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Lv. 18 - 하워드의 오컬트 게임 디자인 법칙

규라리 [김준호]·2023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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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치유물(치명적 유해물)이에요 ㅎㅎ"

게임을 추천 받을 때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없는가?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플레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기자기한 게임인척 소개해주고, 뒤에선 기막힌 반전으로 까무러치게 놀랄 사람들을 보며 즐길 상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이처럼 아주 많은 게임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인상을 남기는 방법으로 '반전 요소'를 많이 활용하곤 한다. 스토리적으로, 연출적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아주 많지만, 생각보다 게임 메커닉스를 통해서 반전을 만드는 게임들도 많다.

오늘은 "처음엔 별 감흥 없었는데, 플레이해보니 기절하는 줄 알았다"를 만들어줄 '하워드의 오컬트 게임 디자인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하워드의 오컬트 게임 디자인 법칙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도 정리할 수 있다.

비밀의 중요성 ∝ 외견상의 순진성 × 완전성

이렇게 보면 무슨 의미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조금 길게 풀어서 살펴보자.

플레이어가 느끼는 충격 ∝ 평범해 보이는 게임 분위기 × 평범해 보이는 게임 플레이

이제는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견상으로 평화로워 보이고, 단순하고, 아무 문제 없어보이는 게임일수록, 그리고 게임 플레이가 이미 널리 알려진 표준적인 게임 장르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이 느껴질수록, 나중에 게임의 외견과 플레이가 반전되었을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충격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느끼는 충격이란, 플레이어의 플레이 경험 변화가 강렬하게 일어나고 플레이어의 행동이 그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게임을 하나 찾아보았다.
바로 <두근두근 문예부>다.

비주얼 노벨 / 애니메이션 / 귀여운 / 심리적 공포

두근두근 문예부는 게임 플레이 초반에는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일반적인 일종의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외견상으로도 깜찍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주인공들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게임 플레이 상으로도 일반적인 미연시 게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갑작스럽게 게임이 달라지게 된다.
사실 이 게임은 얀데레 메타픽션 호러 게임이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장르)
괜히 게임의 초반에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나 어린이들에게는 플레이하지 말라고 경고를 띄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경고까지 띄우고 게임의 태그에는 심리적 공포가 버젓이 적혀있지만, 사람들은 초반부 플레이를 하며 "별로 무서운 것도 없고, 그냥 다른 게임들이랑 비슷한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끔, 이 게임은 후에 밝혀질 비밀과 충격을 플레이어들에게 꽁꽁 숨겨두려 한다.
필자는 인터넷 방송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통해 이 게임을 접했는데, 직접 플레이하는 것도 아니고, 공포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덕분에 내가 직접 플레이 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 하다.)

심지어 미연시, 아케이드 플랫폼 게임과 같이 과거에 단순한 그래픽과 플레이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게임 장르들을 활용할 경우, 사람들이 플레이할 때 이전에 플레이했을 때와 같이 게임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무언가 달라지는 점이나 스산한 분위기들을 쉽게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반전과 연출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해당 장르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갑자기 플레이어의 머릿 속을 헤집으면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제공하게 된다.

한 번 상상해보라.
미연시 게임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여학생과 세 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즈음에 갑자기 여학생이 괴물로 변해서 추격전이 열린다던가, 용사가 되어 호기롭게 몬스터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러 지하 던전에 입성했지만 마왕을 잡아 먹고 있는 기괴한 공주의 모습을 발견해버렸을 때의 충격을...

(아니 뭐야!! 갑자기 뭔데 이거!! 이게 뭐야!!!!)


아이씨 깜작이야, 누구세요?

하워드의 오컬트 게임 법칙은 공간, 시간, 숨겨진 메커닉스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미로와 끊어진 길, 건너편 길은 보이지만 막힌 문과 아직 뚫리지 않은 숏컷 등등이 게임 플레이에서 극적으로 나타나야 할 비밀을 감춰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 플레이어들은 공간이 막혀있거나 가려져있을 때는 어떤 비밀이 있을 지 모른 채 평범한 게임 플레이를 즐기지만, 비밀이 담긴 공간이 개방되었을 때 한 번에 그 충격을 느끼게 된다.

시간적으로는 규칙성이 연관되어 있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발생하는 이벤트들은 플레이어들에게 방심을 불러온다. "아, 원래 매번 나오던 이벤트네"와 같이 이 게임이 급작스러운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후, 시간적으로 불규칙적인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평소에 플레이하던 것과는 다른 플레이로 갑작스럽게 변화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플레이 경험 변화가 더 크게 찾아온다.

갑자기 놀러 온 초대받지 않은 손님

숨겨진 메커닉스는 플레이어 행동에 따른 히든 이벤트, 히든 퀘스트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된다.
혹시 <다크소울3>'차가운 골짜기의 무희'라는 보스를 알고 있는가? 이 보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것저것 찔러보는 것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한 번쯤 깊은 분노를 느끼게 했을 법하다. 원래는 게임의 중반부에 접어들어서야 등장하는 보스이지만, 어떤 NPC를 특정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면(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런 설명 양해 부탁드린다) 초반에도 등장해버리기 때문에, 평범하게 룰루랄라 플레이를 즐기고 있던 플레이어에게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다가온다.
사실 플레이어가 호기심이 많아서 생긴 일이긴 하지만, 평범하게(?) 플레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에 웅장하고 소름끼치는 보스전 BGM이 틀어지면서 누가봐도 썰리면 바로 죽을 것 같은 칼을 든 자신보다 몸집이 몇 배나 거대한 보스가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면 까무러치게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엘든링>과 같이 여러 가지 히든 퀘스트들이 존재하고, 플레이어가 저지른 행동들에 따라 해당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지는 경우나 이후의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오컬트 법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누적하는 플레이 경험이 쌓이고 쌓여 마지막에는 플레이어가 알게 모르게 멀티 엔딩으로 분기하게끔 만들어서, 플레이어가 게임 월드의 마지막 비밀, 즉, 게임의 최종 진실에 도달했을 때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게임인 줄 알았는데... ㅠㅠ
나만 당할 순 없다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누르며)

자, 오늘은 "하워드의 오컬트 게임 디자인 법칙"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오컬트 게임 디자인 법칙은 제프 하워드(Jeff Howard)가 제시한 게임 디자인 법칙으로, 하워드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오컬트라는 말 자체가 '숨겨진'이라는 어원에서 유래한 만큼 게임의 숨겨진 비밀을 어떻게 플레이어에게 최대한 강렬하게 제시할 수 있는지가 하워드 법칙의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도 반전이 매력적인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에게 그 반전이 들키지 않도록 잘 숨겨야 더 매력적인 게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꽁꽁 숨겨서 엔딩이 나올 때까지 플레이어가 찾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그럼 오늘도 Level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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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 게임학과 (2018 ~ )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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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0일

공포를 주는 게 아니라 환기를 목적으로 했을 때 baba is you도 좋은 예시일 것 같습니다. 퍼즐 게임인만큼 일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수많은 스테이지를 반복하며 플레이어의 감상이 무뎌질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규칙을 제시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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