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2. Fri.

구명규·202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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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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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시간만 자도 정신이 말짱하고 하루가 알찬 날이 있는가 하면 일곱 시간을 넘게 잤는데도 하루 종일 몽롱하고 집중이 안 되는 날이 있다. 물론 이런 날들이 붙어있다면 서로 떼어놓고 그 이유를 찾을 순 없는 노릇이지만 '오늘의 에너지를 어제 땡겨 썼나 보다'라는 위로보단 '오늘은 대체 뭘 한 거지'라는 자책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 오후엔 인턴 면접이 있었다. 이번 학기 동안 개별 연구를 함께 진행한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회사였다. 더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여름 방학 동안 인턴을 해보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고, 화요일에 연락이 닿아 오늘 인터넷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인공지능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기에, 이와 관련하여 내가 어떠한 경험을 쌓아왔고, 앞으로의 진로 계획은 무엇인지, 이번 인턴 경험을 통해 얻어 가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생각해두었다. 면접관님 말고 회사 대표님께서도 회의 끝나고 면접에 참여하시느라 면접 시작 시간이 30분 늦춰지는 동안 이 회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한 내 의견도 미리 정리해두었다.

  면접은 예상보다 길게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그것도 이미 인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내정되어 있고, 그동안 무엇을 할지 조율하는 시간이었다기보단 내가 이곳에서 인턴을 할만한 능력과 경험을 갖추었는지를 테스트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Stable diffusion 모델로 생성된 사진의 일부가 뿌옇게 나온다면 모델의 어떠한 부분을 수정해야 할지, 사람과 마네킹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상품 홈페이지에서 광고 영상을 제작해 주는 파이프라인을 본인이라면 대강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 '잘 모르겠습니다'보단 아는 내용 중에서 무모하게라도 최대한 조합해서 말씀드려보자며 노력했지만 면접관분들의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아 보였다. 사실 그 의중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대표님과 친분이 있는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학생이라 받긴 해야 하는데, 막상 만나보니 성적만 좋고 할 줄 아는 건 없어 보여 난감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학기 초, 교수님의 연락을 받아들고 이런 건 아느냐는 질문에 하나도 대답을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한 학기 동안 얼마나 바뀌었겠냐마는, 그동안 애써 무시해오고 지냈던 내 모습이었다.

  나만 이런 건가. 부족한 경험을 쌓겠다고 달려드는데 경험이 없어 자존감이 떨어지는 굴레는 언제서부터 시작된 거지. 지난 테니스 동아리 행사 때, 학부를 졸업하고 혼자서 앱 개발에 도전 중인 친구를 몇 달 만에 만났다. 자긴 지금껏 주변 사람들 중에서 항상 선봉장의 위치에 있었는데, 마음이 끌리는 데로 혼자서 앱 개발에 열중하고만 있자니 너무 마음이 조급해진다더라.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보통의 친구들이 자신을 앞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진다더라. 지난번에 만났을 땐 그러한 비교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친구로 보여 참 멋있었는데 결국 어쩔 수 없는 거였나 싶었다.

  일곱 시간을 넘게 잤는데도 하루 종일 몽롱하다. 어쩌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한 프로젝트의 포스터 세션이 끝나고 그 체력적 부담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이번 학기를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비슷한 높이의 언덕을 네다섯 번은 올라야 하는걸... 지금은 굳이 동기부여를 찾을 때가 아니라 그냥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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