 꽤나 따가웠지만 생일이었던 수요일에는 저 여인 덕분에 장미 구경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저 여인은 내가 장미에 얼마나 환장하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가 1년 중 5월 말을 제일 좋아라하는 이유도 내 생일 때문이 아닌 장미가 만개하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수요일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싶다.
수술받은 무릎에 이물감이 생긴지 어언 두 달. 매일매일 병원에 가고 싶었으나 하루하루 커리큘럼을 쳐내기 바빴기에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수요일, 회식날이었다.
알다시피 나는 그리 쉽게 잔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기에 망설임 없이 바로 외출 신청을 했다.
기나긴 여정 끝에 병원에 도착한 나는 대기 없이 바로 진료실에 들어갔고, 불과 몇 분 만에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진 얼굴로 나왔다. 재수술을 권유받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수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어지러워 생일이고 뭐고 빨리 눕고 싶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밀린 잠을 자고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XX역으로 향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할 걸 그랬나 싶은 러시 아워였다.
게다가 자고 일어나도 재수술 권유의 충격은 가시지 않아 생일 파티를 하러 가는 건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건지 모를 정도의 울상이었다.
얼마나 울상이었는지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꼭 안아주며 어화둥둥 위로해 줬다.
이 나이에 모성애 자극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그녀의 귀에 응애라고 속삭이며 장단을 맞춰줬다.
횟집으로 가는 길, 서로 침 튀기며 병원 욕을 하던 와중 친구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크림색 바지, 새하얀 티셔츠 위에 새빨간 리넨 셔츠를 걸친 그녀의 드레스 코드는 의도가 뭔가 노골적이라 물어보지 않으면 왠지 삐질 것만 같아 오늘의 패션에 대한 설명을 청했다.
역시나, 장미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레드로 포인트를 줬다는 그녀에게 2025년 한국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네 글자 짜리 농을 던져 바로 등짝을 얻어맞았다. 감동 알레르기 때문에 감동만 하면 헛소리가 나오는 걸 나보고 어떡한담.
아무튼 새빨간 감동이 혈관 곳곳으로 퍼지고 무릎의 이물감은 새까맣게 잊혀졌다. 손이 매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수차례의 실랑이 끝에 친구만 술을 마시기로 했다. 그딴 어쭙잖은 수작으로 내가 잔을 들 줄 알았냐며 독설을 퍼붓고 나서야 그녀는 깔끔히 포기했다.
둘 다 술을 잘 마시니(확실히 하자면,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날은 한 잔만 들어가도 테이블 위에 금방 대여섯 병이 쌓일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회를 삼키며, 친구는 소주를 삼키며 수술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수술을 다시 해야 할지 말지, 한다면 언제 할지 등등. 24시간 내내 축복받아도 모자를 생일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점점 나도 모르게 울상이 되었다.
심지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수술을 극구 말렸던 인간인지라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화만, 아니 회만 삼킬 뿐이었다.
친구는 내게 여름에는 환부 관리가 어려우니 받을 거면 최대한 빨리 받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난 PintOS를 하러 이곳에 왔기에 PintOS 커리큘럼이 끝나기 전에는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PintOS 과정이 끝나면 곧바로 나만의 무기 만들기 라는 5주짜리 팀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때도 당연히 수술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가장 빠른 일정은 19주 차 토요일, 나만의 무기 만들기 프로젝트 발표 이틀 뒤 월요일이라는 것.
발표가 끝나면 또 회식이 있다 들었는데 교육생 동생들과는 술 한잔 기울여보지도 못하고 헤어지겠구나 싶어 순간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애정하는 아이들아.

젊은 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술만 취하면 평소보다 자세가 눈에 띄게 곧아지는 이상한 여인의 입에 허쉬 초코우유를 물린 채 밤거리를 거닐었다.
소주 2병 800칼로리에 초코우유 200칼로리, 네가 오늘 마신 것만 1,000칼로리라며 정신 공격을 가해도 여인의 군살 하나 없는 팔뚝은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길 건너편 울타리에 흐드러지게 핀 장미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비틀거리는 여인은 대뜸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건너편으로 가려 했다. 잔뜩 취한 사람조차 유혹할만큼 선명한 붉은색의 장미들은 마치 루비를 쏟은 듯한 광경이었다.
난 '그냥 가 이 기집애야' 라며 차갑게 묵살할 뿐이었다.
뒤통수는 여전히 따가웠다.
동네 구석 어딘가에 위치한 이름 모를 공원에는 전세를 낸 듯 여전히 나와 5월 말 초저녁의 살랑거리는 바람, 그리고 한숨 쉬는 여인만이 있었다.
불행히도, 생일날 나를 장미밭에 풀어놓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